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고인류는 어디에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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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고인류는 어디에서 왔을까?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7.2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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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진화: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 온 여정 | 이상희 지음 | 동아시아 | 276쪽

 

우리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언제부터 우리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고인류학은 인류의 기원과 현생인류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을 밝히기 위해 50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인류의 모습과 특징도 탐구한다. 지속적인 발굴과 화석 및 유적의 DNA 분석을 통한 고유전체학 기술의 발전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인간’과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묻는다. 따라서 고인류학은 단순히 인류의 역사를 밝히는 작업이 아닌 현재의 발견과 연구에 따라 변화하는 역동적인 과정이며, 인간과 인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최신 고인류학 연구와 발견을 통해 인류의 기원과 진화 과정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과거의 가설들이 흔들리는 과정에서 새로운 연구와 가설을 소개하며, 인류의 역사와 진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날레디 등 고인류의 존재와 그들의 특징을 살펴보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인류의 진화에 관한 가장 혁신적인 지식을 소개한다. 특히 아프리카에서부터 한반도까지 인류 진화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이전에는 연구되지 않았던 한반도 고인류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인류의 기원, 환경 변화, 인종 다양성, 문화와 언어 발달 그리고 인간의 미래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며 우리에게 인류의 진화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제공한다. 그는 인류의 진화 과정을 강줄기에 비유한다. 인류는 서로 갈라지기도 하고 다시 만나는 강줄기와 같이 다양한 진화의 흐름을 거쳤다는 것이다. 또한 “고인류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기에 최신 연구 결과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다”라며,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고인류학 연구뿐만 아니라 고인류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바뀌고 있다“라고 말한다. 

2021년 6월, 중국 하얼빈에서 새로운 고인류 화석종이 발표되었다. 호모 롱기(Homo longi), 중국어로 ‘용’을 뜻하는 이름이다. 호모 롱기의 화석이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것은 1933년의 일로, 이 화석이 본격적으로 빛을 보기까지는 거의 100년에 달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화석에 남은 흙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연대 측정한 결과, 무려 14만 년에서 30만 년 전 사이의 오래된 고인류 화석종임이 밝혀지며, 다시금 아시아 고인류 연구에 불을 붙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밖에도 시베리아 알타이산맥에서 데니소바인의 화석이 발견되고, 중국 샹첸에서 210만 년 전의 고인류 흔적이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결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아시아 대륙은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대륙일 뿐만 아니라, 호주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사람들이 건너가기 위해서 아시아를 거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리적 위치를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까지 아시아가 고인류학계에서 이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21세기 들어 점점 더 많은 연구가 누적되면서, 아시아의 인류 진화사 역시 유럽이나 아프리카 못지않게 역동적인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용뼈’의 주인이었던 거대한 유인원, 즉 거인이 현생인류의 조상이 되었을까? 아시아의 고인류는 우리가 흔히 아는 고인류와 똑같은 진화 과정을 겪었을까? 한반도의 고인류는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쳐 ‘우리’가 되었을까?

2000년 함경북도 화대군 석성리의 나지막한 야산에서 세 명분의 사람 뼈가 발견되었다. 바로 현재 한반도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하는 ‘화대 사람’이다. 북한에서는 이 화대 사람의 연대를 30만 년 전으로 추정했다. 중기 플라이스토세, 중국에서 호모 에렉투스가 진화하던 시기다. 그때 한반도에 이미 고인류가 정착해 있었다면 그 후에 ‘한반도의 고인류’는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이 땅의 고인류를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뿌리를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이 지난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단군의 자손들’을 넘어서, 우리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고인류의 모습은 어떨까? 짐승 가죽으로 국부를 가리고 돌칼과 돌창으로 짐승을 사냥하는 남성들의 모습? 열매를 채집하고 토기를 만들거나 아이를 돌보는 여성들의 모습? 이러한 인식은 단순히 고인류를 상상하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고인류 시절부터 이루어졌다고 믿어져 온 성별 분업이 현대 사회의 성차를 설명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설명하는 최신의 고인류학에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줄리 레스닉(Julie Lesnik)의 ‘곤충식 가설’이다. 고인류가 필요로 했던 많은 열량을 ‘곤충식’에 의존했다고 한다면, 기존에 주류 가설이었던 ‘사냥 가설’로 설명되었던 수많은 시나리오가 뒤집히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고인류가 ‘사냥하는 인간’에서 ‘곤충을 잡아먹는 인간’으로 바뀌는 것 이상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 동물성 먹거리를 얻기 위해서 남성이 사냥을 전담하고, 여성이 채집을 통해 열매 등 식물성 먹거리를 확보하거나 양육을 담당했다고 하는 경제 분업 가설이 송두리째 와해되는 것이다. 즉, 고인류에 대한 가설이 흔들리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인식이 변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는 지금의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즉 우리를 만들어온 기반이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최신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면서 이러한 놀라운 변혁의 가능성을 담담하게 제시한다. 줄리 레스닉의 곤충식 가설만이 아니다. 사람의 거대한 머리와 그에 맞는 두뇌가 ‘빼어난’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류의 지위를 확립시켰다는 가설도 난항에 부딪힌다. 500cc 남짓한 작은 두뇌를 가지고 각종 창조적 활동을 해온 화석종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발견할 수 없던 시료를 발견할 수 있게 되고, 과거의 시료에서 전에는 읽어낼 수 없었던 사실을 읽어낼 수 있게 되는 등,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 맞춰 고인류학의 지평도 확장되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고인류학의 최신 연구들을 가로지르며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고인류’조차 여전히 변화하는 중이며, 그에 따라 우리 인류와 인류사 자체 또한 끝없이 흔들리고 있다. 이 흥미로운 상상들이 설사 폐기된다 해도 끊임없는 추상을 통해 고인류학은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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