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세계 질서와 도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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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세계 질서와 도전들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7.02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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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4강_ 전재성 서울대 교수의 「자유주의 세계 질서와 도전들」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국제 질서의 변화 및 전개 양상을 다루는 첫 번째 섹션 ‘오늘의 국제질서’ 제4강 전재성 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자유주의 세계 질서와 도전들


전재성 교수는 우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관하여 그 “변천 과정”과 “성립의 어려움”을 살펴본다. 그에 이어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의 등장”이라는 이슈를 중심으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유지해온 미국의 쇠퇴, 그리고 미국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경제적 기반이 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작용들” 및 “이로 인한 역세계화 혹은 반세계화의 흐름과 포퓰리즘 정치 운동, 자유주의 국제 질서 속에서 강화되었다고 보았던 민주주의 정권들의 반민주적 역진(backsling), 개방적인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약화 및 보호주의의 만연 등의 현상”을 짚어본다. 이 같은 현실을 두고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쇠퇴에 미국 스스로가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약화가 중국과 러시아 등 미국에 반대하는 국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시도한다. 끝으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미래를 보는 제3세력의 시선들”로서 유럽, 중동과 인도, 남반구 국가들의 입장을 훑어본 다음 “한국 외교의 과제”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지난 6월 10일, 전재성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4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본질과 역사

1)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개념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 질서를 지칭한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여러 국가들 간의 합의와 협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다자주의 질서로 이 질서에 속한 국가들은 다자주의 합의에 의해 질서를 이루어가면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치적, 사회적 규범들, 즉 인권의 존재, 법에 의한 지배 등의 규범을 준수하는 것으로 본다. 국제 질서에서는 이러한 규범들을 발전시켜 국제법의 존중, 국가 주권의 준수, 내정 불간섭, 협의에 의한 갈등 해소, 열린 경제 질서의 유지 등을 주된 규범으로 삼는다.

2)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변천 과정

냉전기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무엇보다 공산권이라고 하는 타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공동의 안보적, 이념적 적대 세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가들은 이를 위해 상당한 양보와 협상을 기꺼이 수용하였고 미국은 공산권과의 대립 속에 자유 진영의 유지에 필요한 다양한 양보를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로부터 이끌어냈다. 이들의 안보적 필요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유지에 필요한 이점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동시에, 원래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 이념과 위배되는 일방주의적 정책 결정, 3세계 국가들 내에 비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지원, 자국 중심으로 조정된 보호주의 정책 등 여러 형태의 변이가 나타났다.

반면 탈냉전기 30년 동안 미국의 정책은 자국의 이념과 정책 노선에 따라 국제 질서를 조성하고 유지했다. 이러한 점에서 탈냉전 30년간의 국제 질서는 온전히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실험장이었다. 2022년 10월에 발간된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에선 탈냉전 30년이 명확히 종결되었다고 선언하고, 탈냉전의 종식, 혹은 탈탈냉전기의 시작을 고했다. 

3) 자유주의 국제 질서 성립의 어려움

정치 철학에서 논하는 바의 자유주의는 주권적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정치 질서로, 개인의 의사가 반영된 정치 질서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시해야 한다. 과연 국가들 간의 관계가 국가가 아닌 개인의 자유를 최대로 보장하는 질서를 만들 수 있는가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과연 일관되게 유지되어왔는지 역시 문제이다. 미국은 개인의 인권, 국가의 주권 등을 가장 중요한 국제 질서의 규범으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인권과 주권 간의 충돌,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한 인권 외교의 자의적 활용, 내정 간섭 등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리더라고 자처하기 어려운 다양한 정책적 변이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자유주의는 미국 주도의 자국 중심 외교 정책을 합리화하는 이념으로 제시되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2.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의 등장

2020년대에 들어선 오늘날,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 팽배하다. 무엇보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유지해온 미국의 쇠퇴, 그리고 미국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경제적 기반이 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작용들, 이로 인한 역세계화 혹은 반세계화의 흐름, 포퓰리즘 정치 운동, 자유주의 국제 질서 속에서 강화되었다고 보았던 민주주의 정권들의 반민주적 역진(backsling), 개방적인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약화 및 보호주의 만연 등의 현상이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성공과 확대의 논리 자체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약화를 낳는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3. 미중 전략 경쟁의 추이와 자유주의 국제 질서

1) 미중 전략 경쟁의 조정 진입?

미중 관계는 2017년 11월 하노이에서 열린 APEC 회담에서 미국이 인도, 태평양 전략을 공표하면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한다. 트럼프 정부의 국내 정치 입지가 약화되면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고, 미중 전략 경쟁은 경제 부문을 넘어 군사 안보와 가치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바이든 정부 역시 중국에 대한 강한 견제 정책을 추구했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국들과의 관계 강화, 새로운 파트너십의 추구, 다자주의 국제 제도의 적극적 활용 등을 통해 대중 견제 노선을 재정비했지만, 근본적으로 미중 전략 경쟁이 완화된다는 추이를 구체화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전면적인 미중 전략 경쟁의 추이는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미국과 중국 간 대면 정상회의에서 변화의 조짐을 나타냈다. 양국은 전략 경쟁의 대립과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위기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2023년에 들어 중국의 정찰 풍선 사태가 벌어졌지만, 미중 양국 관계는 조정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고 판단된다. 미중 협력 관계가 명확한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다면, 비록 경쟁이 심화된다 해도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조정은 변화된 형태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일 수 있다.

2) 미중 간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둘러싼 경쟁과 협력

미중 양국 모두 자유주의 경제 질서의 회복 혹은 복원을 통해 관계 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인식을 점차 공유하고 있다. 양국이 경쟁적인 보호주의 무역이나 배타적인 경제 진영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작을뿐더러, 이러한 대립 구도가 군사 안보 쪽으로 확대될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인식을 같이하는 것이다.

군사 안보 영역은 미중 양국이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영역임에 틀림없다. 향후 미중 간의 군사력 균형이 어떻게 변화될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점은 미중 양국이 파괴적인 군사력의 증강 속에서 군비 통제와 군축, 그리고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규범을 만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중국은 근대 국가 이행 과정에서 불완전 주권 국가로 남아 있다. 대만 문제가 대표적이다. 하나의 중국 정책은 향후 분쟁의 소지가 남아 있고 해당 문제를 과연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틀 속에서 해결할 수 있는지는 근대 국제 질서 형성 과정 자체에 관한 매우 근본적인 문제이다.

 

4.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미래를 보는 제3세력의 시선들

1) 유럽

현재의 국면을 맞이하여 유럽 국가들은 현재 미국의 국력이 쇠퇴하고,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며, 러시아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높이고 있다. 

냉전기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안보 질서와 경제 질서가 동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의 현시점에서, 안보 질서와 경제 질서가 계속 동조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유럽 국가들은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유지하면서, 군사적 현상 유지를 추구할 수 있는 대서양 협력의 길을 찾고자 할 것이다.

2) 중동과 인도

인권 문제로 바이든 정부와 충돌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해왔으며,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원유 증산 노력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지 않았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2023년 3월, 중국의 중재로 숙적이던 이란과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것이다. 

튀르키예 역시 미국에는 껄끄러운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립적 입장 및 러시아 군사 무기의 구입 등, 미국으로서는 난처한 외교 정책의 행보를 보인 바도 있다. 

인도,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국제연합의 총회 투표에서 기권표를 던져 중립적 태도를 보였다. 인도는 쿼드에 참여하는 동시에, 미국 주도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대해서도 동조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전략 경쟁에서 균형 정책을 유지하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3) 남반구의 중요성 증가와 향후 자유주의 국제 질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미 등 남반구 국가들의 경제력이 지속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이들 국가들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국제 질서 제안은 서방 국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들 국가들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고, 서방 중심의 국제 질서를 추구하는 노력에 대해 반대하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국제기구나 지구 거버넌스에서 남반구 국가들이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향후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남반구 국가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국제 질서 자체의 향방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 내에서도 비단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강대국에 대한 관여 고민뿐 아니라, 남반구 국가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경청하고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5. 민주화가 필요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반드시 민주주의 국제 질서인 것은 아니다. 국제 질서에서 국력의 불평등성은 엄연히 존재하고, 강대국들은 약소국들을 최대한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가면서, 강대국 중심의 질서를 강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미국 주도의 탈냉전기가 종식되고, 전반적으로 강대국은 물론 남반국 국가들의 입장과 자원이 중요해지는 현재,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미국과 서방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아니라, 더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 규칙 기반 질서 간의 관계에서, 모든 규칙이 자유주의적일 필요는 없다. 자유의 가치보다 공동체의 단합성을 유지하는 다양한 문화와 정치 체제가 가능하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 역시 자유주의 국가들과 공유하는 가치들이 있으며, 이러한 가치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역시 바람직한 국제 질서를 논할 때 국제법의 준수, 내정 불간섭, 주권 존중, 인권의 강조, 민주주의 등을 항상 이야기한다. 이러한 가치만을 놓고 볼 때, 권위주의 국가들 역시 자유주의와 조응하는 가치를 국제 질서에서 실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규범과 규칙들이 기반이 되는 국제 질서를 만들 수 있다면, 국제 질서가 반드시 자유주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6. 한국 외교의 과제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외교 전략에도 커다란 과제를 던져준다. 우선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본질과 변화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변화가 불가피하며, 새로운 형태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만들어가는 데 한국이 얼마나 높은 식견을 가지고 참가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미국이라는 패권 국가가 과거와 같은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도 존재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모든 이익과 시각이 일치할 수는 없다. 또한 다양한 강대국들 및 선진국들과의 의견 조율도 필요하다. 보다 효과적이고 응집력 있는 지도국 연대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한국의 역할을 적절히 찾아야 한다.

셋째, 미중 전략 경쟁의 변화 양상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특히 한미 정상 회담 이후 미중이 협력과 경쟁의 복합 게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선제적으로 미중 관계의 변화를 예측해야 한다. 

넷째, 한국이 신흥 선진국으로 발돋움할수록 향후 남반구 국가들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서방 국가들의 국력이 약화되는 과정에 있고, 글로벌 공급망과 세계 경제 질서에서 남반구 국가들의 비중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또한 근대 국제 체제 성립 과정에서 제국주의의 폐해를 몸소 겪은 한국으로서는 미래 세계 질서의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위해 선진국과 약소국을 매개할 수 있는 조정자의 역할을 찾아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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