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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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의 절정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6.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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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일생의 절정은 언제인가? 이 물음에 대해 여러 대답을 할 수 있다. (가) 절정은 가장 원기가 왕성한 시기이다. (나) 절정은 가장 행복한 시기이다. (다) 절정은 가장 큰 일을 하는 시기이다. (라) 절정은 가장 슬기로운 시기이다. 

(가)는 20세 무렵이다. 원기가 가장 왕성해, 남자는 그 나이에 군인이 된다. (나)는 30대이다. 공부를 마치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결혼하고, 직장을 가지고 일하면서 스스로 창조하는 행복을 누린다. (다)는 50대이다. 책임이 무거운 자리에서 크나큰 과업을 수행해, 높이 평가될 수 있다. (라)는 65세 이후이다. 해야 하는 일은 다하고 자유롭게 되어, 하고 싶은 일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즐기면서 할 수 있다.

이런 시기가 모두 일생의 절정이다. 인생은 절정이 여럿이다. 누구에게나 공통된 인생론을 전개하려고 하면 이 이상 할 말이 없다. 이 말을 부연해 길게 늘이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문제를 좁혀서 다시 제기해, 학자 일생의 절정은 언제인지 알고 싶다고 하면, 생각을 새로 하고 말이 달라져야 한다. 현상 기술을 넘어서서 숨은 비밀을 찾아내야 한다.

(가)의 학생 시절에는 갖가지 공부를 닥치는 대로 하고, 번민이나 모색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위험하다고 할 지경에 이르러야, (나)에서 학자가 되어 우뚝하게 일어설 수 있다. 그래도 의욕에 들떠 무엇이든지 하려고 하지 말고, 깊이 생각해 근본이 되는 이치를 돈오(頓悟)해야 천리 길이 열린다.

(가)에서 절정을 보인 체력은 차츰 줄어들고, (나)에서 돈오해 얻은 식견은 점수(漸修)하면서 더욱 늘어난다. 하강하고 상승하는 이 두 선이 만나는 (다)의 중심점이 55세 전후이다. 대통령을 하려면 이 나이에 해야 하듯이, 학자는 노력과 통찰을 거대하게 결합한 업적을 때맞추어 이룩해야 한다. 학자의 생애에서도 (다)가 절정 중의 절정인 최고봉이라는 것이 공식적인 평가이다. 

(다)에서 할 일을 (라)로 미루는 것은 어리석다. (라)는 부록이고 여백이다. 본문을 쓰고 싶은 대로 다 써야, 부록에서 아무 부담 없이 다른 말을 할 수 있다. 있어야 하는 형체를 모두 그려야,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여백에서 알려줄 수 있다. 

경쟁을 의식하고 대단한 업적을 이룩하려고 하는 불운에서 벗어나, (라)에 이르면 행복하게 된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가함을 즐기면서 할 수 있으니, 기대 이상 잘 된다.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므로, 부당하다고 여긴 규범을 마음대로 어길 수 있다. 말썽 많은 속세를 떠나,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 같다.

사람이 정한 정년은 없어 (라)는 80대까지, 더러는 90대까지 길게 이어진다. (다)가 일생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80대가 되니 지금 가장 높이 오른 것 같다. 그러나 남은 날이 있어, 이것을 결론으로 삼을 수는 없다. 

각 시기마다 나는 무엇을 했는지 되돌아본다. (가)는 모색만이어서 무어라고 잡아내 말할 것이 없다. (나)에서 한 고행(苦行)은 <<한국소설의 이론>>이고, 돈오는 <<문학연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의 작업은 <<한국문학통사>> 전6권을 쓰고 고치고 다듬은 것이다. 

(라)에서는 무엇을 하는지 말하기 어렵다. 대표작을 고를 수 없고, 작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말해야 한다면, 둘을 든다. <<문학사는 어디로>>에서 기존의 연구를 결산했다. 새로운 모색의 본보기로 <<대등의 길>>을 내놓을 수 있다.

이 정도로 말을 마칠 수는 없다. 앞 시대와는 아주 다른 길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학문과 미술을 동시에, 연구를 창작과 함께 하는 것을 즐겁고 보람 있는 일로 삼고 있다. 천년의 시공을 생각하고 날아오르고자 한다. 

일생의 절정은 언제인가? 이 물음을 젊은이는 제기할 수 없고, 응답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라)의 단계에 들어선 지 한참 되어야 이 물음을 제기하고 응답하는 자격을 가질 수 있다.

나는 자격이 있다고 여기고 글을 쓰다가, 아직 모자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글을 미완으로 두고, 보완을 기약한다. 보완이 언제 가능할지 예상하지 못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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