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 대입시 소수인종 우대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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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법원, 대입시 소수인종 우대 ‘어퍼머티브 액션’ 위헌 판결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6.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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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 우위 대법원 "인종이 아니라 경험에 따라 대우해야"…기존 판결 뒤집어
- "특권층에 문 열어줄 뿐…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사진: CBS News 캡처

미국 대학 입학에서 교육의 다양성을 위해 흑인ㆍ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을 우대해온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대해 미국 연방 대법원이 29일(현지시간)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1960년대 민권운동의 성과 가운데 하나로 꼽힌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정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대입에 더해 인종적 다양성을 고려하는 다른 정책도 이번 판결로 도전을 받게 되면서 미국 경제ㆍ사회 전반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29일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Fair Admissions·이하 SFA)이 소수인종 우대 입학 제도로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며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각각 제기한 헌법소원을 각각 6대3 및 6대2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노스캐롤라이나대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대학이며, 하버드대는 가장 오래된 사립대학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결문에서 “학생은 인종이 아닌 개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대학들이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불굴의 도전, 축적된 기술, 학습 등이 아니라 피부색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 왔다”며 “우리 헌정사는 그런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소수 의견을 낸 진보적 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평등한 교육 기회는 미국에서 인종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며 “이번 판결은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선례와 중대한 진전을 후퇴시킨 것”이라고 했다.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과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도 반대 의견에 동참했다. 

다만 하버드 출신인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하버드 대학 이사 근무 경력으로 인한 이해충돌 우려를 이유로 하버드대를 상대로 한 헌법소원 사건은 판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사실상 6대 3의 동일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번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명의 대법관을 연달아 임명한 이후 ‘보수 쏠림’ 구도가 된 연방대법원의 이념 구도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전체 대법관 9명 가운데 존 로버츠 대법원장을 포함해 6명이 보수 성향, 나머지 3명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번 판결은 대법이 1978년 이후 40여년간 유지한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앞서 SFA는 대학 신입생을 뽑을 때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을 적용해 백인과 아시아계 지원자를 차별했다면서 노스캐롤라이나대와 하버드대를 상대로 2014년 각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1ㆍ2심에서는 SFA 패소 판결이 나왔다. 1ㆍ2심은 대학이 인종별로 정원을 할당하거나 수학 공식에 따라 인종 분포를 결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인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기존 대법 판례를 들어 두 대학의 손을 들어줬다.

대입 소수인종 배려 정책은 흑인 인권운동이 활발해진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도입됐다. ‘정부 기관들은 지원자의 인종, 신념, 피부색, 출신 국가와 무관하게 고용되도록 적극적(affirmative)인 조처를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어 후임 린든 존슨 대통령이 1965년 ‘연방정부가 직원 고용 시 인종과 피부색, 종교, 성별, 출신국에 차별받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는 강화된 내용을 담아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행정명령으로 고용 부문에서의 차별금지 조치가 실시된 데 이어 각 대학도 소수인종 우대 입학정책이 도입됐다.

이같은 행정명령 조치로 주요 대학에서 흑인 입학 비율이 올라가는 등 미국 사회 내 다양성 고양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백인과 아시아계를 중심으로 인종에 따른 가산점 제도가 오히려 역차별적이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인구 비율 대비 입학생이 적은 소수 인종에게 ‘플러스’를 주는 제도가 다른 학생에게는 불이익을 준다는 이유로 미국 50개 주 가운데 캘리포니아, 미시간, 플로리다, 워싱턴,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오클라호마, 뉴햄프셔, 아이다호 등 9개 주는 공립대에서 인종에 따른 입학 우대 정책을 금지한 상태다.

이번 판결로 학교가 다양한 학생 인구를 확보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흑인 인권 단체인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CCP)의 위즈덤 콜 청소년 및 대학부 국장은 성명을 통해 "이 판결은 미국의 암흑기"라며 차별 철폐 조치는 여러 세대 동안 흑인 학생들에게 희망의 등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경쟁의 장을 공평하게 하고,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인종차별이라는 교활한 독에 대항하는 강력한 힘이었다"고 덧붙였다.

조지타운 대학교의 교육 및 인력 센터 연구원 잭 마벨은 우대 정책 없이는 각 대학의 흑인과 유색인종 수가 현재 20%에서 약 16%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CNN에 전했다.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는 '컬러오브체인지'의 회장 라샤드 로빈슨도 "이번 결정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이들에게 문을 열어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연방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주요 수혜자로 꼽힌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캘리포니아주가 이 정책을 금지한 뒤 일부 학교의 경우 흑인과 히스패닉계 학생의 입학 50% 가량 줄었다고 ABC방송은 보도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대 정책을 도입했을 당시 UCLA 내 흑인 학생은 전체의 7%를 차지했지만, 우대 정책 폐지 이후에는 그 비율이 3.93%로 떨어졌다.

미시간 대학교에서도 우대 정책 전후로 흑인 학생이 전체 7%에서 4.4% 수준으로 급감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흑인 학생도 1995년 5.9%에서 지난해 3.8%까지 줄어들었다.

미시간 대학의 산타 오노 총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차별 철폐 조치가 다양한 학생을 모집하는 데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평등한 기회는 교육에 대한 동등한 접근을 기반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UCLA의 법학 교수 제리 강은 악시오스에 "다음 입학전형에서는 인종적으로 소수자들이 상당히 감소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종과 교육 문제에 정통한 메릴랜드 대학의 줄리 박 부교수도 "흑인과 라틴계 학생의 입학이 감소함에 따라 인종 구성에서 훨씬 더 뚜렷한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소수자의 대표성이 줄어드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소수인종 우대 정책과 관련한 책을 저술한 터프츠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 나타샤 쿠마르 와리쿠는 "특정 그룹의 대표가 보이지 않으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처럼 느껴진다"고 악시오스에 전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외국인 유학생이 가장 많은 나라인 만큼 이날 연방 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국제적 파장도 예상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의 영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다소 엇갈린다.

실제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아시아계 미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8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계의 경우 응답자의 50%가 ‘어퍼머티브 액션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했지만, 대입 시 인종을 고려하는 것에 대해서는 72%가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 아시아계는 전체적으로 비슷한 답변 양상을 보였는데, 이는 학업성적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아시아계 학생들이 소수인종 우대 정책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연방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미국 대학들의 입시 방식 변경도 불가피해졌다. 대학들이 대법 판결에 따르면서도 교육 다양성 확보를 위해 시험 성적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거나 다른 유형의 입시 제도를 도입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한 미국 내에선 이날 연방 대법원 판결이 인종 간 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해 6월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판결 이후 미국 내 진보-보수 진영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처럼 2024년 대선의 주요 변수로 떠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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