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인류세, 인간과 자연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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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와 인류세, 인간과 자연과 역사
  • 이신철 가톨릭관동대·철학
  • 승인 2023.07.0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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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 (디페시 차크라바르티 지음, 이신철 옮김, 에코리브르, 456쪽쪽, 2023.05)

 

현재의 기후 위기는 인류의 가장 커다란 위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 기후 위기는 과학과 기술을 통해 강력해진 인간의 힘이 대지 시스템 전체를 교란한 결과이며, 전체적으로 보아 이제 인간은 이 지구에서의 인간의 생존 조건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 ‘인류세’에 들어서 있다. 이러한 ‘인류세’는 자연을 개조함으로써 스스로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인간에 대한 근대의 믿음을 다시 반성하고, 이 지구 위에서 인류가 앞으로 어떻게 계속 살아갈 것인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과 지구의 미래에 대한 과학적 파악과 윤리적, 철학적 반성 및 고찰 그리고 그에 기반한 정치적, 실천적 전망이 필요할 것이다.

이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는 Dipesh Chakrabarty, The Climate of History in a Planetary Age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and London, 2021)을 옮긴 것이다. ‘서벌턴 연구 집단’을 이끄는 역사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저자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는 기후 변화가 역사, 근대성, 지구화라는 오래 지속돼온 관념에 충격을 준다는 데서 출발한다. 《행성 시대 역사의 기후》의 과제는 이러한 문제 연관의 전체를 파악하고, 인간 행위의 변화된 본성으로부터 보편적인 것의 새로운 수용에 이르는 관념들과 대결하는 것이다.

이 《행성 시대의 역사의 기후》는 현대 인류가 부딪힌 기후 변화 문제를 역사 연구와 결합하고 있다. 차크라바르티에 따르면 현재의 기후 변화는 인류의 역사가 우리 행성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너무도 분명히 보여주었으며, 그런 까닭에 역사가들은 더는 물질적 현실과 비인간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는 한나 아렌트, 카를 슈미트, 브뤼노 라투르, 얀 잘라시에비츠 등과 같은 사상가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역사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잘 근거 지어진 설득력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서론 ‘행성적인 것의 고지’에서 시작하는 이 《행성 시대의 역사의 기후》는 1부 ‘지구와 행성’(1장. 네 가지 테제, 2장. 결합된 역사들, 3장. 행성: 인간주의적 범주), 2부 ‘근대적이라는 것의 어려움’(4장. 근대적이라는 것의 어려움, 5장. 행성적 열망: 인도에서의 한 자살 읽기, 6장. 지속하는 우화의 폐허에서), 3부 ‘행성적인 것 마주하기’(7장. 인류세 시대, 8장. 인간학적 개간을 향하여)와 후기 ‘지구적인 것은 행성적인 것을 드러낸다: 브뤼노 라투르와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논의는 간결하면서도 필수적인 정보를 망라하고 있으며, 논지를 논리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1부 ‘지구와 행성’에서 차크라바르티가 내세우는 주장의 핵심은 지구/행성의 구별이다. 그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와 ‘지구화’에서 ‘지구’라는 말은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지구화에서 지구는 인간 중심적인 구조를 가리킨다. 지구화의 역사는 인간이 탐험과 정복 및 기술을 통해 지구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낸 역사이며, 지구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망으로 축소된 역사이다. 반면 ‘지구온난화’에서 ‘지구’는 대지 시스템으로서의 행성을 의미한다. 행성은 인간을 탈중심화하며, 따라서 인간은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하나의 종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행성의 역사와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최근의 인류 역사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서로 다른 것으로 다루어진다. 하지만 차크라바르티에 따르면 기후 변화 문제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성이 결합하는데, 그는 이것이 역사와 인간 그리고 정치를 바라보는 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숙고한다. 탄소는 수십만 년 동안 대지 시스템에서 순환하며 기후와 다양한 형태의 생명체에 복잡한 결과를 초래한다. 나아가 현재의 기후 변화는 인위 개변적인 것이 분명하고, 같은 행성 시스템을 통해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체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현재의 팬데믹, 재생 가능 에너지, 화석연료, 기후 변화, 극단적 기후 사건, 물 부족, 생물 다양성의 상실, 인류세, 전 지구에 걸친 권위주의적이고 인종차별주의적이며 외국인 혐오적인 정권의 부상 등은 우리의 행성 차원에서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고 그것이 인간의 행동과 관련된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적 규모의 일상적 정치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느리고 장기적인 과정이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 

차크라바르티는 우리의 정치 제도와 그에 대한 역사적 이해가 매우 인간 중심적이며, 그래서 기후 위기가 대부분 지속가능성과 인간 불평등의 문제로서 다루어지고, 관련 담론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시대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두 가지 관점, 즉 행성적인 것과 지구적인 것에서 동시에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2부 ‘근대적이라는 것의 어려움’은 자유의 근대적 이념이 근대성과 근대화의 다양한 비판자들에 의해 도전받은 후에도 왜 여전히 그 매력을 유지하는지 탐구한다. 여기서 차크라바르티는 근대의 자유 개념과 화석연료 및 증대된 에너지 필요 사이의 밀접한 연관, 정치적인 것과 인간 몸의 연관, 인간의 도덕적 삶과 동물적 삶의 구별이 현재의 생물권 위기에서 어떻게 실패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는 지구의 오랜 역사와 지구상의 다세포 생명체 그리고 최근의 인간과 자본주의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문제 전체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물론 역사에서 비인간 행위의 중요성은 환경 사학자들에 의해 오랫동안 논의되어왔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으로 배경이나 외부적 작용으로 파악되는 데 그쳤다. 

차크라바르티는 우리의 일상과 복지가 비인간 세계와 대지 시스템의 거대한 과정과 내적으로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인위 개변적인 지구온난화 시대에 인간의 번영과 인간 사이의 정의 물음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몸과 지구의 비인간 요소 사이의 연결을 축소하는 것은 인간의 번영이라는 목표 전체를 실패로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거대한 지질학적 과정을 우리의 정치와 얽어매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차크라바르티는 인류의 역사와 지구의 자연사가 서로 하나로 얽혀 있으며, 따라서 인간 중심의 지구화 역사는 기후 변화가 제기하는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2017년 출간된 윌리엄 코널리의 책에 대한 오마주로서 바쳐진 3부 ‘행성적인 것 마주하기’에서 차크라바르티는 인류 역사와 행성의 길고 깊은 역사라는 불균형적인 시간 척도들 사이에서 새로운 이해의 방법을 모색한다. 그는 얀 잘라시에비치가 행성 중심 사유 양식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명하는 가운데 그 모든 문제를 껴안고 있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이 우리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적합한 개념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류세가 논의될 때 ‘대지 역사와 세계사 사이의 항구적인 개념적 교통’이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차크라바르티는 ‘인류세’가 지질학적 시간의 척도일 뿐만 아니라 본래는 인간이 대지에 미친 영향의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 개념은 자연 과학과 인문학 사이의 어딘가에 속한다. 물론 인류세와 관련해서는 무엇이 인류세를 초래했는지, 언제 인류세가 시작되었는지, 누가 이 시대의 개시에 책임이 있는지, 그리고 이 시대의 적절한 명칭으로는 ‘자본세’나 ‘경제세’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의 해결되지 않은 물음이 있지만, 인류세는 이제 대지 과학자와 인문학자를 하나로 모으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차크라바르티는 바로 여기에 이 개념의 설명적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현재의 기후 위기를 설명하기 위해 다소 널리 사용되는 유행어이지만, 차크라바르티는 이 개념을 능숙하게 분석하고 우아하게 논증하여 이해하기 쉽게, 아니 가장 좋은 의미에서 ‘도발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역사와 윤리, 정치와 자연,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이신철 가톨릭관동대·철학

가톨릭관동대학교 VERUM교양대학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관동대학교 VERUM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논리학》, 《진리를 찾아서》, 《철학의 시대》(이상 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정치철학》, 《세계철학사》, 《조선사상사》, 《헤겔 강의록 입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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