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문화의 진화를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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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문화의 진화를 이해해야 한다
  • 김준홍 POSTECH·인류학
  • 승인 2023.07.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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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에게 듣는다_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문화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가』 (케빈 랠런드 지음, 김준홍 옮김, 동아시아, 536쪽, 2023.05)

 

이 책의 키워드인 ‘문화’, ‘문화의 진화’, ‘유전자-문화의 공진화’ 모두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진화사회과학의 연구방향에 익숙하지 않다면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이라는 책의 제목과 ‘문화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만드는가’라는 부제를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흥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일상어에서 문화라고 하면 고급 예술 혹은 그러한 예술을 영위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지칭하는 때가 많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는 모방 및 가르침을 비롯한 사회적 학습으로 전달되는 정보를 말한다. 

문화의 진화라는 말은 그러한 정보 전달 방식이 동물의 여러 계통에서 진화해 왔으며, 그러한 문화의 작동 방식을 진화론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라는 말은 유전자의 진화와 문화의 진화가 서로의 진화 과정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이렇게만 말해서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사회과학의 역사를 따라서 이 분야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이론적 지형을 살펴보면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은 작곡을 미처 끝내지 못한 슈베르트의 교향곡과 달리, 다윈이 연구의 의의나 여파를 짐작했지만 미처 착수하지 못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프로젝트는 문화의 진화와 공진화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인데, 다윈이 살던 시기에는 그것을 연구할 만한 선행 연구나 적절한 실험 도구가 없거나 연구할 만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문화에 대한 진화론적 연구는 다윈 사후 100년 정도가 된 198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으며, 2000년대가 되어서야 중흥기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문화에 대한 진화론적인 접근이 왜 그렇게 늦게 시작되었을까? 그러한 접근이 시작되기 이전에는 유전자, 즉 본성을 바탕으로 동물의 모든 행동을 이해하려 애썼고, 인간도 거기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등장한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나 <인간 본성에 대하여>는 그러한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윌슨은 당시 동물행동학의 연구 방식을 인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로 인해 당시 본성과 양육 논쟁 중 양육 진영(문화인류학, 사회학 등등)에서 많은 공격을 받았으며, 진화생물학 진영 내에서도 동물에 적용하던 이론을 인간에 가감 없이 그대로 적용했다는 점, 현장 연구를 해서 자료를 구하고 그 자료에 대한 엄밀한 통계분석을 제시하지 않고 일화 중심의 사례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 사회생물학의 문제점을 극복한 새로운 세 분파의 진화사회과학이 등장하였다. 진화심리학, 인간행동생태학,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 그 세 분야인데, 각각 실험실 중심의 인지심리학, 수렵·채집 사회를 비롯한 소규모 사회를 참여 관찰하던 인류학, 수학적 모델링에 기반한 집단유전학이 그 뿌리였다. 해외 학계에서는 이 세 분야가 거의 동등하게 자웅을 다투었다면, 국내에서는 진화심리학 편중 현상이 도드라진다. 필자를 제외한 국내 진화사회과학자들이 진화심리학적인 접근을 추구하고, 번역된 진화사회과학 서적들의 대부분이 진화심리학 서적이어서, 대부분 대중들은 진화심리학을 진화사회과학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해외 학계에서는 1990년대 많은 각광을 받았던 진화심리학은 점점 지지자들을 잃고 있다. 그 이유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요 가정에 강점도 있지만, 약점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며, 90년대 이후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연구가 드물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전 세대의 사회생물학과 마찬가지로 유전자 진화 중심의 본성주의자들이며, 인류 진화사의 99퍼센트가 넘는 기간 동안 수렵 채집자로 살아왔기 때문에 농업과 도시의 등장 이후의 현대인들이 석기 시대의 본성을 가지고 현대 문명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적응 지체#adaptive lag#(인간의 마음에 작용하는 느린 자연선택이 급격한 환경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개념)라는 개념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며, 인간의 행동 중에서 본성의 영향이 강한 분야인 양육과 짝짓기에는 강력한 설명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본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여겨지는 짝짓기마저도 모방을 비롯한 사회적인 학습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동물의 문제 해결 능력 중 놀라운 사례로 꼽히는 까마귀의 견과류 깨먹기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까마귀는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사거리 중간에 견과류를 떨어뜨려 놓고 다음 빨간불일 때 내려와서 견과류를 집어 먹는다.

사회적 학습은 초파리 및 어류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분류군에서 관찰될 정도로 동물계에 광범위하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회적 학습자인데, 긴 성장기와 생애사가 이를 대변한다. 비교동물학적으로 볼 때 변화가 심한 환경에 살거나 학습의 필요성이 높을 때 성장기가 길어지고 생애가 길어진다. 인간의 뛰어난 사회적 학습 능력의 비밀 중 하나는 효율적인 모방 능력이다. 이 책에서 여러 실험과 수학적 모델로 보여주다시피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특정한 맥락과 정보에만 특수화된 사회적 학습자가 아니라 맥락을 가리지 않고 매우 효율적으로 가르치고 모방하는 일반적인 사회적 학습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 매우 드문 가르치고자 하는 의지 및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며, 언어를 통해서 정보를 위계적으로 구조화하여 전달한다. 이러한 사회적 학습을 통해 인류는 다른 동물에는 존재하지 않는 거대한 집단 지성을 누적해 왔으며, 세대가 거듭될수록 지속적으로 누적되는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다. 침팬지의 도구가 몇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하다면, 인간 사회에서는 과거와 동일한 수준의 도구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요 메시지는 문화는 단순히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문화가 인간의 진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유전자와 문화가 공진화 했으며, 그 공진화에서 문화의 역할에 주목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류진화사를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고 하며, 초기에는 유전자의 진화가 주도하던 시기였다가 유전자와 문화가 공진화하는 시기를 넘어서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 혁명 이후에는 문화의 진화가 주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가 유전자를 끌고 가며, 양육이 본성을 끌고 가는 모양새다. 다른 동물과 달리 공진화에서 문화의 역할이 커진 이유는 언어라는 소통방식의 진화 이후 인간의 언어로 구축한 환경이 새로운 학습 동기를 끊임없이 제공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강점 중 하나는 모든 좋은 과학책이 그렇듯이 자신의 주장 뒤에는 탄탄한 증거가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에는 비교동물학적 증거를 비롯하여 수학적 모델링, 사회과학자들의 데이터, 고고학 증거, 유전학 증거 혹은 실험 증거가 포함된다. 더욱더 놀라운 점은 이 연구들의 80퍼센트 이상은 저자의 실험실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을 완결한 자는 다름 아닌 저자와 그 동료들이다.


김준홍 POSTECH·인류학

포항공과대학교 인문사회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인류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학교에서 생물문화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 협력의 진화, 문화의 계통발생도, 인간 문화의 고유성 등을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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