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의 시대, 역사 연구자들이 직면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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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실”의 시대, 역사 연구자들이 직면한 도전
  • 구자정 대전대·역사학
  • 승인 2023.06.2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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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현재 대한민국의 역사연구자들에게 있어 자유로운 연구 수행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지난 세대의 선학 제현에게 이 물음을 던진다면 그분들께서는 아마도 국가권력이라고 답하셨을 것 같다. 주지하듯 1987년 민주화 이전까지 오랜 권위주의적 통치를 겪었던 우리나라에서 역사 연구는 군사독재 권력자들에게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비록 미시적인 연구 수행까지 국가권력이 세세하게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거시적인 연구 어젠다 및 방향성 설정에 있어 역사 연구는 항상 권위주의 정권이 추구하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통제 아래 있었고 역사가들은 연구 수행에서 보이지 않는 큰 제약을 받았다. 역사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어떻게 배울지를 국가가 정하던 “국정 교과서”의 프레임은 연구의 영역에서도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은 1987년 민주항쟁으로 붕괴하였다. 이제 한국의 역사가들은 과거 선학들처럼 무엇을 연구하고 무엇을 가르친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권력에게 수난을 당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아직 안심은 일러 보인다. 역사 연구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수난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는 한국 사회의 민주화 이후 새로운 종류의 도전이 등장하여 역사 탐구에 거대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장애물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 또는 사실 여부를 여론에 기반한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을 기준으로 재단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이 움직임과 이로 인한 폐해를 처음으로 인지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200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박사과정을 위해 해외로 떠난 30대 초반의 유학생이었던 필자는 코스웍 중 같이 수업을 들으며 친해진 한 일본인 동료 대학원생으로부터 한 가지 사소한 부탁을 받았다. 그 부탁은 별것이 아니었다. 동경 전범재판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계획하며 중일전쟁과 이차 세계대전 당시 군국주의 일본이 아시아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한 전쟁범죄에 관심이 많았던 이 동료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한국의 연구성과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해 했고, 한국어를 몰랐던 그녀는 한국인인 필자에게 이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비록 필자는 관련 주제를 공부하는 전공자도 아니었지만, 단순히 한국어로 된 연구성과를 찾아달라는 부탁은 어렵지 않게 들렸고, 단순히 검색 몇 번으로 끝날 일이라 생각했던 필자는 이 부탁을 쉽게 승낙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연구사 검색 결과는 그 무렵의 필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위안부 문제는 20여 년 전에도 지금 못지않게 큰 사회적 이슈였기에 이 문제를 쟁점화하는 활동에 대한 정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러나 무엇이 역사적 사실이고 무엇이 허위인지를 분별하는 본격적인 학문의 영역으로 가게 되면 상황은 매우 달라졌는데, 이 사안이 뜨거운 화두였던 만큼 풍부한 연구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필자의 애초 기대와는 달리 해당 주제에 대해 어떤 모종의 발견적(Heuristic) 결과물을 담은 의미 있는 연구성과는 뜻밖에도 매우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필자는 동료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해당 분야 전공자가 아닌 다른 전공 역사 연구자로서 말하기 매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 지금에 와서도 이러한 상황에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면 이는 과장일까? 위안부 문제는 현재도 한국 사회에서 언제나 뜨거운 사회적 반향을 불러오는 주요 화두 중 하나로 남아 있지만, 역사 연구의 본령에 다름 아닌 “실제 사실이 어떠하였는가?”에 대해 탐색하는 해당 사안에 대한 “발견적 연구성과”로 가게 되면, 필자의 졸견으로 우리의 상황은 이웃 일본에 비해 여전히 빈곤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해당 사안에 대해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실증적으로 파헤친 주요 연구자들 대다수가 여전히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를 필두로 하는 양심적인 일본인 역사 연구자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필자는 지금도 궁금하다. 당대 일본이 자행한 범죄를 입증한 주요 연구성과는 왜 피해 당사국인 우리가 아니라 가해 당사국인 일본학계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는 왜 요시미 요시아키와 같은 연구자가 없는 것인가? 그나마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몇몇 한국인 연구자들은 왜 이 사안을 해외에서 탐구해야 했으며 그들의 저서는 왜 일본어와 영어로 먼저 나와야 했을까? 우리는 연구를 “안”하는 것인가 아니면 “못”하는 것인가? 이 또한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를 “정치적 올바름”을 기준으로 “운동”을 통해 재단하려는 사회적 정치적 압력이 빚어낸 결과가 아니었을까?

역사적 사실의 진위 여부를 “정치적 올바름”에 기반한 운동을 통해 재단하는 문제는 안타깝게도 근현대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비록 필자의 전공과는 거리가 매우 먼 분야지만 상기한 상황과 관련하여 필자 역시 한 명의 역사 연구자로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안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최근 『전라도 천년사』 발간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회적 논란들이다. 이 책은 자타가 공인하는 해당 분야의 내로라할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이뤄낸 주목할 만한 기념비적 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상당한 사회적 정치적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데, 이 사태가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는 거대한 반지성주의의 물결은 필자에게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필자 역시 작게나마 유사하다면 유사한 상황을 겪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국사가 아닌 타국사를 당사국 역사가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서양사 연구자로서,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압력으로부터 그동안 비교적 자유로웠던 필자가 이러한 압박을 느낀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바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그 원인이었다.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가치 판단은 분명 옳고 그름의 문제겠지만 그 침공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은 찬반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사실 또한 “찬반”으로 바라보는 일부 시민들에게, 역사 연구를 선과 악 간의 목적론적 진영논리로 접근하는 일부 대중에게, 소위 “올바른 역사관과 역사의식”을 주장하는 일부 지식인들에게 현재 진행 중인 전쟁과 밀접히 관련된 우크라이나 역사와 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사의 몇 가지 역사적 “팩트”들은 매우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러한 반지성주의가 역사 연구 수행에 끼치는 폐해는 한국사이든 동양사나 서양사이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명백하다. 사유와 연구의 자유를 정치적 올바름의 이름으로 제약하며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연구가 아니라 “운동”으로 결정하려는 사회 일각의 움직임은 역사가들에게 상당한 사회적·정치적 압력으로 작용하며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손이 있어도 쓸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동의하지 않는 연구에 대해, 실증적 논증을 통한 반론이 아니라 시위나 소송, 또는 소위 “역사 바로잡기 운동”을 통해 폭력적으로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학문적 공론장의 성립 자체를 방해하며 과거 군사독재 시절만큼이나 역사 연구자들에게 큰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학문의 세계에 “운동”이 침투하여 사실 관계의 정확한 인식, 나아가 인식의 시도 자체를 저해하는 것은 역사학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며, 사회 일각의 이러한 행태는 1+1=2라는 자명한 명제에 대해 1+1은 3일 수도 있다는 대안적 진리를 주장하며 대안적 진실의 재구성을 위해 이를 “운동”으로 실천에 옮기는 소위 “탈진실”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학문의 세계는 광장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며 그리되어서도 아니 된다고 믿는다. 이 세계에서 옳고 그름과 진위 여부는 결코 여론과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양이 지구를 돌아야 한다”고 믿는 탈진실론자들에게 “지구가 태양을 돈다”라는 지동설은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그 불편함이 “천체 운동에 대한 탐구” 자체를 결코 방해해서는 아니 되며, 그 방해는 어떤 식으로도 결코 용인되어서도 아니 된다고 여전히 믿는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역사가들의 것은 역사가들에게 맡기는 상식”이 점점 무너져 가는 이 시대,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볼 때가 드디어 도래한 것은 아닐까?


구자정 대전대·역사학

대전대학교 혜화리버럴아츠 칼리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미국 버클리 대학(UC Berkeley)에서 근현대 유럽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 연구 관심 분야는 러시아/우크라이나/동유럽의 민족문제, 러시아 혁명, 식민지 근대성, 역사 이론, 포스트 맑시즘, 유럽 정치사상사 등이다. 저서로 『우크라이나 문제의 기원을 찾아서』, 『혼돈의 시대, 명쾌한 이코노믹스』(공저), 『대륙의 미학 역설의 시학』(공저), 『러시아 근대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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