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토왜 건국을 둘러싼 일본 고대사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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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토왜 건국을 둘러싼 일본 고대사의 진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7.3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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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의 야마토왜와 일본화 과정 | 최재석 지음 | 만권당 | 612쪽

 

‘백제의 야마토왜(大和倭)와 백제 야마토왜의 일본으로의 변신 과정’을 다룬 이 책은 고대국가로서의 야마토왜의 형성·구조·발전·변신 과정에 관한 열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인 고(故) 최재석 교수는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을 집중 분석해 “적어도 서기 670년까지의 일본사는 일본의 역사가 아닌 한국의 역사, 한국 고대사의 일부”였음을 밝혀냈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백제인의 대규모 일본열도 이주 과정과 일본 개척사, 그리고 그들이 야마토라는 나라를 건국하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이어 백제가 야마토왜를 어떻게 통치, 경영했으며, 백제 멸망 후 야마토왜는 어떻게 일본으로 변신했는지 보여준다. 한국 고대사의 강역이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북쪽으로는 압록·두만강을 건너 만주땅까지, 남쪽으로는 일본열도까지 펼쳐져 있었다는 진실을 밝혀주는 의미 있는 책이다.

저자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주 자료는 『일본서기』인데, 『일본서기』는 크게 백제 중심의 기사와 야마토왜 중심의 기사로 구분된다. 물론 전자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기록이고 후자는 특히 후세에 조작·변개된 기사이다. 후자에 속하는 기사는 전체가 전적으로 조작된 것도 있지만, 내용은 백제 중심이되 그 표현은 야마토왜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저자는 일본 고대국가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본 고대국가 연구의 올바른 시각을 제시한다. 종래 일본 고대국가사 또는 고대 한일관계사 연구는 주로 ‘문화’의 시각에서 행해져 왔다. 이러한 문화의 시각에서는 고대 일본열도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진실의 하나인 국가 성립사나 한국과 왜(일본) 사이에 전개되었던 역사적 관계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없으며, 이 시각은 오히려 진실에의 접근을 근원적으로 저해할 뿐이다. 따라서 일본 고대 국가사나 고대 한일관계사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시각이 아니라 인간 집단의 시각에서 보아야 하며, 일본 원주민과 일본으로 이주한 이주민을 구별하고 양자의 수와 문화 수준, 그리고 그 이주민의 본래 국적을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국가사 연구와 조몬·야요이 시대를 포함하는 일본 고대사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며, 일본 고대국가의 강역의 범위와 일본열도 각지에 존재하는 수많은 독립된 소왕국 또는 소군주의 실체, 야마토왜의 해상수송 능력, 일본 이주민의 이주 형태(개별 이주인가 집단 이주인가)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일본서기』에 대한 올바른 분석 시각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 고대사의 진실을 과학적으로 파헤치고자 하는 용기와 의지다.

일본 도쿄대 하니하라 가즈로 교수는 인구학적·인류학적 시각에서 700년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이주자와 일본 원주민의 수를 추정해 이주민과 일본 원주민의 수의 비율은 8:1 또는 9:1이라는 견해를 발표했다. 그리고 일본 원주민과 이주민인 한민족 사이에는 크나큰 문화 수준 차이가 보인다. 일본 원주민에게는 실과 바늘로 만든 의복이나 문자, 종이, 먹도 없었고, 저수지·수로·제방이나 말(馬), 조선술도 없었다. 이러한 신천지 일본열도에 한민족이 집단 이주해 의복·직물 제조, 문서 독해와 문구·물감 제작, 말 사육, 건축·토목·해상수송, 공예·도기, 의약, 회화·음악, 역법(曆法·易法), 불사·불교 등 모든 분야를 개척하고 야마토왜라는 국가를 세운 것이다.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귀신시대의 설화, 『일본서기』의 「덴지기」, 「비다쓰기」, 그리고 『신찬성씨록』 등을 보면 일본 천황은 본래 백제인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열도 내에 수없이 존재하는 한국 국명(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 가라)에 의해서도 일본 천황이 한국인일 수밖에 없는 근거를 알 수 있으며, 고려, 신라, 가라(가야) 등의 지명이 일본열도 곳곳에 존재하는 데 반해 백제라는 이름이 붙은 지명은 주로 기나이 지방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야마토왜가 백제에 의해 경영되었다 하더라도 야마토왜는 고구려와 신라에도 유학생을 파견했으며, 또 신라에는 수없이 사절을 파견했다. 또 왕실의 교육 담당자와 시의까지도 백제인뿐만 아니라 고구려인, 신라인을 초빙했다. 이 밖에 야마토왜에는 여러 직업의 고구려인, 신라인이 거주하며 활동했지만, 백제 패망 후 유학생, 사절 등의 해상수송을 신라에 의존한 것이나 신라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신에 대한 칙사 대접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야마토왜는 상당 기간 신라에 예속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671년의 오미령이나 690년의 기요미하라령의 시행, 701년의 다이호율령 반포를 비롯해 690년의 후지와라쿄 조영 착수, 708년의 헤이조쿄 조영 착수 등 일본에서의 율령 체제 확립과 그것에 상응하는 왕도 건설은 모두 일본으로 대규모 이주한 백제 지배층과 일본으로 파견된 견신라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700년까지 일본은 백제와, 일본으로 이주한 백제인에 의해 경영되었으며, 중국 문화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가 663년 이전의 야마토왜가 백제의 직할 영토임을 주장하는 근거를 몇 가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일본열도 내 한민족과 원주민의 수나 야마토왜 내 백제인과 원주민의 수는 각각 9:1이고 문화 수준 차이도 컸으며, 둘째,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의 국명을 딴 지명이 일본열도를 뒤덮고 있고, 야마토왜의 왕궁명, 지역명, 사물명에도 ‘백제’라는 명칭이 붙었다. 셋째, 야마토왜의 개척은 백제에서 온 집단 이주민에 의해 시작·지속되었으며, 넷째, 백제의 관위가 시종 그대로 야마토왜에서 사용되었고, 백제 패망 후 이주한 지배층 역시 백제 관위에 상응하는 관위를 받았다. 다섯째, 백제는 야마토왜에 관인 등을 일정 기간 파견해 야마토왜를 경영했으며, 야마토왜의 불교 일체를 직접 경영했다. 여섯째, 백제는 전쟁 포로를 야마토왜에 송치해 그 노동력을 이용했으며, 왕자, 왕족을 파견해 야마토왜의 정무 보고를 받고 통치했다.

이 밖의 여러 이유들을 볼 때 한민족에 의해 일본의 고대국가가 건설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명확해진다. 쓰다 소키치를 포함한 일본 고대사학자들이 거의 모두 시종일관 주장하는 것은 첫째, 일본의 문화가 ‘반도’에서 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반도(그들은 대개 한국이라 하지 않고 지리적 용어인 반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의 문화가 아니라 중국의 문화가 반도를 경유한 데 불과하며, 둘째, 일본은 한국 문화가 아니라 ‘대륙 문화’, ‘아시아 문화’, ‘중국 문화’를 섭취했는데, 이 중국 문화의 섭취로 인해 일본의 고대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일본 원주민의 ‘대륙 문화의 섭취’에 의해 일본 고대국가가 출현한 것이 아니라 일본으로 건너간 한민족에 의해 일본 고대국가가 건설된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고대사학자들의 거의 전부가 메이지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사, 특히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이 조작되었다고 그렇게도 집요하게 주장했던 것은 일본 고대사의 진실(야마토왜는 백제에 의해 건국되고 경영된 직할 영토였다)을 은폐하고 허위 고대사(일본사가 한국사보다 오래고, 일본은 처음부터 독립국가였으며,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를 주장하려면 『삼국사기』의 기록이 조작, 전설일 뿐이라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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