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명의 도전과 한국대학의 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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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명의 도전과 한국대학의 응전
  • 손동현 성균관대 명예교수/우송대 교양대학 학장
  • 승인 2023.07.30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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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동현 교수에게 듣는다_ 『대학교육 혁신의 길: 메가트렌드를 이끌어 갈 대학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손동현 지음, 북코리아, 362쪽, 2023.06)

 

디지털 혁명이 불러온 문명사적 전환기에 처해 이 거대한 메가트렌드의 선두에 서서 새 시대를 열어가는 첨병이 되어야 할 주체는 역시 대학이어야 할 것이다. 아니 디지털 기술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놀라운 ‘보검’(寶劍) 자체가 대학이 수행한 연구의 산물이 아니겠나. 그렇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마당에 지식사회의 중심에 자리하는 대학의 혁신이 진지한 논의의 중심주제가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 가운데서도 교육의 혁신이 더욱 긴절(緊切)한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교육받는 젊은이들이 사회의 중추가 될 가까운 미래가 예측불허 미지의 세계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대학교육에서 혁신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특히 교육 내용의 구성 및 이를 수행하는 교육구조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것이 교육의 실질적 핵심에 관한 본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뜨거운 이슈가 되는 많은 문제들, 즉 대학재정, 대학의 거버넌스, 산학협력, 강사 처우, 대학입시 등등은 실은 대학교육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적 방책에 관한 교육 외부적인 문제이고, 교수-학습법, 교육 평가, 연구지원 등의 문제도 교육 내부에서 제기되는 것들이긴 하나 역시 바람직한 대학교육의 실천을 위한 수단에 관한 부차적 문제일 것이다.

사회상은 격변하고 있고 다가올 미래는 불투명한데 그 미래를 살아가야 할 대학생들에게 오늘 교육해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하며, 그런 교육활동을 담아낼 교육구조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교육이라는 것도 그 핵심엔 사유 세계의 깊이와 폭을 넓고 깊게 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일 텐데, 인간보다 더 탁월한(?) 사고 작용을 하는 지능기술이 등장하였으니, 교육의 역량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격변하는 사회상에서 우리가 우선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물론 ‘정보통신혁명’이다.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정보의 생산 및 처리, 그리고 유통에 찾아온 변화 중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산출되는 정보의 양이 범람할 정도로 급증했으며 그 유통의 속도와 범위가 놀랍도록 신속 광범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감추어져 있는 실로 새로운 혁명적인 것은 첫째 인지적 사유의 영역과 감각적 지각의 영역이 인체 밖의 물리적 기술 영역에서 서로 넘나들며 융합 호환된다는 것이고, 둘째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에 의거한 의사소통 활동에서 시간적·공간적 제약이 거의 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전자로부터는 논리적·합리적 사고를 기피하고 감각적 지각을 선호하는 문화생활이 널리 확산하게 되었고, 후자로부터는 인간의 욕구가 공간관계의 독점적 배타성과 시간관계의 불가역적 순차성을 뛰어넘어 동시적·총체적 충족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이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자의 현상은 비디오 컨텐츠가 범람하는 가운데 젊은이들이 도서보다는 영상물을 즐긴다는 사실에서, 나아가 (기호나 이모티콘을 활용해) 감각적 지각에 더 많이 호소하는 문맹적(illiterate) 의사소통 방식이 사고 활동을 요하는 문해적(literate) 의사소통 방식을 점점 더 많이 대체해 나가는 데서도 드러난다. 후자의 현상은 그러한 욕구 및 욕구충족의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추진되는 기술의 융·복합과 이에 기초한 산업의 융·복합 현상이 거스를 수 없는 문명사적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혁명적 변화는 자연히 지식사회의 지형을 바꿔놓는다.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은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글에 의한 의사소통을 통해 논리적·합리적 사고에 익숙해지게 했다. 그리하여 도서의 보급은 여러 방면에서 이성적 사유가 삶의 원리가 되는 근대를 연 문명사적 전환점이 된 것이다. 이에 비교해 볼 때, 오늘의 정보통신기술은, 기원(起源)이 실종된, 문맥에서 일탈된 ‘파편화’된 정보들이 범람하는 와중에서, 사유 대상을 감각 대상으로 변환시켜 놓음으로써 감각이 사유를 능가하는 삶의 방식과 문화의 양식을 널리 확산시키고 있다.

지식사회에서의 또 다른 변화는 인간의 욕구가 시·공적 제약을 뛰어넘어 동시적 총체적 충족의 가능성을 기대한다는 데서 유래한다. 그것은 곧 지식과 기술의 융·복합화에 대한 요구다. 욕구 충족의 방식이 동시적이고 총체적인데 그를 실현할 지식과 기술이 단편적이고 분과적이어서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없음이 당연하다.

이러한 변화는 지식사회가 전승된 지식의 고착과 독점에 머물지 않고 원활한 유통과 공유를 향해 개방되어야 함을 뜻하고, 동시에 그에 대한 대가로 지식이 인간의 실천적 행동을 선도(先導)하지 못하게 된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대책을 세워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교육은 어떤 변혁을 겪어야 할까? 대학교육은 이제 지식 습득 및 소비의 교육에서 지식창출 능력의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기성의 지식이 산업사회에 유용한 것이었겠지만, 다가오는 ‘세계화된 정보사회’에서도 그것이 계속 유용한 것이라고 믿을 수는 없기 때문에, 오늘의 대학생은 미래에 만나게 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능력을 함양해야 된다. 필자는 교육내용과 관련해 그 능력으로 다음을 제시해 본다(본서 23쪽).

(1) 파편화된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유기적으로 연결해 줌으로써 통일적인 의미체계를 구성해낼 수 있는 ‘지적 연결지평’과 심도 있는 통찰력

(2) 각 분과과학들의 특정 대상에 대한 전문지식들을 유기적으로 융합하여 새로운 창의적 발상을 할 수 있는 융·복합적 사유 능력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한국 대학은 이러한 도전에 응전할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① 분립된 전공학과의 전공학업이 대학교육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학과중심주의로 인한 교육과정의 폐쇄적 독자성이 문제고, ② 이와 더불어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획일주의로 인해 기초학문 분야의 전공학과들은 위축, 소외, 폐쇄되고 직업 교육 지향적인 응용학문 분야의 전공학과들이 대학의 중심역할을 한다는 점, 그리고 ③ 기초학문에 대한 경시 및 기초학문 분야 학과들의 편협성으로 인한 교양교육의 방치 등이 시급히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① 교수가 소속된 교무행정의 단위인 학과와 ② 학생의 학업 트랙과 ③ 신입생 모집 단위, 이 세 가지를 현행처럼 하나로 묶지 말고 각각 별개로 취급해 다양하고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학생 개개인의 현실적 교육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한 ‘맞춤형’ 교육을 실행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한국 대학교욱의 근본적 병폐인 ‘교육수요와 교육공급의 미스매치’를 지양할 수 있다. ‘교육수요와 교육공급의 미스매치’란 실은 직업지향 교육과 학문지향 교육의 차별성을 애써 외면한 데서 오는 현상이다.

여기서 크게 강조해야 할 것이 바로 전공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이 받게 돼있는 교양교육의 정상화 문제다. 교양교육을 그 본래의 취지대로 ‘기초학문교육’으로 실시한다면, 이는 앞서 말한 융합적 창의교육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양교육은, 그 본래의 이념대로 기초학문교육으로 실시된다면, 첫째, 균형 잡힌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건전한 가치관의 형성에 기여하고, 둘째, 새로운 응용지식의 창출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며, 셋째, 총체적 맥락 속에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적 연결지평’을 제공하게 되고, 넷째, (기초학문이란 것이 그 탐구영역이 광범하고 탐구내용이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주제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현실적 특수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직업교육에도 도움이 된다.

기초학문이란 세계와 인간의 진상을 파악하는 순수한 지적 모색이기 때문에 기초학문교육은 사물과 상황에 대한 통찰력을 심화시키고, 세계에 대한 시야를 넓혀 준다. 그러니 자연히 문제발견 및 문제해결의 능력을 함양한다. 이에 비해 응용학문은 기초학문의 탐구 성과를 현실의 문제 상황에 적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접적 도움을 줄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학문이다.

교양교육이 기초학문의 탐구 성과를 담아내는 교육으로 정상화된다면, 대학교육 전반이 분과 전문교육에만 매몰되지 않고 총합일반교육의 면모도 갖추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대학교육은 특히 오늘날과 같은 지능정보사회에서는 합리적인 과학적 수학적 사유능력과 예술적 감수성은 물론 인문학적 직관, 도덕적 성찰력 등도 함께 함양해야만 한다.

이상과 같은 생각을 기저에 깔며 쓴 글들이 본서를 채우고 있긴 하지만, 360여 개의 대학들이 병존하는 오늘의 한국 대학현실에서 필자의 이런 구상을 똑같은 수준으로 똑같은 방식으로 구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대학의 유형화를 제안했고 8개 유형의 대학들이 각기 차별적으로 갖춰야 할 교육과정과 교육구조를 제시해 보기도 했다. 이 졸저가 한국대학의 고등교육이 신문명의 도전에 적절히 응전하는 데 적으나마 참고가 되어 대한민국의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감히 희망해 본다.


손동현 성균관대 명예교수/우송대 교양대학 학장

현재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우송대학교 교양대학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독일 마인츠(Mainz)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대전대학교 및 우송대학교 석좌교수, 부총장을 지냈으며, 철학연구회장, 한국철학회장, 전국대학교양교육협의회장, 한국교양기초교육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공동체자유주의』(공저), 『세계와 정신』, 『미완의 화해』, 『세계존재의 이해』(공저), 『대학교양교육론』 등과 다수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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