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다리에는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다
상태바
모든 다리에는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7.31 1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다리 위에서 니체를 만나다: 사람과 예술, 문화의 연결고리 다리에 관하여 | 토머스 해리슨 지음 | 임상훈 옮김 | 예문아카이브 | 440쪽

 

모든 다리에는 저마다의 드라마가 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연결하고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였던 다리에 관한 매혹적인 이야기다. 오롯이 ‘다리’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춰 세상의 다리를 관찰하고 분석한 뒤 사유로 녹여낸 이 책에서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다리와 보이지 않는 관념의 다리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낸다. 실제 존재하거나 한때 존재했던 다리로 역사적 사실과 에피소드를, 상상 속의 다리와 관련해서는 예술, 철학, 시 등에서 공통 요소를 찾는다.

우리는 다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살아왔다. 우리는 모두 ‘사이’에 있으며, 모든 것과 연결되려 한다. 섬과 섬, 섬과 육지,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어주는 대교에서부터 실개천의 작은 징검다리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둘러봐도 우리는 다리와 함께 있다. 인간은 다리를 짓고 다리는 세상을 연결하며, 다리를 건너 새로운 장소와 문화권, 그리고 낯선 사람들에게 도착한다. 다리에는 단절을 넘어 연결되려는 인간의 의지와 가보지 못한 곳에 닿고 싶은 호기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죽음과 삶, 과거와 현재, 사랑과 이별 사이처럼 다리는 은유적으로도 삶 가까이에 있다.

단지 하나의 건축물로서의 ‘다리’가 연결고리가 되어 동·서양, 머나먼 과거부터 지금과 미래, 신화와 전설, 역사와 예술을 넘나든다. 다리는 은유로서 시가 되기도 하고 음악이 되기도 한다. 지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지었던 다리가 문화적 상상력의 매개로 확장되고,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점을 드러내는 순간 다리는 상징으로 거듭난다. 왜 우리는 다리를 지었을까? 다리는 인간에게 무엇일까? 다리는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갖는가? 왜 어떤 다리는 연결이 아닌 단절을 뜻하기도 하는 걸까?

저자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다른 시선에서 파노라마 같은 이야기들을 펼치며 우리를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그러면서 인간 삶의 덧없음과 영원함 사이에서 만들어진 신화, 전설, 종교의 다리, 다리와 관련된 인간의 삶과 문화를 연관지어 풀어낸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견우와 직녀의 칠월칠석 오작교 전설에는 사랑의 매개체로서의 다리가 등장한다. 자물쇠를 걸어 사랑을 맹세했던 연인들의 의식은 로마의 밀비오 다리에서 시작되었고, 록 밴드 너바나의 기타리스트 커트 코베인이 앨범을 제작할 때 영감을 받은 장소도 다리(영 스트리트 브리지)였다.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금문교는 기술과 자연을 하나로 엮은 일대 사건으로 더 유명해졌다.

다리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인도한다. 단순한 상징이 아닌, 숨겨진 의미가 있는 장소에 닿는 수단이다. 중세 로마에서는 다리가 지금의 광장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블루스를 중심으로 음악과 소리가 다리를 통해 성별과 인종, 대륙을 넘나들었다. 사람들이 실제 전쟁을 대신해 전쟁 장면을 재현했던 다리, 죽음과 단절의 징표가 된 다리도 있다. 이를 통해 세계화와 함께 한 국가의 자랑거리로 건설된 거대다리를 방문하여 대륙과 도시 사이를 가로지른 다리가 어떻게 새로운 문화권과 생활권을 넓히고 발전시켰는지도 탐구한다. 또한 두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매일 마주하는 교차점을 다리로 설정하여 개인과 사회를 결속시키는 정서적인 기능도 했었음을 알 수 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종착지가 아닌, 목적지로 나아가는 다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만남, 이별, 회상의 아이콘이 된 영화 〈애수〉에는 재회의 장소로 워털루 브리지가 등장한다. ‘연결’이라는 다리의 본질과 반대로 다리가 만든 사이 공간을 파괴하려던 에피소드도 있다. 2차 세계 대전 시기 히틀러의 애정과 관심 덕분에 파멸을 피한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처럼 우리가 지금 보는 풍경과 무관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들까지 흥미롭게 다룬다.

이 책은 기술이 만든 다리를 인문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다리’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풍경으로만 보고 건넜던 다리를 마음속에서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