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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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교수
  •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 승인 2023.07.1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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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칼럼]

방학인데, 교수님은 뭐 하세요?
어, 놀아.

대학은 지금 방학이다. 교수들은 뭘 할까? 믿기지 않겠지만, 대체로 논다. 사실 이들은 일을 안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를 보다 못한 정부에서 계약임용제라는 걸 만들어서 일을 시키기 시작했으니, 4년 정도 일을 시켜보고 말을 잘 들으면 계약을 연장하도록 만들어버렸다. 그 뒤로 교수들은 일에 치여 노는 법을 잊어버렸고, 그때부터 이 땅에는 지식인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대학 교수들은 이제 자신들이 한갓 직장인이라고 자조한다. 어느 사회든지 지식인의 쓰임새는 격물치지 하는 것인데, 국가는 이를 막아버렸고, 사회는 이를 방조하였다.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사람들한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집에서 논다고 말한다. 그런 일들을 우리는 살림을 산다고 하는데, 밥을 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할 때 우리는 논다고 말하고 있으니, 우리는 어떤 숭고한 일을 할 때는 논다고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집안 살림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기에 아마도 논다고 했을 것인데, 마찬가지로 돈을 버는 일을 하는 것은 교수가 할 일이 아니다. 그래서 교수들은 출석부 정리하고, 성적 처리하고, 연구계획서 작성하고, 결과보고서를 제출하는 일을 할 때는 일을 한다고 하고, 정작 사물의 이치를 궁구할 때는 논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이 여가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는데, 이때의 철학은 모든 학문 활동을 일컫는 말이니, 저 말은 학문 활동이 노예들이 하던 생산 노동에서 자유로운 자들이 하던 활동이라는 말로 읽히기도 하고, 이는 달리 말해서 세상사에 대한 이론적 탐구 활동이 여유에서 비롯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고래로 생산 노동에서 면제된 자들이 있었는데, 이는 생계와 시간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또한 당장의 생산 노동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이를 살필 기회를 마련하는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대학 교수들은 원칙적으로 주 9시간 수업을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교육부에서 이 원칙을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규제라면서 폐지하고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는 “주당 수업시수를 12시간·15시간, 심지어는 그 이상으로 늘리는 대학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날 수 있고, 이로 인해 학생들이 부실한 수업의 피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대학지성 In&Out 2023.07.04) 반면에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수업시수를 9시간에 묶어 두는 것은 아주 오래된 사안이다. 수도권의 대규모 대학은 탄력적으로 운영을 하는 곳이 많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는 교섭에 의해 학기당 7시간으로 줄이기도 했다. 일부 대학은 연구중심교수를 택한 경우에는 3학점만 강의하도록 한 곳도 있다”라며 환영 의사를 표했다.(교수신문 2023.06.28.)

그런데 가만 보면, 저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그들이 말하는 것은 사실상 같다. 즉, “우리에게 주 9시간은 너무 많다, 우리를 놀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 자율에 맡기게 되면 힘의 논리가 작동하게 된다. 힘이 있는 자는 6시간을 하게 될 것이고, 힘이 없는 자는 15시간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나마 자신한테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할 일은 9시간 원칙의 폐지가 아니라 9시간 이내로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학 본부와 교섭을 해서 관철할 힘이 있는 자들은 6시간을 하게 되고, 그럴 힘이 없는 자들도 12시간을 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살고 너도 산다. 물론 이 길은 멀고도 험하다. 이보다 더 쉽게 6시간을 따내는 길은 9시간 책임 시수를 폐지하겠다는 교육부의 손을 잡는 것이다. 힘없는 자들이 죽어 나가더라도.

사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노동 차별을 이야기할 때 임금만 거론했는데 지금은 노동시간도 함께 이야기한다. 세상이 변했다. 그러나 현 정부는 거꾸로 간다. 노동부는 ‘주 최대 69시간 일하고 장기휴가 가능’이라는 제목으로 근로 시간 개편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ILO의 ‘괜찮은 노동’을 위한 기준 노동시간은 주 48시간이고, WHO가 인정하는 과로의 기준은 주 55시간이다. 1847년 영국은 공장법을 개정해 주 7일 중 최대 6일, 하루 10시간까지만 노동할 수 있게 했다. 그러니 주 최대 69시간은 야만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는 69시간만 보지 말고 장기휴가 가능도 보라고 할 것인데, 정부 말대로 이게 가능해지려면 직장마다 노조가 있고, 그 노조가 사측과 대등하게 노동시간을 두고 교섭할 수 있어야 하는데 노조 조직률은 14.2%에 불과하고, 그리고 이를 모를 리 없는 정부에서 노사협의로 근로 시간 조정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우리는 노사 자율에 맡기겠다고 할 테니, 너희들은 69시간씩 일을 시켜서 생산성을 향상시켜라, 아니겠는가?

이번엔 대학 차례다. 수업시수? 대학이 알아서 하라. 그런데 작금의 대학이 스스로 법칙을 세워 자신을 다스릴 수 있다고 누가 믿는가?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율성을 헌법으로 보장하는 연유는 국가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함인데, 학령인구 감소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지금, 정부는 반대 방향으로 질주한다. 대학 자율에 맡기겠다, 대학이 알아서 하라. 다들 안다. 그 자율성이 누구의 자유인지. 그것은 힘의 논리를 숭배하는 것이다.

화무십일홍인데, 역리를 따르는 자들은 그럼으로써 스스로 몰락을 재촉한다.

그런데, 강사들은? 그들도 방학 때 놀아야 하는데? 그들도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학자인데? 그러니 그들도 이리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러자면 그들도 방학 때 임금이 나와야 하겠지만.

방학 때 뭐 할 거야? 
어? 놀아야지요!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개혁, 특히 비정규교수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소통과 일치」, 「해명·치료·언어투쟁」, 「비트겐슈타인 삶의 방식의 변경」, 「대학 구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벼랑 끝 비정규교수」,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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