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을 잡겠다고? - ‘킬러문항’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불균등 발전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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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을 잡겠다고? - ‘킬러문항’이 문제가 아니라, 대학의 불균등 발전이 문제다!
  •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7.2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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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최근 정부 여당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소문이 난 한국의 수능 평가 방식과 관련하여, “공정한 수능 평가가 되도록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출제에서 배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소위 ‘킬러문항’에 대해 “수십만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부적절하고 불공정한 행태”라며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비난이 수능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가중시켰다고 하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여기까진 좋다! 매년 40여만 명이 응시하는 수능시험에 고액의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만 풀 수 있는 ‘킬러문항’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 안 된다. 당연히 없애야 한다. 그건 옳은 판단이다. 그런데 그 후 발표되는 조치들은 그러한 기조와 맞지 않고, 내용도 황당하기만 하다. 

정부 여당은 사교육이 발흥하는 것은 공교육이 약화됐기 때문이라고 보고, 공교육 강화방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 내용이 황당하다. 먼저, 문재인 정부에서 폐지하기로 했던 자립형 사립고와 외국어고 및 국제고를 존치하기로 했다. 이것이야말로 교육 현장과 교육수요자인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행위다. 교육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만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뀐다면 학생과 학부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행정이 이렇게 안정성이 없으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 

더 문제인 것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존치가 가져올 효과다. 도대체 거기에 누가 입학하며, 그것으로 인해 누가 이득을 얻는가? 바로 지금까지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해 온 고소득계층의 자녀들이다. 이들 학교가 유지된다면, 그 학교들에 교육재정이 다시 집중될 것이다. 중저소득계층의 자녀들은 교육 조건이 다시 악화되어 큰 피해를 받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당정이 내놓은 안은 ‘교사의 수업 역량 평가를 강화하는 한편, 교권을 보호해 교사가 주도적으로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큰 문제의 소지를 가진 정책안이다. 교사의 수업 역량을 누가 어떻게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혹시 과거처럼 명문대 진학자 수나 학생들의 수능시험 점수로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학생 개개인의 행복 역량을 배가하는 교육이 아니라 오직 시험에 목매는 교육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교권을 보호한다면서 교사들의 노동조합 활동은 억압하고 있으니 진정성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정부가 책임지고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끌어올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낮아서 사교육에 의존한다고 보는 바로 이점이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음을 증명한다. 

기초학력이 낮아서 사교육에 의존한다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정의 진단과는 달리, 고액의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대개 대도시지역의 고소득계층 학생들이며, 이들은 대체로 기초학력이 높다. 오히려 지방 중소도시에 상대적으로 기초학력이 낮은 학생들이 많지만, 이들은 고난도의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 고액의 사교육을 받을 엄두도 낼 수 없는 학생들이다. 지방에도 사교육기관은 있지만, ‘킬러문항’을 푸는 연습을 반복하는 그런 사교육기관은 쉽게 찾기 어려울 것이다. 

기초학력을 높이기 위해 사교육을 받는 학생이 없지는 않지만, 대다수 학생은 동료집단(peer group) 가운데 성적 서열을 높이기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다. 기록 단축이 아니라 메달 획득에 더 큰 목적을 두고 트랙을 열심히 달리는 어떤 육상선수와 같은 모습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성적이 아무리 높게 나와도 순위에서 뒤지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성적이 좀 떨어졌어도 1등을 했으면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한국에서 사교육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생겨난 배경을 누구나 알고 있다. 전국의 대학들이 모두 서열화되어 있는 가운데 상위 서열의 대학들부터 성적순으로 학생을 선발하니까, 학생들이 자신의 서열을 높이기 위해 사교육을 찾는 것이다. 이과 출신들은 의·약학 계열과 과학기술계 대학, 문과 출신들은 법학전문대학원과 경영 계열을 중심으로 서열이 형성되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경제와 문화의 수도권 집중이 심화하면서, 수도권과 지방소재 대학 간 격차가 커져 수도권 대학들이 서열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 입학 지원자들은 삶의 성공과 자신의 행복이 어디에 있을지 알지도 못한 채, 대학 서열과 성적 서열에 따라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게 된다.

소위 상위권 대학 진학에 성공하면 이 대학들에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과 공·사기업들의 지원이 쏟아진다. 이들은 동료들보다 우월한 조건에서 고등교육을 이수할 수 있고, 졸업 후 노동시장에서도 한결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대학 입학 시점에서 만물박사 인재였던 한국의 대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학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더 깊이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것도 포기한 채 대학 문을 나서게 된다. 세칭 일류대학을 졸업하면, 국가의 주요 포스트를 장악한 학벌에 편입되고 이것으로 인생의 큰 목표(?)가 달성된 것이다. 고액의 사교육을 받아 소위 일류대에 진학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투자에 성공한 것이지만, 국가 인재들이 엉뚱한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소진하고 있으므로 사회적으로는 비효율과 낭비가 초래된 것이다. 

소위 상위권 대학 진학이 한국인의 대표적 욕망이 됐고, 학생과 학부모는 조금이라도 더 서열이 높은 대학 진학을 위해 사교육을 받는다. 이러한 국민적 욕망이 남아있는 한, 사교육을 효과적으로 막을 정책이 없다. 사교육 이권 카르텔이 있다면 이를 조사해야 하고 학원의 허위과장광고는 단속해야 하지만, 그런 조치로 학생과 학부모의 욕망을 꺾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의 근원이 ‘킬러문항’을 가르치고 수능 문제에 포함하여 기초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몰아넣는다는 사교육 카르텔에 있는 것이 아닌, 지역 간 그리고 전공 간 불균등 발전으로 인한 대학 서열화의 고착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위 잘나가는 수도권 대학에 집중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연구비 지원도 한계생산성 체감의 법칙이 실현되는 분야라서, 특정 대학과 특정 연구자에게 추가로 계속 지원해도 지식 생산량은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대학과 연구자별로 공평하게 분배할수록 지식 총생산량은 커지게 되어 있다. ‘글로컬대학30’ 같은 사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따름이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 사교육의 발호를 막겠다면, 전국의 대학들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소멸도 막을 수 있다.

 

박정원 상지대 명예교수·강원도대학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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