횡계구곡의 모고헌과 옥간정, 그리고 횡계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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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계구곡의 모고헌과 옥간정, 그리고 횡계서당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0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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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경북 영천 횡계리 모고헌과 옥간정

 

                                  벼랑위의 모고헌. 지수 정규양의 정자로 횡계구곡 중 제 3곡이다

양쪽 기슭이 거의 수직을 이루고 있는 골짜기다. 벼랑 가에는 오래되어 낯빛이 깊은 참나무 고목들이 늘어서 있다. 계곡은 도로와 나란해 스치기 쉽지만, 물가에 내려서면 결코 잊지 못할 세계로 펼쳐진다. 물길은 보현산에서 시작되어 마을 한가운데를 동서로 가로지른다. 그래서 마을도 천도 횡계(橫溪)다. 이름이 한자화되기 전에는 ‘빗거랑’이라 예쁘게 불렸다. 옛날 이 골짜기에 살았던 형제가 있다. 그들은 물가에 정자를 짓고 골의 굽이마다 이름을 주고 시를 남겼다. 그렇게 횡계의 아름다움은 불멸이 되었다.      

 

                                           지수 정규양의 정자 모고헌과 300년 넘은 향나무

문이 잠겨 있다. 갓길의 공터는 파란 토끼풀로 뒤덮여 있다. 뱀이 있진 않겠지? 위급한 캥거루처럼 풀쩍풀쩍 뛰어 흙돌담을 따라 계곡 쪽으로 돌아 들어간다. 작은 화장실 하나가 덩그러니 선 너른 경역 너머로 모고헌(慕古軒)의 옆모습이 보인다. 모고헌은 벼랑의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다.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에 가운데 방을 두고 사방으로 마루를 두른 모습이다. 계곡 쪽에만 계자난간을 두고 나머지는 막아 판문을 달았다. 방은 키 큰 사람이 누우면 허리를 구부려야 할 만큼 작다.   

 

                                       모고헌 경내의 횡계서당과 동재, 300살 넘은 향나무
                                횡계서당. 살릴 수 있는 고재들은 살려 단장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고헌은 정규양(鄭葵陽)이 1701년에 지은 누각이다. 처음에는 태고와(太古窩)라 했다. ‘집을 태고로 일컫는 것은 무엇인가. 질박하고 누추한 것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집의 주인은 누구인가. 지금 세상의 사람이지만 마음은 태고이다.’ 작은 정자와 더 작은 방이 주인의 뜻을 보여준다. 모고헌은 1730년에 제자들이 개축하고 편액 한 이름이다. 스승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정자 뒤에는 300년이 넘은 향나무 한 그루가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당시 정각사라는 절의 스님이 준 어린 향나무를 심은 것이라 한다. 경내 가장 안쪽에는 횡계서당(橫溪書堂) 현판을 단 강당 한 동과 동재가 자리한다. 정규양이 형 정만양(鄭萬陽)과 함께 후학을 기르기 위해 1716년에 건립한 것이다. 이후 횡계서당은 형제가 세상을 떠난 뒤 1737년 경 서원으로 변모한 듯하다. 서원은 흥선대원군 시절 훼철되어 서당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횡계서당과 모고헌. 문이 잠겨 있을 땐 돌담 옆길로 돌아 들어가면 된다
                                               모고헌 아래의 골짜기. 횡계구곡 중 제3곡이다 

비교적 기울기가 약한 비탈을 골라 계곡 아래로 내려간다. 축축한 낙엽들이 늪처럼 쌓인 발밑을 조심스럽게 딛는다. 청명한 물소리와 형체도 없이 눈앞을 흐리는 날벌레들의 미세한 날갯짓 소리만이 가득한 계곡이다. 이따금 들려오는 자동차들의 마찰음은 다른 세상의 것 같다. 모고헌은 횡계서당 앞에서 향나무와 함께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계곡 아래에서 물소리와 함께 올려다보는 것이 좋다. 그는 더함도 덜 함도 없는 눈빛으로 정면을 직시하고 있다. 물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나 뿐. 그의 시선 아래에 머리를 조아리며 계류를 거슬러 올라간다.  
  
 

                             옥간정 입구. 느티나무가 거의 수평으로 누워 차양처럼 드리워져 있다
                          옥간정 영과담 곁의 300살 은행나무

모고헌 상류에 정만양의 정자인 옥간정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 반의 'ㄱ'자형 누각 건물로 형제가 함께 1716년에 지은 강학당이다. 지금은 누마루에 현대의 창이 설치되어 있어 예스러움은 덜하다. 도로 쪽에 작은 문이 있지만 입구는 계곡 쪽 내리막길에 있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오른쪽 언덕에서 계곡 쪽으로 거의 수평으로 누워 차양처럼 드리워져 있다. 내리막길 가운데에서 다시 계곡으로 내려서는 희미한 길의 흔적을 따라 횡계의 물가에 선다. 정자 앞에 단을 쌓아 조성한 정원이 있다. 은행나무, 배롱나무, 탱자나무 등이 듬성듬성 식재되어 있다. 300년 된 은행나무 거목은 산림유전자원보호수다. 전염병이 돌 때 이 나무의 열매로 떡을 해 먹으면 병이 예방된다는 전설을 가졌다.  

 

              옥간정 영과담. 정자 앞 물가에 단을 쌓아 정원을 꾸며 놓았다. 가장 왼쪽이 300살 은행나무
                                              옥간정 영과담. 횡계구곡 중 제 4곡이다

옥간정이 자리한 계곡은 소와 바위들의 별천지다. 형제는 이곳을 ‘영과담(盈科潭)’이라 했다. ‘물은 조금 팬 곳이라도 가득 찬 다음에야 다른 곳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계곡의 언덕과 바위에는 ‘격진병’, ‘광풍대’, ‘지어대’, ‘제월대’ 등의 이름을 붙였다. 바위 사이를 막아 작은 연못을 만든 뒤 뗏목을 타고 거문고를 켜기도 했고 낚시를 즐겼다고도 한다. 그들은 횡계에 구곡을 설정하고 시를 남기기도 했다. 그 중 제3곡이 모고헌, 제 4곡이 옥간정이 자리한 영과담이다. ‘사곡이라 광풍대 제월대 바위이니 / 바위가에 꽃과 나무 그림자 드리웠네 / 군자가 글을 이루는 일을 알고자 한다면 / 이 못에서 물이 채워짐을 보아야 하리라.’

 

                       훈지형제는 계곡의 바위에 격진병, 광풍대, 지어대, 제월대 등의 이름을 붙였다

형 정만양의 호는 훈수(塤叟)다. 아우 정규양의 호는 지수(篪叟)다. 시경에 ‘훈지(壎篪)’라는 말이 있다. ‘맏형은 흙으로 만든 나팔을 불고, 동생은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분다’는 뜻으로 형제간의 우애를 나타낸다. 형제는 여기서 한자씩을 따 호를 훈수와 지수라 했다. 많은 저술도 ‘훈지록’이라 했고 자손의 이름도 ‘훈지’ 두 글자의 변과 머리를 따서 짓도록 하여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옥간정 영과담. 횡계구곡 중 제 4곡이다<br>
                        옥간정 영과담. 횡계구곡 중 제 4곡이다

훈지형제는 이곳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영의정 조현명, 형조참의 정중기, 승지 장간 등 많은 명현과 석학을 배출했다. 동문록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이만 172명. 일생 학문에 매진했던 형제는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이들 형제에게 조정은 여러 차례 벼슬길을 제의했으나 끝내 고사했다. 훈수선생은 1730년 67세의 나이로 옥간정에서 세상을 떠났다. 임종 때 자손들에게 남긴 유언은 ‘충, 효, 검, 공’ 네 글자였다. 즉 ‘사친이효'(事親以孝)’, ‘사군이충(事君以忠)’, ‘양덕이검(養德以儉)’, ‘지신이공(持身以恭)’을 가훈으로 내린 것이다. 여러 제자들에게 남긴 말은 ‘지려명절(砥礪名節)’이다. ‘명분 있는 절의를 갈고 닦으라'는 의미다. 지수선생은 1732년에 세상을 떠났다. 옥간정 영과담에 가득 찬 물을 본다. 가득 차서는 흘러 모고헌으로 간다. 물소리는 어찌 이리도 맑고 바위들은 어찌 이리도 빛나나. 훈지형제는 임란이 일어났을 때 붓을 던지고 의병을 일으켰던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의 후손들이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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