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경쟁 - 기술민주주의 대 기술독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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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패권 경쟁 - 기술민주주의 대 기술독재주의
  • 김대호 인하대학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3.07.0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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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기술패권』 (김대호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68쪽, 2023.05)

 

이 책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신냉전,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이를 기술민주주의와 기술전체주의의 경쟁으로 보는 관점에서 저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패권 시대에 한국이 한미 기술동맹, 자유주의 가치 기술동맹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협력하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점을 논의하였다.

이 책은 현대의 세계 질서를 변화시키고 있는 기술패권에 대해 3개의 영역으로 다루었다. 첫 번째로는 기경학, 기술냉전을 중심으로 논의했다. 두 번째로 기술패권의 영역을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 정보기술과 우주, 사이버전, 금융 등의 영역으로 다루었다. 마지막으로 기술동맹과 기술패권 시대 한국의 선택을 중심으로 논의했다.

근대 이후 세계사는 기술패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세기 1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래 세계의 역사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기술을 선점하여 세계의 경제·군사 헤게모니를 장악한 패권 세력과 그 패권 세력의 기술력을 추격하며 기존 질서를 타파하려는 신흥 세력의 공방으로 전개되었다. 영국은 석탄 에너지를 이용한 증기기관으로 인류를 육체노동의 한계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근대화를 통해 시민을 성장시킨 산업혁명으로 세계 질서를 이끌었다. 이어서 미국이 20세기 초 석유 에너지에 기반한 내연기관과 전기공학을 기반으로 세계를 주도해왔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중심이 되어 유럽연합, 일본, 오세아니아 국가들과 자유주의 가치를 공유하며 정치, 경제적으로 세계 질서를 이끌었다. 여기에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등과 같은 신흥국가들이 동참하여 경제 성장과 정치 민주화를 이루며 국가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질서는 인터넷의 등장으로 또 한 번의 산업혁명을 이룬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거대한 인구와 생산력을 무기로 급부상한 중국이 이러한 질서를 위협하며 도전하고 있다. 중국은 자유주의 정치경제 질서를 부정하고 중국이 중심이 되는 중화(中華) 질서로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자 도전하고 있다. 여기에 구소련을 뒤이은 러시아와 북한, 이란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합세하여 세계를 분열시키고 있다. 

이를 신냉전이라고 부르는데, 신냉전은 특히 기술패권 경쟁, 즉 기술 냉전 양상으로 진행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 냉전은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하지 않지만, 기술의 절대 우위를 통해 경쟁력을 갖기 위해 다양한 경제적, 비경제적 수단을 동원하는 경쟁이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지정학적 우위를 차지하고 글로벌 차원에서 정치·경제 질서를 주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기술패권 경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더 나아가 자유시장주의 모델과 국가자본주의 모델의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미·중 경쟁은 단지 개별 국가 간의 경쟁이 아니라 체제 경쟁의 성격을 갖는다. 미국과 중국의 서로 다른 체제가 경쟁, 대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갖는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 반면에 중국은 권위주의와 국가자본주의, 공산당 일당 독재, 인권 탄압의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 여기에 중화 민족주의 성향을 강화하여 중국 특색 사회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제는 첨단기술 보유 여부가 시장 경쟁과 통상을 넘어 국가 안보와 동맹 관계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저자는 경제 안보가 곧 국가 안보가 되는 기경학(技經學·technoeconomics)적 시대가 도래했다고 썼다. 보통 지정학과 기정학 개념은 많이 사용되어 왔으나 기경학은 아직 일반적인 개념은 아니다. 이것은 기술 경제와 안보가 결합된 상황 변화가 최근에 널리 확대된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기술패권이 전개되는 전체 영역을 다루지는 않았다. 기술 분야로는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정보를 선택했다. 반도체는 기술패권이 진행되는 대표적인 분야이면서, 산업의 쌀이자, 기술의 두뇌로 불리는 핵심 기술이다. 스마트폰, 노트북,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을 비롯해 에너지, 교통, 금융, 군사력 등의 필수 원자재로 국가의 인프라와 안보의 핵심이다. 따라서 반도체 생태계를 지배하는 것이 산업을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은 머신러닝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최근 GPTᐨ4와 같은 초거대 생성형 AI를 구현하며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은 인터넷 등장 이후 인류의 변화를 가져올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인공지능과 더불어 양자컴퓨터 기술이 떠오르면서 양자기술이 기술패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양자기술은 반도체는 물론이고 미래 산업계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되고 있다. 

기술패권이 전개되는 영역으로는 우주, 사이버전, 금융의 세 분야를 다루었다. 우주 분야는 그동안 국가가 주도하는 과학기술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우주의 상업화, 군사화가 진행되면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고 있다. 사이버전은 현대의 국가간 경쟁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 분야다. 이미 201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서 국지적으로 사이버전이 벌어지고 있다. 사이버전은 전시와 평시의 구분 없이 24시간 내내 일어나며, 전통적인 직업군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일반 시민까지 참여하는 복합적인 전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이버전은 배후를 찾아내기 어려운 데다, 전력망과 금융 시스템 등 사회 기반 시설에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어서 사회 혼란을 부추겨 전의를 상실케 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의 전형이다. 또한 기술,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며 금융도 기술패권 경쟁의 주요한 장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패권 경쟁은 이제 미국과 중국의 국가 간 경쟁을 넘어 기술동맹의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기존의 일대일로를 기술 중심으로 확장한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에 나서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은 자유주의 동맹과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기술동맹을 구축하여 대응하고 있다. 바야흐로 기술민주주의 대 기술독재주의의 경쟁 시대다. 

이 책에서는 기술민주주의 대 기술독재주의 경쟁의 시대에 한국이 한미 기술동맹, 자유주의 가치기술 동맹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협력하여 국제질서를 위해 역할을 분담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한국이 취했던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전략적 모호성, 즉 지난 30년 간 지속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고 줄타기 해온 전략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보았다. 이제 한국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과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민주주의에 기반한 기술 기준을 만드는 것도 한국의 가치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선택의 길은 분명하다고 보았다.


김대호 인하대학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인하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이며 사회과학대학 학장으로 일했다.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 버밍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미디어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정부의 여러 위원회, 공공기관 등에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 『자유시장주의 미디어 거버넌스』(2022), 『AI시대에 가치있는 것들』(2021), 『한국의 미디어 거버넌스』(2020), 『블록체인 거버넌스』(2019), 『Media governance in Korea 1980∼2017』(2018), 『인공지능 거버넌스』(2018), 『공유경제』(2017)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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