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재편 … ‘효율성’에서 ‘가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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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재편 … ‘효율성’에서 ‘가치’ 중심으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7.22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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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7강_ 이재민 서울대 교수의 「공급망과 국제 관계」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국제 질서의 변화 및 전개 양상을 다루는 첫 번째 섹션 ‘오늘의 국제질서’ 제7강 이재민 교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공급망과 국제 관계


이재민 교수는 “기존의 국제 경제 체제를 유지해오던 기본 골격과 원칙”, 즉 “자유 교역과 투자 확대를 모토로 추진되어온 그간의 방정식”이 변화를 겪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지금 “공급망(Global Value Chain(GVC), Supply Chain)” 재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작업”이라고 지적한다. 그 같은 재편의 성격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비합리적이고 전체적인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가치와 기준이 뒷받침된다면 여기에 비중을 두고 공급망을 새롭게 구성하는 움직임”이며, 한마디로 “‘효율의 시대’가 가고 ‘가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자 “얼마나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것”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다만 “지금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 논의는 어떠한 상품, 서비스, 품목 및 기술에 대해 진행될지 아직 불투명하다는 것이 문제”이며 일단 “가장 첨예한 대립을 초래하는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공급망 재편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과정 중 “경제적 측면에서의 후퇴와 법리적 측면에서의 혼돈이 바로 작금에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과 관련”해 던져진 숙제라고 한다면 “결국 핵심은 이러한 부정적 효과를 어떻게 관리해나가면서 현재의 혼돈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라고 강조한다. 

 

지난 7월 1일, 이재민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7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위기의 국제 사회, 급변하는 국제 관계

기존의 국제경제 체제를 유지해오던 기본 골격과 원칙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 자유 교역과 투자 확대를 모토로 추진되어온 그간의 방정식이 이제는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지금 “공급망(Global Value Chain(GVC), Supply Chain)” 재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작업이다. 국제 사회에 대한 새로운 도전 과제의 등장과 이로 인한 국제 관계의 변화가 지금의 전체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변화가 기업과 개인이 활동하는 현장에서 발현되는 현상이 공급망 재편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 공급망이란 무엇인가?

공급망이란 특정한 상품(goods)을 생산하거나 서비스(services)를 산출하거나 디지털 품목(digital products)을 창출하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각각 필요한 구성 요소를 확인, 확보, 조달하는 국제적 체제를 의미한다. 동일한 국가 내에서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물론 공급망이라 할 수 있으나 지금 문제되는 공급망은 여러 국가를 포함하여 진행되는 ‘국제적’ 공급망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공급망이 경제적 측면에서만 조망되었다. 어떻게 하면 가장 경제적인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지에 초점을 두고 공급망이 구성되고 가동되었다. 그러므로 각각의 국가는 자신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 생산에 집중하고 이를 교역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이는 비단 최종 상품이나 서비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상품과 서비스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구성 요소와 부품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들도 비교우위를 갖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공급망은 상품, 서비스뿐 아니라 디지털 교역에 투입되는 디지털 품목, 그리고 이들 전체에 적용되는 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3. 지금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이란 무엇인가?

그런데 그간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평가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구성되던 공급망에 큰 변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비합리적이고 전체적인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가치와 기준이 뒷받침된다면 여기에 비중을 두고 공급망을 새롭게 구성하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효율의 시대’가 가고 ‘가치의 시대’가 도래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얼마나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자유, 인권, 민주, 정의, 형평, 환경 보호, 법의 지배 등 국제 사회가 중요하게 판단하는 여러 원칙과 기준들을 말한다.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에서도 이를 반영한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가치’는 추상적인 개념에서는 공감대가 있더라도 이를 구체적인 사안에서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또한 ‘가치’에 대한 평가는 계량화가 쉽지 않다는 측면에서 이에 기초한 새로운 공급망 구성은 그만큼 어렵고 논쟁을 촉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는 공급망 재편은 단순히 기존 공급망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있어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가치 요소에 대한 추가는 결국 공급망 구성에 있어 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러 정책과 접점이 생긴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재 가치와 기준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공급망 문제는 각국의 경제 정책, 외교 정책, 군사 정책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미중 분쟁이 격화되며 이제 주요 상품, 서비스, 품목, 기술별로 미국 중심의 그리고 중국 중심의 공급망으로 재편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자신들과 가치를 같이하고 신뢰하는 국가와 상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창출하겠다는 시도이다. 특정 영역에서 미국 주도의 공급망과 중국 주도의 공급망이 각각 별도로 존재하게 된다. 일종의 ‘공급망의 파편화(fragmentation of GVCs)’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 현재 공급망 재편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현재 공급망 재편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기존의 공급망이 그대로 작동한다. 여기에서는 경제적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이다. 그러나 국가의 사활이 걸린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해서는 공급망 재편이 진행된다. 그런데 지금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 논의는 어떠한 상품, 서비스, 품목 및 기술에 대해 진행될지 아직 불투명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일단 지금 가장 첨예한 대립을 초래하는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공급망 재편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다음 어떠한 항목으로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다음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하나의 대상 항목에 대해서 여러 공급망이 동시에 논의되기도 하고 때로는 개별적으로 논의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상품, 서비스, 품목, 기술 분야에서 각각 별도의 공급망이 구성되어 가동될 수도 있고 나아가 이들 전체가 동시에, 또는 이들 중 일부가 서로 결합하여 통합된 공급망을 구성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반도체 공급망이라고 특정 상품을 특화하여 공급망을 상정하는 경우에도 과연 여기에서 상품, 서비스, 품목, 기술 중 어느 구성 요소에 대한 공급망인지 여부도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나아가 현재 공급망 재편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에서도 다양한 형태가 감지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여 협정 당사국들끼리 공급망 구성에 관해 별도의 합의를 도출하는 경우도 있고, 협정 체결까지는 아니더라도 국가들끼리 합의를 통해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특정 국가의 독자적인 국내 입법 조치로 공급망 재편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미국의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 대표적이다. 때로는 정부의 관여 없이 개인이나 기업 차원에서 공급망 구성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는 움직임도 아울러 있다.

 

5. 지금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은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중요하게는 지금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 논의가 경제적 측면만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간이 갈수록 결국 이러한 재편은 경제적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또한 그러한 한도 내에서는 경쟁과 혁신도 제한될 것이다. 이 역시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보이지 않은 비용으로 작용할 것이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복리 후생이 후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가치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따른 대가를 어떻게든 지불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공급망 재편이 기존의 다양한 조약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기존의 여러 조약(통상 협정, 투자 협정 등)은 경제적 효율성 극대화를 염두에 두고 도입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새로운 평가 요소로 ‘가치’를 투영하게 되면 기존 조약에서 이를 수용하고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조약이나 협정 위반 논쟁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조약 문제만을 제기하여서는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없다. 이러한 규범과 현실 간의 간극을 어떻게 국내적, 국제적으로 조율해나갈 것인지가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이 우리나라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지금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이다. 그런데 그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우리나라에 더 크게 다가온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 대외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충격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경제적 측면에서의 후퇴와 법리적 측면에서의 혼돈이 바로 작금에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이다. 결국 핵심은 이러한 부정적 효과를 어떻게 관리해나가면서 현재의 혼돈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6. 그럼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고민해야 할 첫 번째 과제 중 하나는 먼저 어떠한 상품(goods), 서비스(services), 품목(products), 기술(technologies)이 작금에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에서 핵심을 차지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큰 변화가 일어나는 영역은 바로 각국의 국가 안보, 경제 안보에 핵심을 이루는 상품, 서비스, 품목, 기술과 관련된 경우이다. 가령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반도체는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품목이자 국가 안보의 핵심 상품이다. 다만 반도체 내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품, 서비스, 품목, 기술이 공급망 재편의 대상이 될지는 상이하다. 이러한 부분도 감안하여 과연 어떠한 부분들이 공급망 재편의 대상이 될 것으로 판단하는지 우리 스스로 내부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토대로 이들에 대해서만 공급망 재편 논의에 천착해야 한다. 일종의 ‘선별과 집중’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진행할 과제는 공급망 재편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 그 논거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다. 현재 공급망 재편을 둘러싸고 국가들 간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선택에 있어 어떠한 논리와 근거로 나설지에 대해 고민이 따라야 한다. 지금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이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평가가 아니라 가치(value)와 기준(standard)에 대한 평가에서 출발한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논리와 근거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있고, 우리 내부적으로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나아가 우리 입장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 배격, 자유 교역 증진, 조약상 의무 준수, 인권 보호, 비차별 원칙, 민간 분야의 자율성 확보, 공정하고 형평한 규범, 적법 절차의 준수, 법의 지배 등의 기본 원칙들이 바로 이러한 가치와 기준이 될 것이다. 이를 토대로 논리와 근거를 마련하여 우리나라의 공급망 참여 결정과 선택 결정을 설명해야 한다. 

세 번째로 진행할 과제는 적극적인 공급만 재편 논의 참여이다. 지금까지 공급망 재편 논의에 대한 우리나라의 자세는 수동적, 소극적인 것이었다. 이제는 보다 적극적으로 이러한 논의에 참여하여 우리 입장을 개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와 입장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과 연계하여 ‘합리적인 목소리(voice of reason)’를 낸다면 충분히 우리 의견을 반영할 여지가 있다.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우리 이해관계를 반영한 재편 작업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그러한 국가들이다. 이 과정에서 혹시 우리나라도 새로운 공급망 재편의 중심에 세울 만한 상품, 서비스, 품목 또는 기술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들 영역에서는 실제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그 과정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어려움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우리 이해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네 번째로 필요한 부분은 우리 내부 컨트롤 타워의 수립이다. 현재 전개되는 공급망 재편은 경제, 군사, 기술, 외교, 과학을 아우르는 국가 안보, 경제 안보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검토되는 사안이 되었다. 이 문제는 어느 특정 부처의 입장만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고 여러 부처가 머리를 맞대어 의견을 수렴하고 입장이 충돌할 경우에는 누군가가 최종적인 조율을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을 진행할 절차와 조직이 필요하다. 현재 논의되는 기술 동맹이 특정 분야가 아니라 국가 전체적 차원의 조율과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부적으로도 이러한 역할을 담당할 책임자를 지정해두어야 한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공급망과 국제 관계 (이재민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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