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 1900년, 문명의 초상화로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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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1900년, 문명의 초상화로 그려내다
  • 김지영 숭실대·역사학
  • 승인 2023.07.10 00: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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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부다페스트 1900년』 (존 루카스 지음, 김지영 옮김, 글항아리, 412쪽, 2023.06)

 

여러분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영화 ‘그랜드 호텔 부다페스트’를 통해 알게 된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의 호텔 이미지를 떠올리며 부다페스트의 이미지를 대강 상상할 수도 있고, 혹은 유럽 대륙 본토에서 최초로 지하철이 들어온 ‘옛 강대국’의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겠지요. 아니면 미디어를 통해 파리와 프라하와 더불어 세계 3대 야경도시 중 하나로 알고 있을 수 있어요. 이런 모든 이미지들은 부다페스트의 모습을 담고 있기도, 과장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단편적인 이미지들로는 부다페스트의 도시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에게 생생하고 선명한 모습으로 부다페스트를 그려냅니다. 

존 루카치는 자신의 책에서 부다페스트의 분위기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가을은 짧은 계절이라 할 수 있다. 매 순간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움은 예측하기 어려우며 이것은 멜랑콜리한 헝가리인들과도 같다.” 

또한 저자는 부다페스트를 잘 설명하는 구절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 ‘1900년대의 부다페스트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에 가을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라는 기록은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3월을 부다페스트의 가장 잔인한 달이며, 11월을 가장 슬픈 달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현을 처음 듣게 된다면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잔인한 달, 슬픈 달과 같은 수식어가 도시를 설명하는 데 적절할까요? 뮌헨의 10월은 옥토버 페스트의 풍요로움이 물씬 느껴지는 달이고, 로마의 4월은 부활절의 엄숙하면서도 장엄한 기독교적 전통을 느낄 수 있는데, 이에 반해 가장 잔인한 달 3월, 그리고 가장 슬픈 달 11월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부다페스트의 소리를 묘사하는 데 있어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부다페스트에는 동경과 우울한 음율의 존재만이 있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기억들의 잔향들보다 더 많은 밤의 깊음 속 고독과 침묵만을 들을 수 있다”고... 이러한 설명이 잘 와 닿지 않는다면 프란츠 리스트(Franz Listz)의 헝가리 광시곡 2번(Hungarian Rhapsody No.2)를 들으며 책에 포함되어 있는 삽화를 살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도시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마음 속 가을 동경과 우울한 음율의 존재와 같은 표현은 별로 적절치 못하다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고풍스러운 오스트리아의 빈이나 절제미와 효율성을 보여주는 독일의 베를린, 화려하고 아름다운 프랑스의 파리와는 다르게 이런 다소 울적한 표현을 통해 소개된 도시라면 자연스레 궁금해질 것 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부다페스트는 다른 도시가 가지지 못한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1933년 헝가리 피아니스트 레조 세레쉬(Rezső Seress)가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는 이러한 부다페스트의 독특한 분위기를 멜로디에 담아 표현한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인 존 루카치는 때로는 소설가들의 말을 빌려 부다페스트를 묘사하고, 때로는 음악적 용어를 통해 부다페스트의 분위기를 읊조리며, 때로는 알려지지 않은 부다페스트 화가들의 붓칠에 기대 부다페스트를 독자들의 눈앞에 그려냅니다. 이는 기존의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과는 사뭇 다른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단지 상상의 영역에 의존해야 했던 도시의 모습과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문학책을 읽듯 읽어낼 수 있습니다.

저자의 이러한 서술을 통해 묘사된 부다페스트는 단순한 설명 글이나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는 1900년대의 순간 속 부다페스트라는 장소를 눈앞에서 살아 생생히 움직이게 합니다. 루카스는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부다페스트를 이루고 있는 사회, 문화 그리고 이것들의 조화를 통한 당시의 모습을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저자 존 루카치는 헝가리 출신의 역사학자입니다. 자크 바르준 컬럼비아대학교 역사학 교수는 존 루카치를 ‘이 시대의, 아니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역사가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표현했고, 아이번 샌더스는 존 루카치에 대해 “옛날식 연대기 작가”이며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뛰어난 예술적 기교로 그려낸 ‘인상파 역사가’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의 전문성과 통찰력은 부다페스트의 도시 경관, 사회 구조, 그리고 일상의 세세한 부분들을 선명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이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존 루카스가 헝가리의 다른 역사학자들과 다른 비범한 시각의 책을 써낼 수 있었던 데에는 공산주의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후 오랜 시간 미국에서 교수직을 맡아 연구를 진행한 부분이 주요했다는 것이 역자의 생각입니다. 그 결과 루카치는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도시 부다페스트를 삶의 공간으로부터 분리해 타자화했으며, 정교한 객관화를 기반으로 자신이 살아왔고 기억하며 그리워한 도시 부다페스트를 생생하게 묘사해낸 것입니다. 

‘부다페스트 1900’은 1900년대 초 부다페스트에서 살던 사람, 삶의 방식, 도시민이 부다페스트를 어떻게 경험하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해 나갔는지를 엿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은 책입니다. 


김지영 숭실대·역사학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 인문한국플러스사업단 교수. 한국외대에서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외트베시 로란드 대학교(ELTE)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 HK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연구 교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 연구사를 역임했다. 헝가리 국제문제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으로도 활동했으며, 헝가리 전문가로서 헝가리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헝가리 현대사의 변곡점들』 등이 있고, 『메타모포시스의 현장』 등 여러 권의 공저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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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 2023-07-15 11:16:37
책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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