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하는 나쁜 상상 - 아이유, 다른 성애를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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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못하는 나쁜 상상 - 아이유, 다른 성애를 노래하다
  •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 승인 2023.07.23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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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식 교수의 〈음악과 철학 사이〉

 

                                                            아이유 '챗셔' 앨범 재킷

[리뷰] 호네트의 〈인정투쟁〉으로 본 아이유의 〈제제〉

 

“흥미로운 듯, 씩 올라가는 입꼬리 좀 봐 / 그 웃음만 봐도 알아 분명히 너는 짓궂어
아아, 이름이 아주 예쁘구나 계속 부르고 싶어 / 말하지 못하는 나쁜 상상이 사랑스러워

조그만 손가락으로 소리를 만지네
간지러운 그 목소리로 색과 풍경을 노래 부르네 yeah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 잎사귀에 입을 맞춰
장난치면 못써 / 나무를 아프게 하면 못써 못써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 여기서 제일 어린잎을 가져가
하나뿐인 꽃을 꺾어가 / Climb up me / Climb up me”

 

아이유가 부른 노래 〈제제(Zeze)〉다. 이 노래는 노래가 나온 2015년 롤리타 신드롬(소아 성애)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제제는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소년인데, 이 노래는 ‘키 큰’ 라임오렌지 나무의 ‘어린’ 소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말하지 못하는 나쁜 상상’, ‘나무에 올라와’, ‘잎사귀에 입을 맞춰’, ‘꽃을 꺾어가’와 같은 말들이 선정적인 이미지를 준다고 비판을 받았다.

이 롤리타 신드롬 논란은 2018년 아이유가 주인공으로 나온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다시 제기되었다. 갓 스물을 넘긴 스물 하나인 ‘어린’ 여자와 스물 넷이나 많은 ‘나이든’ 마흔 다섯의 아저씨가 사랑을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갓 스물을 넘겼기에 아직 어린아이와 다름없는 이와 나이든 이가 사랑을 하는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아이유를 등장시킨 것은 아이유에게 씌워져 있는 롤리타 신드롬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이용한 것이란 비판을 받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퀴어(성 소수자) 축제가 열린다. 이번 대구 퀴어 축제에서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교통 방해와 도로 점거를 이유로 500여 명의 공무원들을 데리고 와서 행사 무대 설치를 저지하다 축제의 안전한 진행을 돕던 경찰과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홍 시장은 전날 SNS에 “1%도 안 되는 성 소수자의 권익만 중요하고 99% 성 다수자의 권익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99% 시민들이 불편한 번화가 도로점거 불법 집회는 공공성이 없다”라며 집회를 막는 행정대집행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축제조직위는 보수 종교단체가 신청한 집회 금지 가처분을 법원이 기각을 했는데도 축제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물리력을 동원하여 행사를 방해했다며 홍 시장을 고발했다. 홍 시장은 축제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불법 도로 점거를 반대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앞뒤 맥락을 살피면 해마다 보수 종교단체와 축제를 하는 이들 사이에 벌어지던 싸움에 홍 시장이 끼어들어 보수 종교단체 편을 들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미 어른이 된 ‘어린’ 사람을 사랑하는 롤리타 신드롬을 둘러싼 논란이든 이성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퀴어를 둘러싼 논란이든 어찌 보면 모두 다수의 성애 방식과 다른 성애 방식을 ‘인정’하는 문제를 둘러싼 싸움일 수 있다.

 

   Axel Honneth / 사진 출처=The University of Edinburgh (https://www.ed.ac.uk/history-classics-archaeology)

독일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h)에 따르면, 이렇듯 ‘인정’을 둘러싼 싸움이 치열한 까닭은 우리가 단순히 자기를 보존하여 생존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는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 받는 경험은 나의 정체성을, 그래서 나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책 〈인정투쟁〉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자기보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 인정받기 위해서 투쟁[한다].”

- 호네트, 〈인정투쟁〉

 

호네트는 정서, 권리, 사회적 가치라는 차원에서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 받는 경험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체적 학대나 폭행을 당하면 ‘욕구나 정서를 지닌 존재’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자기의 욕구를 실현하는 능력에 대한 믿음인 ‘자신감’을 잃게 된다.

또한 도덕적, 법적 권리가 부정당하면 ‘권리를 지닌 존재’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자기를 권리를 지닌 존재로 존중하는 마음인 ‘자존감’을 잃게 된다. 한편 존엄성이 부정당하고 모욕을 받으면 ‘사회적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 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 자기의 사회적 가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인 ‘자부심’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호네트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고 자신감, 자존감,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면 정서적, 도덕 및 법적, 사회적 무시에 맞서 자신의 정서적, 도덕 및 법적, 사회적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한 인정 투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정 투쟁은 결국 사랑이나 우정, 권리나 연대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서로 인정하여 자기를 실현할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내년 여름에는 대구에서도 퀴어 축제가, 아니 퀴어들이 정서로도 권리로도 사회적 가치로도 무시 받지 않고 자기 정체성을 당당히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하여 그들이 입꼬리를 씩 올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나쁜’ 상상을 하며 오르지 못할 나무에 올라가 조그만 손가락으로 소리를 만지고 간지러운 그 목소리로 색과 풍경을 노래 부르며 잎사귀에 입을 맞추고 두 뺨이 발그레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제제
아아, 이름이 아주 예쁘구나
말하지 못하는 나쁜 상상이 사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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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든 당당히 사랑하는 상상이!

 

김광식 서울대·인지문화철학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공과대학 과학·기술·철학과에서 인지문화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교양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인지과학의 성과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인지철학자이자, 여러 문화현상의 실천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철학자이다. 저서로 『BTS와 철학하기』, 『행동지식』, 『김광석과 철학하기』, 『다시 민주주의다』(공저), 『세상의 붕괴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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