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의 시대는 저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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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의 시대는 저무는가?
  • 채석용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철학
  • 승인 2023.07.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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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에세이]

 

K-POP 그 자체라 평가받던 BTS의 활동 중단으로 K-POP의 위세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데뷔한 지 134일 만에 빌보드 메인 핫100 차트에 진입하여 K-POP의 새 역사를 쓴 중소돌의 기적 피프티피프티가 그 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예기치 않은 추문에 휩싸여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문화계 한편에서는 K-POP 위기론까지 솔솔 나온다. 해외에서의 브랜드 평판이나 관련 매출액도 점차 하락하는 추세이다. 이렇게 K-POP의 시대는 저물어가는 걸까?

적어도 유튜브에서는 그렇지 않다. K-POP 조회 수는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K-POP을 주체적으로 소비하고 K-POP 문화를 재생산하는 세계적 흐름에는 변화가 없어 보인다. K-POP을 자기 방식으로 따라 부르는 커버송 영상과 K-POP에 맞춰 춤을 추는 커버댄스 영상은 오늘도 전 세계 K-POP 팬들에 의해 쉴 새 없이 공유된다. 특히 커버댄스의 인기는 대단하다. 그들에게 있어 BTS와 피프티피프티는 K-POP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단지 취미가 아니라 전업으로 한다. 예컨대 본업이 약사이지만 K-POP의 세계적 전도사로 더 유명한 고퇴경이 운영하는 <퇴경아 약먹자> 채널은 구독자가 197만 명이다. 프랑스의 라이진(RISIN)과 러시아의 루미낸스(Luminance) 팀은 멤버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직업적 커버댄스 팀이다. 에펠탑과 개선문을 배경으로 한국어 음악을 틀어놓고 그에 맞춰 칼군무를 춘다. 그들의 팬덤도 생길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파리 에펠탑 앞에서의 케이팝 랜덤플레이댄스 /  출처: 유튜브 블랙도어<br>
                           파리 에펠탑 앞에서의 케이팝 랜덤플레이댄스 /  출처: 유튜브 블랙도어

뭐가 그리 좋길래 저리 따라 하는가 싶어서 방콕하던 코로나 암흑기 시절 나도 한번 따라 해봤다. 나는 걸그룹 (여자)아이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들의 명곡인 <톰보이>에 맞춰 커버댄스를 연습해 봤다. 중학생 막내아들 녀석이 막대기가 뒤엉키는 듯한 내 춤사위를 보고 키득거리면서 핸드폰으로 찍어 틱톡에 올리더니 자기 영상보다 조회 수가 더 많이 나온다며 좋아라 한다. 기왕 하는 김에 에스파와 르세라핌의 노래에 맞춰 조금 더 도전해 봤다.

그렇게 한바탕 커버댄스 흉내를 내보고 난 뒤 내 몸에 변화가 생겼다. 샤워를 하다가, 혹은 운전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커버댄스를 추고 싶은 충동이 솟구쳐 오른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이런 충동이 갑작스레 솟구친다. 마치 수업의 필수 요소인 것처럼 노래와 수업내용의 논리를 연결하면서 춤추는 이유를 가져다 대지만, 사실은 그저 갑자기 추고 싶어서 춘 것뿐이다. 10초 남짓의 짧은 시간으로 자제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거부감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K-POP에 맞춰 커버댄스를 추면서 비로소 K-POP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K-POP은 단지 팝음악의 하위문화가 아니라 앞으로 전 세계를 지배할 주류문화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수 평론가는 K-POP이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댄스에 집중하지 말고 음악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댄스는 K-POP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K-POP이다.

K-POP 이전의 팝음악에도 댄스는 있었다. 그러나 팝음악에서 댄스는 구성요소, 혹은 조미료의 역할에 불과했다. 마이클 잭슨의 댄스를 흉내 내는 건 정말 어려웠고 그의 댄스를 흉내 내지 않더라도 음악 자체를 즐길 수 있었다. K-POP에 이르러 댄스는 드디어 음악과 화학적 결합을 이뤄냈다. K-POP에서 댄스를 구분해내는 것은 존 레논의 노래에서 가사를 걷어내는 것과 같다. 음악과 댄스의 화학적 결합은 음악사의 획기적인 사건일지 모른다.

17세기 이래 음악계는 독일이 지배했다. 바흐, 핸델, 모차르트, 베토벤 전부 독일어권 사람들이다. 그들의 음악은 노래가 빠진 기악곡 중심이었다. 슈베르트의 가곡과 바그너의 오페라가 있지만 일부이다. 바흐의 평균율이 클래식의 출발을 알렸고 베토벤의 교향곡이 정점을 찍었으며 쇤베르크가 클래식의 깊은 밤을 정화했다. 소련의 쇼스타코비치가 죽어가는 새의 날갯짓처럼 클래식의 마지막 창조력을 불태웠다.

20세기에 접어들어 클래식 음악이 창조력에 한계를 드러내면서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현상이 생겼다. 좋은 신곡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기존의 곡을 얼마나 잘 연주하는지 겨루는 콩쿠르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독일 중심 클래식 음악이 부닥친 창조력의 한계 상황은 영미권의 팝음악이 대체했다. 이른바 대중음악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누구나 쉽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게 되었다.

노래 중심의 영미권 팝음악 시대가 이제 댄스 중심의 K-POP 시대로 대체되고 있다. 춤은 노래보다 각인 효과가 크다. 한국어를 몰라도 영상만 보고 따라 할 수 있다. 50대 중년 남자도 맘만 먹으면 따라 할 수 있음을 내가 입증했다. 머리로 기억한 노랫말보다 몸으로 기억한 춤사위가 훨씬 오래간다. 지금 세계의 10대들은 60대가 되어서도 트와이스의 TT춤을 출 것이다.

 

GOTOE'S KPOP RANDOM PLAY DANCE in Köln, Germany with HISTORY OF KPOP / 출처: 유튜브 '퇴경아 약먹자' 채널

이와 관련하여 유튜브 영상 가운데 독일 쾰른에서 랜덤 플레이하는 영상이 주목할 만하다. 랜덤 플레이란 여러 댄스 크루 멤버들이 함께 모여 랜덤으로 연주되는 노래의 테마 부분 30~40초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집단 놀이이다. 보통 랜덤 플레이는 1시간 정도 쉬지 않고 진행된다. 앞서 소개한 <퇴경아 약먹자> 채널이 랜덤 플레이를 세계적으로 유행시켰다.

이 채널에 올라온 2019년 3월 영상은 놀랍다. 독일 쾰른 광장에 모인 수백 명의 독일 젊은이들이 K-POP에 맞춰 춤을 춘다. 최신 K-POP뿐만 아니라 올드 K-POP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1992년에 나온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 맞춰 단체로 춤을 춘다. 이것이 춤의 위력이다. 멜로디로 기억하는 클래식 음악에서 노랫말로 기억하는 팝음악으로 변화했고 이제 몸으로 기억하는 K-POP으로 변화하고 있다.

K-POP의 위대함은 정치사회적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즐기고 팝음악을 즐긴 건 제국주의 세력이 우리에게 강요했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 지배가 없었다면 우리가 베토벤과 엘비스 프레슬리를 무슨 수로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K-POP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인류사 최초로 정치사회적 침략 없이 이뤄낸 최초의 전 지구적 문화 전파 사례가 아닐지 모르겠다. BTS의 활동 중단과 피프티피프티의 불행한 몰락에도 불구하고 K-POP의 미래를 밝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채석용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철학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전대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철학, 글쓰기, 토론 교과를 담당하고 있다. 진화심리학과 신경과학의 성과를 활용한 유교윤리의 재해석과 조선 유학사의 재구성 등을 연구한다. 저서로 『최한기의 사회철학』, 『철학개념어사전』, 『논증하는 글쓰기의 기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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