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원칙들
상태바
사라지는 원칙들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3.07.09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영남 칼럼]

‘교수님은 이번 학기 몇 시수의 수업을 담당하는가요?’ 봄이든 가을이든 새 학기가 시작될 즈음이면 정다운 인사말 대신 던지는 교수들의 질문이다. 같은 대학 안에서만 묻는 말이 아니다. 다른 대학 선생님들께도 물을 수 있는 교수들만의 언어이기도 하다. 비록 진부한 인사말일지언정 고등교육 현장의 노동조건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과도한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지, 아니면 적절한 시수인지 판단하려면 학내외를 넘나드는 보편적 규준이 전제되어야 한다. ‘주 9시간 원칙’이 그것이다. 그런데 최근 책임시수의 규준을 둘러싸고 큰 파열이 생겼다. 

얼마 전 교육부가 제7차 대학규제개혁협의회에서 심의·확정한 ‘고등교육법 시행령’의 일부개정령안을 입법예고하면서, 대학 교원의 책임시수 규정 자체가 대학 운영의 경직성을 유발하는 장벽이라고 지적하였다. 즉, ‘총장과 강사를 제외한 대학 교원의 교수시간은 매 학년도 30주를 기준으로 매주 9시간을 원칙으로 하되, 총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학칙으로 다르게 정할 수 있다’라는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을 개정하여 책임시수 자체를 고등교육법령이 아닌 학칙에서 정한다는 것이다. 대학의 역할이 산업체와 지자체와의 협력으로 확대되면서 전임교원의 주된 역할 역시 교육뿐 아니라 연구․산학․대외협력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기에 ‘주 9시간 원칙’은 교원의 역할 변화에 조응하지 않는다는 게 개정의 이유지만, 이는 대학 측에 건네는 노골적인 정치적 선물이 아닌가?

‘주 9시간 원칙’은 두 얼굴을 가졌다고 판단된다. 매주 최소 9시간의 수업을 담당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매주 최대 9시간의 수업을 담당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모자라면 제재하고, 넘치면 가산임금을 준다. 따라서 교원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노동조건이며, 총장에게도 매우 중요한 경영사항이다. 교수에게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만큼이나 가장 중요한 노동 규범이어서 오랜 시간 법전 속의 문구뿐 아니라 하나의 대학문화로 자리 잡았다. 1952년 제정되어 1998년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그 자리를 넘겨주기 전까지 교육법 시행령은 줄곧 ‘교원의 교수시간은 9시간’이라는 철칙을 고수하였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남아 있는 예외 규정조차 당시 교육법 시행령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만큼 ‘주 9시간 철칙’은 대학 구성원 누구에게나 넘지 않아야 할 마지노선이었고, 이를 기준으로 대학 안에서의 노동은 이루어졌다. 

이 선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1998년 고등교육법 시행령의 제정 이후부터였다. ‘5·31 교육개혁방안’이 세계화의 다른 이름으로 도입되면서 몇 해 뒤 교원의 지위와 관련한 계약임용제가 전격 실시되었다. 그리고 과거의 교육법 체제가 해소되어 고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이 등장하면서 ‘주 9시간 철칙’ 역시 큰 예외를 갖게 되었다. 총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학칙으로 다르게 정할 수 있다는 그 예외에 따라 대학마다 보직자나 유공자에게 책임시수 가운데 일부를 감면해주게 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입법 취지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예외 규정의 현실은 가혹하리만큼 정반대였다고 할 수 있다. 계약임용제에 따라 대학마다 등장하기 시작한 교수의 비정규직화는 교수들의 임금체계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고, ‘주 9시간 원칙의 예외’ 조항은 정년보장심사대상이 되지 않는 교수들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합법적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차별의 뚜렷한 징표가 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주 9시간 철칙’을 규정했던 교육법 시행령이 폐지되면서 새롭게 마련된 ‘주 9시간 원칙과 예외’의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이 전격 개정되어 책임시수 자체를 법령에서 삭제하고 이를 오로지 학칙에서 다룰 뿐이라는 개정안은 언뜻 대학의 자율성을 매우 존중하는 사고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라이즈 사업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고등교육의 책무성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국가가 라이즈 사업의 구상을 통해 고등교육의 재정부담에 관하여 궁극적으로 지자체에 그 책무성을 떠넘기는 것처럼, 이번 책임시수 규정 개정은 교수의 노동 규범에 관한 책무성을 개별 대학에 떠넘기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학이 아니라 총장이라는 대학의 권력자에게 넘겨주고 있다. 왜 그러한가?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학칙의 제정 또는 개정권자는 다름 아닌 총장이다. 물론 총장이 학칙을 제정 또는 개정하고자 할 때는 학칙에 따라 제정안 또는 개정안을 사전공고하고 심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시행령이 요구하지만, 그 절차를 정치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자는 엄연히 총장이다. 그렇다면 이제 답은 나온 셈이다. 만약 시행령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어 교수의 책임시수 규정을 각 대학의 학칙에서 정하도록 한다면 교수들의 책임시수는 결국 각 대학의 민주적 운영체제의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교수 등 대학 구성원들의 직접선거에 의하여 총장이 선출되고 대학이 민주적 체제에 의해 운영될 때 비로소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의미 있는 교수의 노동조건으로 규범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장이 일방적으로 임명되거나 어떠한 민주적 절차와 참여 없이 선출되는 조건이라면 이 개정안은 교수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교원으로서의 교수 지위 또한 최악의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 분명하다. 만약 교육부가 교원확보율만 거론하지 않는다면, 대학 측은 교수의 책임시수를 늘리는 데 혈안이 될 것이다. 그 결과 대학 측은 신임 교수를 초빙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책임시수를 넘긴 교수들에게 지급하던 가산임금 역시 더는 부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학칙을 통한 책임시수의 확대 가능성은 대학 안에서의 신진대사를 가로막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근원인 동시에, 대학이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여 대학재정을 확보하라는 국가의 애절한 당부이자 노골적인 협박이기도 하다. 이런 당부와 협박이 빈번하다 보니 고등교육의 재정에 관한 국가의 공적 책무성은 어느새 사회적 의제에서 실종되고 대학마저 그 운명을 사회가 아닌 각자도생에 맡긴 채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죽음의 문턱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제라도 처진 눈까풀을 치켜세워 괴물의 정치에 제동을 걸고,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 정하도록 한 대한민국헌법의 요청을 모색하고 이를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인데 교육법, 인권법, 법여성학, 사회철학, 사회과학방법론, 법인류학 등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경남 근현대사: 사건, 공간, 운동』(공저, 2023),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