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 함허정 … 섬진강 제월섬이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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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 함허정 … 섬진강 제월섬이 한눈에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02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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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전남 곡성 제월섬과 함허정

 

제월섬의 끝자락을 휘도는 물줄기와 그 맞은편 절벽에 걸터앉은 함허정이 보인다. 숲의 짙은 그늘 속에 까맣게 앉아 있던 정자가 스르륵 눈 뜨듯 점점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제월섬은 섬진강이 순창과 곡성의 경계를 이루며 굽이쳐 내려오면서 만들어 놓은 하중도다. 주변으로는 제월습지가 광활하다. 멀리 섬의 끝자락을 휘도는 물줄기와 그 맞은편 절벽에 걸터앉은 정자가 보인다. 섬을 건너는 다리와 정자를 동동 번갈아 보다 다리로 향한다. 다리 입구에 ‘숲 체험 교육장, 꿈 놀자 학교, 숲 놀이터, 제월섬 200m’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콘크리트 다리 아래로 강물이 손에 닿을 것만 같다. 오늘 강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급하게 흐른다. 섬을 보느라 강이 이리 너른 줄 몰랐다. 작은 새가 다리위에 고인 얕은 물웅덩이를 피해 통통통 걷는다. 새들도 발이 젖는 걸 싫어하나 보다.    

 

제월섬에 오르면 가장 먼저 광장에 서 있는 사람 조형물을 만난다. 2022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제월섬 국제자연미술판타지의 출품작이다. 

오보록한 갈대밭을 지나자 넓은 잔디광장이 나타난다. 한 사람이 바삐 숲을 향해 가다 우뚝 멈춘다. 땡, 하면 다시 제 갈 길을 갈 것도 같지만 내가 먼저 후다닥 숲으로 든다. 울창한 녹음 속에 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걷기 좋게 뻗어 있다. 이 길 외에는 모두 폭폭하거나 푹푹하거나 질척한 땅이다. 그 땅에 소나무 숲이 있고 메타세쿼이아 숲이 있고, 단풍나무 숲이 있다. 숲에는 지난밤 연금술사들이 집회를 가졌을 것만 같은 은밀한 파티장이 있고, 체어맨 섬에 표착한 15소년이 지었을 법한 얼기설기 나무집도 있다. 새들은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지저귄다. 멈추어 가만 귀 기울이면 지저귐도 멈춘다. 새들은 가지와 가지를 넘나들며 이파리 사이에 숨어 이방인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듯하다. 

 

울창한 녹음 속에 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걷기 좋게 뻗어 있다. 이 길 외에는 모두 폭폭하거나 푹푹하거나 질척한 땅이다. 

제월리(霽月里)는 산 많은 곡성에서 드물게 보이는 평야지대의 마을이다. 섬진강이 마을을 달처럼 둘러싸고 흘러 ‘제월’이라 했다고 한다. ‘제월’은 ‘비 갠 하늘의 밝은 달’이라는 뜻이다. 1960년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댐인 섬진강댐이 만들어지면서 섬진강의 유속은 느려졌다. 강물은 제가 품고 있던 흙이며 모래 따위를 자꾸만 이곳에 부려놓았고 그것들은 쌓여 섬이 되었다. 모래섬에 풀들이 뿌리를 내렸고, 풀들은 자라났고, 땅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섬과 나란히 강변을 걷는다. 나무들 사이로 아직도 가만히 서 있는 섬사람이 보인다. 제월섬의 면적은 6만㎡(1만8000평)쯤 된다. 
메타세쿼이아 숲. 1980년대 묘목이었던 나무는 장성하여 원시림의 분위기를 풍긴다. 이곳에서 숲 체험에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1980년대에는 한 개인의 묘목 재배장이 되었다. 그는 메타세쿼이아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등 30여 종의 묘목을 심었다. 그러다 섬진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정부에서 부지를 사들였고 이후 방치되었다. 갈대와 잡목이 무성하게 자라났다. 주민들도 섬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사람들은 ‘똥섬’이라 불렀다. 그러는 동안 묘목들은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었다. 삵과 노루, 수달과 같은 야생동물들이 섬의 주인이 되었고  계절에 따라 황조롱이, 논병아리, 쇄오리, 검은등할미새 등이 찾아 왔다. 제월섬은 누구의 돌봄도 없이 저 스스로 생태계를 회복했다. 
    
 

제월섬은 아이들이 뛰어놀며 배우는 숲속 놀이터가 되었다. 숲 곳곳에 놀며 배우고 만든 여러 결과물들이 남아 있다. 

몇 년 전 곡성군은 이곳의 잡초와 잡목을 걷어내고 쓰레기를 수거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놀며 배우는 숲속 놀이터로 단장했다. 그리고 마을 이름을 따 ‘제월섬’이라 명명했다. 섬도 꼭 반달처럼 생겼다. 곡성군은 이곳에서 다양한 숲 체험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다. 숲 속에 아이와 부모가 함께 만든 트리 하우스가 있다. 2022년에 진행한 ‘꿈꾸는 나무 놀이터’ 때 지어진 집이다. 치렁치렁 연결된 밧줄을 타고 나무를 기어오르는 트리 클라이밍, 나침반과 지도를 활용해 정해진 시간 내에 최종 목적지까지 돌아오는 숲 오리엔티어링 프로그램도 있다. ‘꿈 놀자 학교’는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 플랫폼이다. 지난해 이곳에서는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가 열렸었다. 총 14개국 60여 명의 예술가들이 참가했고 당시에 출품된 몇몇 작품이 섬에 보물처럼 남아 있다. 

 

제월섬은 아이들이 뛰어놀며 배우는 숲속 놀이터가 되었다. 숲 곳곳에 놀며 배우고 만든 여러 결과물들이 남아 있다. <br>
제월섬은 아이들이 뛰어놀며 배우는 숲속 놀이터가 되었다. 숲 곳곳에 놀며 배우고 만든 여러 결과물들이 남아 있다. 
제월섬에 오르면 가장 먼저 광장에 서 있는 사람 조형물을 만난다. 2022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제월섬 국제자연미술판타지의 출품작이다. 

물가를 따라 절벽의 정자로 간다. 제월섬 북단의 다리를 건너 정자의 뒤편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저 섬과 나란히 강변을 걷고 싶다. 나무들 사이로 아직도 가만히 서 있는 섬사람이 보인다. ‘땡’ 해주고 나올 걸 그랬나. 길 가에는 유채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 연분홍 낮달맞이꽃과 청보라 빛 수레국화가 무리지어 여름을 소리치고 몇 송이 개양귀비가 선명히 붉게 도도하다. 소나무와 참나무의 짙은 그늘 속에 까맣게 앉아 있던 정자가 스르륵 눈 뜨듯 점점 선명히 모습을 드러낸다. 함허정(涵虛亭)이다. 그 절벽아래 오른쪽에는 몇 채의 한옥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제호정(霽湖亭) 종택이다.       

 

높다란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 소나무들 사이로 고즈넉한 돌계단을 오른다. 함허정은 작은 문 속에 날아갈 듯 처마를 펼치고 있다. 
함허정은 제호 심광형이 중종 38년인 1543년에 건립한 정자다. 최소한의 땅을 다듬고 자연석을 주춧돌 삼아 욕심 없이 지은 집이다. 

제호(霽湖) 심광형(沈光亨)은 조선 중종 때의 선비로 해주목사와 병조참판을 지낸 청송 심씨 심안지의 손자다. 그는 학문이 깊고 박학다식하여 영호남에 명성을 떨쳤으나 입신양명과 부귀에 뜻을 두지 않아 벼슬을 거절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과 함께하며 살았다고 한다. 제호정 종택은 그가 1535년에 지은 집이다. 그는 사랑채에 군지촌정사(涒池村精舍)라는 현판을 걸고 곡성과 광양, 함평, 순창 등지의 후학들을 가르쳤다. 군지촌정사는 ‘큰 못 마을에 학문을 가르치려고 베푼 집’이라는 뜻이다. 사랑채에는 담장이 없어 모두에게 열려 있다. 측면에는 망서재(望瑞齋)라는 현판이 하나 더 걸려 있는데 옛날 서석산이라 했던 무등산을 바라본다는 의미다. 함허정은 중종 38년인 1543년에 건립한 정자다. 절벽 아래 바위는 거북이를 닮았다고 해서 귀암 또는 구암이라 불린다. 그와 함허정을 찾은 묵객들이 세월을 낚던 조대다. 그는 함허정에서 7년을 지냈고 1550년에 세상을 떠났다. 

 

제호정 고택 사랑채인 군지촌정사. 측면에는 망서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55호로 지정되어 있다. 
낮은 담장 너머로 섬진강과 제월섬이 내려다보인다. 심광형의 시대에 섬은 없었다. 강은 호수 같았고 너른 모래사장에서는 매년 봄마다 옥과현감의 향음례가 열렸다. 

고즈넉한 돌계단을 오른다. 작은 문 속에 날아갈 듯 처마를 펼친 함허정이 보인다. 작은 방 2개에 소박한 마루가 둘러진 정자다. 최소한의 땅을 다듬고 자연석을 주춧돌 삼아 욕심 없이 지은 집이다. 지붕 아래에 창암 이삼만의 필체라는 함허정 현판이 걸려 있고 마루에는 시인 묵객들의 편액이 빼곡하다. 낮은 담장 너머로 제월섬이 내려다보인다. 심광형의 시대에 섬은 없었다. 강은 호수 같았고 너른 모래사장에서는 매년 봄마다 옥과현감의 향음례가 열렸다. 강물소리도 새소리도 술잔 부딪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나무의 무성한 그림자만이 몸을 간지럽힌다. 함허정의 함(涵)은 젖다 또는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허(虛)는 비우다 또는 욕심이 없다는 의미다. ‘함’ 할 수는 있으나 ‘허’ 하기는 어렵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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