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이념의 실현을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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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이념의 실현을 위한 투쟁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7.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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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 | 조지 H. 내시 지음 | 서세동 옮김 | 회화나무 | 784쪽

 

이 책은 보수주의를 한 나라의 중요한 지적·정치적 세력으로 만든 설계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전후 미국 보수주의의 지적 운동은 단순히 사색적이거나 이론적인 사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일부를 보존하고 정화하며, 복원하고자 한 정치적 함의를 지닌 운동이었고, 그 목표는 이념의 실현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끈기 있게 노력해왔는지를 강조한다. 때때로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이 아무런 소용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1945년 이후 자신들의 역사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 자신을 믿고,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믿으며 보수주의를 미국의 주류로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세상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절망적이고 암울했다. 서구는 좌익화되었고, 국가 권력은 강화되었으며, 인류는 집단주의를 향해 줄지어 나아가는 듯 보였다. 보수주의는 인기 있는 용어가 아니었고, 이를 대변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다. 보수주의에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부활을 위한 최초의 원동력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생겨났다. 가장 먼저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두 경제학자였다. 하이에크와 미제스는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글을 통해 미국 우파에게 자신들의 신념을 방어할 수 있는 지적 자양분을 공급해주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철학의 부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서구 몰락의 뿌리에는 지적 오류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들은 사상의 역사를 통해 서구 몰락의 원인을 추적했고, 16세기와 17세기의 근대 정치철학과 그것의 구현이라고 여긴 프랑스혁명에서 지적 오류를 발견했다. 시급한 건 위대한 전통, 기독교의 원리를 재천명하고 고전 정치철학을 부활시키는 일이었다. 프랑스혁명을 혐오한 버크가 이 작업의 출발점이된 것은 당연했다. 그들에게 버크는 기독교의 정통성과 고전적 자연법 철학을 가장 당당하게 주장하고, 이를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 보수주의 지혜의 원천으로 보였다. 프랑스혁명의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는 토크빌의 증언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유럽의 사상과 경험은 미국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유럽 보수주의는 다시 음미되어야만 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은 유럽이 아니라는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우선 보수주의는 초월적 진리로서 영속적이며, 입헌주의 · 제한된 주권 · 법의 지배와 같은 미국의 신념이 중세 시대 영국의 전통에 깊이 새겨진 고대의 사상과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스트라우스의 비의적 신념은 고대적 신비주의의 재림이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은 미국 보수주의의 뿌리를 유럽이 아닌 자신들의 조국에서 찾고 자신들만의 계보를 구성하고자 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남부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부는 미국에서 항상 가장 보수적인 지역이었고, 그래서 남부에서 이를 발견하는 것은 우파에게 논리적인 작업이었다. 그들은 남부에는 배워야할 초월적 진리─기독교 전통, 사회적 위계에 대한 믿음, 강력한 중앙 정부에 대한 거부 등─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지만, 남부가 미국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깊숙한 곳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건국의 아버지들, 독립선언문, 헌법, 그리고 무엇보다 신성한 문서인 『연방주의자 논고』. 그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의 법과 정치이론을 계승했으며, 미국 헌법의 의도는 민주주의를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폭정을 좌절시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독립선언문은 서구의 전통적인 지혜, 양도할 수 없는 재산권을 소중히 여겼고, 『연방주의자 논고』는 선량한 사람들─대중이 아닌 의회─의 숙고를 거친 다수의 결정이라는 미국 특유의 헌법적 도덕성을 명시하고 있었다.

미국 고유의 보수주의적 전통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단일한 정치 세력을 형성하고자 했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보수주의가 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실제적인 일상적 문제 및 활동과 관련해 놀라울 정도로 쉽게 단결하고 협력을 유지하면서 이를 입증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나갔다. 그리고 1980년대 레이건혁명 이후에는 방대한 분량의 책과 에세이, 기사들을 쏟아내고, 언론 · 재단 연구소의 네트워크를 개발하고 자유시장 싱크탱크를 확대해나가면서 보수주의운동을 조직화했다. 보수주의운동이 제도적으로 성숙해지면서 우파는 정치인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정책 연구로 방향을 전환했고,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학파는 자유지상주의 원리에 기초해 실용적인 경제 프로그램들을 창안해냈다. 마침내 보수주의는 “한 세대가 지난 후 합창이 되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기회를 가진 중요한 지적 · 정치적 운동이 되었다”.

21세기 초반 미국의 보수주의는 정점에 이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성공에는 그늘이 따른다. 레이건혁명 이후 보수주의가 정치적으로 거둔 성공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부는 점점 더 멀어져갔고, 보수주의자들은 서구 문명의 도덕적 기반이 공허하며, 권력의 장악 과정에서 이 운동이 점차 부패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보수주의자들에게 부시 행정부는 전통으로부터의 일탈로 보였다. 신구보수주의 간의 소규모 전투는 이전보다 더 자주 발생했다. 이전의 성공과 대립되는 불안정한 양상이 자주 발생함에 따라 위기감도 더 커졌다. 과연 보수주의는 승리했는가.

저자는 보수주의는 선거에서의 승패 여부와 상관없이 미래는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의 법칙이나 자연의 어떤 법칙도 그들의 운동이 쇠퇴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1945년 이후 그들 자신의 역사는 그러한 숙명론을 반박해왔다.” 때때로 보수주의자들의 “투쟁이 아무런 소용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1945년 이후 자신들의 역사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고, 패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 자신을 믿고,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믿으며 보수주의를 미국의 주류로 만들었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자신들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그들이 얼마나 끈기 있게 노력해왔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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