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 한국의 불평등, 무엇을 할 것인가?
상태바
세계 최고 수준 한국의 불평등, 무엇을 할 것인가?
  • 김윤태 고려대·사회학
  • 승인 2023.06.25 1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에게 듣는다_ 『어쩌다 대한민국은 불평등 공화국이 되었나?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설계도』 (김윤태 지음, 간디서원, 376쪽, 2023.05)

 

이 책은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인 ‘불평등’을 다룬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한국의 심각한 불평등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다. 195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사회에 속했다. 1949년 농지개혁으로 농촌의 지주가 사라지면서 공산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개발도상국 가운데 가장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1962년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이래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점차 빈부 격차가 커졌지만 아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거대한 분열의 시대

1990년대 초반 이후 악화된 한국의 불평등은 다양한 소득분배 지표에서 나타난다. 1992년부터 2022년까지 30년 동안 한국의 불평등이 역사상 유례없이 증가하면서 사회의 ‘거대한 분열’(Great Divide)이 발생했다. 2022년 현재 한국의 상위 1%는 소득의 14.7%를 차지하며, 상위 10%는 46.5%를 차지한다.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50% 소득의 14배에 달한다. 소득 집중 수준이 미국 다음으로 높은 편이다. 

지난 30년 동안 심화된 불평등은 1962년부터 1992년까지 고도성장의 기록과 매우 대조적이다. 1960년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 속했던 오늘날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 사실은 전 세계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놀라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덕분으로 세계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이용하는 나라 중에 속한다. 1980년대 군사정부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의 성공으로 자유선거와 정권 교체가 가능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들은 민주주의의 원조라고 불리는 영국과 미국에 못지않은 민주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놀라운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삶의 만족, 행복감, 사회적 신뢰, 사회적 결속감은 매우 낮다. 

한 사회를 자세히 살펴볼 때 출산율과 사망률은 가장 중요한 통계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길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과 자신이 어려움을 직면할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도 선진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자살, 저출산, 사회적 고립, 불안을 보여주는 사회 지표는 한국 사회의 지나친 불평등과 관련이 크다. 


부유한 한국, 불행한 한국인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국토는 작지만 전 세계적으로 부유한 국가에 속한다. G20 정상회담에 참여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한국인의 행복 수준은 선진국 가운데 낮은 편이다. 2022년 한국의 행복지수가 전 세계 146개국 중 59위에 해당한다고 분석한 유엔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연례 보고서가 발표됐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는 자화자찬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는 것일까? 놀라운 사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속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지난 2012년부터 세계 각국 사람들의 행복을 정량화해 행복지수로 표현한 ‘세계 행복 보고서’를 출간한다. 행복 지수는 갤럽의 월드폴(World Poll)이 나라별로 1000명의 시민의 삶의 만족도를 측정하고,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지 등 6가지 항목의 3년간 자료를 분석한다. 2019∼2021년의 한국의 행복지수는 5.935점으로 일본(54위, 6.039점)·그리스(58위, 5.948점)보다는 낮은 59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행복지수 1위는 7.821점을 받은 핀란드였다. 이외에도 덴마크(2위, 7.636점)·스웨덴(7위, 7.384점)·노르웨이(8위, 7.365점)가 10위 안에 드는 등 북유럽 국가들이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서유럽에서는 스위스(4위, 7.512점), 네덜란드(5위, 7.415점) 등이 10위 안에 들었다. 

왜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 수준이 높은 걸까? 많은 학자들은 북유럽 국가에서 행복과 삶의 만족 등 다양한 측정에서 오랫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로 신뢰를 꼽는다. 신뢰의 근간은 관대한 실업 부조를 비롯해 무료 의료 및 교육, 충분한 보육 지원 등 튼튼한 사회복지 제도다. 포용적 사회제도를 통해 사회의 불평등을 줄이고, 약자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고,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고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이 가장 높은 나라들이 반드시 최고의 행복 수준을 가진 것은 아니다. 행복은 단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불편한 진실

이 책은 봉준호의 <기생충>에 이어 황동혁의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관심을 끌게 된 것은 한류의 우월성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이라는 점을 성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성취된 직후인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커졌다는 사실은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준다. 

1987년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선거에서 지역감정이 동원되고 지역주의 정치 구조가 득세하면서 조세 정의와 복지국가 대신 부자 감세와 지역 개발이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커졌다. 재벌 자본주의에서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상승했지만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재벌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커졌다. 건강보험과 노령연금이 불완전하고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사각지대가 너무 컸다. 민주화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와 수입 개방으로 과소비가 유행이 되었지만, 한국인의 삶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의 사회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켰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한국의 경제 관료들은 급진적인 시장 주도 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을 추구했다. 경제 자유화와 함께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커졌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 불평등이 지나치게 커졌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에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제도가 도입되면서 복지국가가 급속하게 발전했지만,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인구 비율은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출생율은 급격하게 낮아졌다. 여성의 경력 단절이 너무 많고 남녀의 임금 격차도 매우 높다. 외환위기 20년 후 한국 사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로 변화했다.

지난 30년 동안 불평등의 심화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공기업 사유화, 규제 완화, 조세 감면, 노동 유연화, 무역 자유화를 추진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워싱턴 합의’가 각국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치면서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었다. 현재의 극심한 불평등은 1929년 대공황 직전에 비견할 만하다. 

2007년 세계금융위기 직후 불평등에 맞서는 다양한 사회운동과 정치적 저항이 폭발했다. 2011년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 유럽의 ‘분노하는 사람들’ 시위와 중동의 ‘아랍의 봄’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과 복지국가 논쟁이 촉발하고 2012년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가 최대의 선거 쟁점으로 부상했다. 2016년 ‘촛불 시위’도 국정 농단과 정경 유착에 대한 거센 반감과 함께 지나친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이후 세계 최고의 부자들과 정치인들의 모인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불평등을 가장 심각한 위기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도 불평등에 맞서는 정부의 정책을 촉구하며 ‘포용적 성장’을 권고했다. 30년 전 부자들과 국제기구가 앞장서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을 외치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불평등이 중요한 국가 의제로 부각되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경제 성장과 기술 개발의 이데올로기가 강하기도 하지만, 개인주의적 능력주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지나치게 높다. 공정한 경쟁의 성과를 맹신하며 ‘불공정은 못 참지만 불평등은 괜찮다’는 생각도 상당히 퍼져있다.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대학 입시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의 군대 휴가가 ‘불공정’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아직도 불평등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떠오르지 않았다.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부동산, 젠더 갈등, 여성가족부 폐지가 뜨거운 이슈가 되었지만, 불평등은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이 만든 사회문제와 악영향을 이해하고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를 위해 불평등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과 지식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한다. 나아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철학적, 정치적 방향에 관한 논의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의 질과 사회 정의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많은 전문적 학술 연구의 결과를 보면, 세계 각국에서 불평등은 개인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높이고, 행복감을 낮추고, 사회갈등을 악화시키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불평등 수준이 높은 국가에서 정신질환과 우울증이 만연하고 정치 양극화와 사회갈등이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대안을 찾아서

이 책은 많은 사람의 선입견과 달리 불평등의 원인을 개인적 차원에서 보는 대신 사회적 차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평등은 단지 개인의 학벌, 학점, 능력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부모의 배경, 사회제도, 정부의 정책에 따른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경제 지구화, 기술의 변화, 교육 불평등, 소극적인 조세와 재정 정책에 의해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었다. 이 책은 국제 비교를 통해 각국 정부의 역할에 따라 불평등 수준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도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매우 중요하며, 조세 정책과 사회정책의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제도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정당과 사회 집단의 불균형한 권력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본다. 이런 점에서 불평등은 정치적 문제이다.

불평등이 정치적 결과인 것처럼 불평등의 해법과 정치적 노력과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책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소련식의 기계적 평등주의를 강조하거나 베네수엘라처럼 조세를 통한 재분배만 강조하는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지나친 불평등을 완화하는 과제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사회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개인의 역량을 개발하고, 공교육과 직업 훈련을 강조하고, 보편적 사회보험을 강화하는 포용적 제도가 필요하다. 특히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제도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사회 보호 장치를 제공하는 동시에 재기할 역량을 키워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사회보장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윌리엄 베버리지, 토마스 험프리 마셜, 리처드 티트머스, 마이클 영, 존 롤스, 아르마티아 센 등 중요한 사상가들의 주장을 주목해야 한다. 21세기의 사회 정의를 추구하는 새로운 방향은 존 롤스가 역설한 ‘공정’의 철학, 아르마티아 센이 강조한 ‘역량’의 강화, 악셀 호네트가 제안한 ‘사회적 자유’를 확대하는 사회제도의 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아가 21세기 디지털 경제에 적합한 새로운 균등한 기회와 긍정적 우대 조치를 모색하고 ‘21세기 판 공정 프로젝트’를 추구해야 한다. 

이 책은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 뿐 아니라 사회학과 정치학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불평등은 소득과 자산 뿐 아니라 사회 제도와 정치 제도의 불평등과도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불평등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득과 자산뿐 아니라 조세와 복지 제도, 국회의 정부의 한계를 분석해야 한다. 

이 책은 전문적 학술 연구의 성과를 활용하여 작성되었지만, 학계의 전문가 뿐 아니라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쓴 책이다. 부디 이 책이 많은 시민들과 일반 독자들에게도 쉽게 읽을 수 있기 바란다. 사회과학은 단지 현상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책을 읽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개선을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유용한 방법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책이 한국의 지나친 불평등에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과 활동가들에게도 도움이 되기 바란다. 


김윤태 고려대·사회학

고려대학교 공공정책대학 사회학 교수. 고려대학교와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회정책연구위원, 국회도서관장,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 중국 홍콩중문대학, 캘리포니아대학 로스앤젤스(UCLA) 캠퍼스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발전국가와 재벌>, <복지국가의 변화와 빈곤정책>(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불평등이 문제다>(문화부 세종도서), <정치사회학> 등이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정치사회학, 복지국가, 사회학 이론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