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질서와 지역 기반 국제정치: 세력 전이와 아태 지역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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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질서와 지역 기반 국제정치: 세력 전이와 아태 지역 질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6.24 2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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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3강_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의 「지역 질서와 지역 기반 국제정치: 세력 전이와 아태 지역 질서」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국제 질서의 변화 및 전개 양상을 다루는 첫 번째 섹션 ‘오늘의 국제질서’ 제3강 김재철 교수(가톨릭대 국제학부)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지역 질서와 지역 기반 국제정치: 세력 전이와 아태 지역 질서


김재철 교수는 “신흥 강대국의 부상이 지역 질서에 끼치는 영향과 관련한 이론적 논의”를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그동안 제기된 다양한 시각들”을 돌아보고 이어서 미국과 중국 간 “국력 대비에 관한 검토를 통해 지역에서의 세력 전이의 양상과 가능성”을 살펴본다. 그다음으로는 “지역과 지역 질서 형성을 둘러싸고 그동안 전개된 변화”를 제시하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망”을 짧게 논의한다. 보다 상세하게는 “중국의 부상으로 세력 전이의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지역 질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강대국 미국과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신흥 강대국 중국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인도태평양이라는 거대 지역에 의해 대체되고 분리의 추세가 강화”되고 있기는 하나, 세력 전이라고 할 만한 상황은 “여전히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뿐 기정사실이 된 것”은 아니라고 진단한다. 그 이유로는 “세력 전이의 가능성이 해당 국가의 국내 정치적 요인들에 의해 과도하게 인식”되었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지난 6월 3일, 김재철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3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중국의 부상으로 세력 전이의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지역 질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강대국 미국과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신흥 강대국 중국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태 지역은 인도태평양이라는 거대 지역에 의해 대체되고 분리의 추세가 강화되었다. 

그러나 세력 전이를 둘러싼 활발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부상과 이로 인한 세력 전이는 여전히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뿐 기정사실이 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화가 이미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세력 전이의 가능성이 해당 국가의 국내 정치적 요인들에 의해 과도하게 인식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론적 논의

아태 지역에서 세력 전이를 촉발한 중요한 요인인 중국의 부상이 지역의 국제 질서에 끼칠 영향에 관한 이론적 연구들은 다양한 시각을 드러낸다. 구체적으로 현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구성주의 등 주요 이론적 시각들은 지역의 질서와 관련하여 서로 다른 주장을 제기한다. 

우선, ‘중화 질서론’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론적 시각에서 제기된다. 그 하나는 구성주의적 시각으로, 이 지역이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간주되던 2000년대 초반에 힘을 얻었다. 가령, 이 시기 한 전문가는 중국을 패권국으로 인정했던 역사적 기억과 정체성을 거론하며 지역 국가들이 중국의 부상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다른 하나의 부류는 일부 현실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한 일종의 현실론이다. 즉, 중국의 부상에 따라 지역이 강대국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자유주의자들은 국제 질서가 국제정치를 조직하는 규칙과 제도를 포함하며, 이러한 규칙과 제도가 국가 관계를 규정하고 지도하는 기능적 작용을 한다고 본다. 따라서 부상하는 중국이 기존 질서에 참여하고 또 수용할 것이며 미국도 중국을 수용하기 위해 기존 질서를 유연하게 조정할 것이기에 협력이 가능하며 기존 질서는 계속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현실주의, 특히 패권 안정론과 세력 전이론 등 구조적 현실주의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과 충돌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구조적 현실주의는 힘의 대비와 그에 발생한 변화가 불안정, 위기, 충돌 가능성을 제고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부상과 아태 지역 세력 전이

탈냉전과 함께 미국은 “단극의 순간(unipolar moment)”을 맞게 되었고, 이러한 절대적 우위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값비싼 전쟁을 치른 반면에 중국이 고도성장을 기록하면서 지역에서의 세력 대비에 변화가 발생했다. 

양국 간 국력 대비의 변화 추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상반된 주장이 제기된다. 한편에서는 미국의 국력이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는 반면에 중국의 국력은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이라는 비교적 제한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각함으로써 양국 간 국력 격차의 축소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더 실질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양국 간 국력 격차가 여전히 현저하다는 반론도 강력하다. 비록 많은 평가들이 2030년대에 들어 중국이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추정하지만, 미국과의 갈등으로 경제 성장률이 감소함에 따라 그 시기가 계속해서 늦춰지고 있고 심지어 일부에서는 경제 규모에서조차도 역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이러한 논쟁은 중국의 부상과 이에 따른 세력 전이 가능성에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중국의 부상과 이로 인한 세력 전이가 기정사실이기보다 여전히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국내 정치적 요인이 세력 전이의 가능성을 과도하게 인식하도록 작용한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인들이 권력 강화를 위해 중국의 위협을 극단적으로 부각했고, 중국에서도 시진핑 주석이 권력을 공고화하기 위해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東乘西降]’ 가능성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세력 전이의 가능성이 조기에 지역 질서에 대한 양국의 정책에 영향을 끼쳤다.

 

협력과 통합에서 경쟁과 분리로

탈냉전기 아태 지역 국제 질서는 초기 협력과 통합을 강조하던 데서 경쟁과 분리의 흐름을 강화했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지역의 정체성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초창기 아태 지역의 정체성이 강조되던 데서 이제 인도태평양이라는 거대 지역이 부상했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의 정체성이 지리적 요인을 넘어 지정학적 고려에 의해 영향을 받음을 의미한다. 또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부상은 지역 국제 질서에서 경제적 고려의 비중이 약화하고 안보ㆍ전략적 이익의 비중이 증대됨을 상징한다.

탈냉전과 협력

아태 지역은 1989년 아태경제협력체(The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의 출범을 계기로 가시화되었다. 당시로서는 아시아태평양의 등장은 패권국 미국의 구상과 선호를 반영했다. 미국은 APEC을 통해 향후 번영의 중심지로 등장할 것으로 기대되던 아시아와의 연계를 강화함으로써 지역과 세계의 주도권을 유지·강화하려 들었다. 한편 아시아 국가들은 APEC이 미국 시장과의 연계를 강화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APEC은 지역에서 발생한 위기에 대응하는 데 무능함을 드러냈다. 그 결과 금융 위기를 계기로 개방적 지역주의를 통해 발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지역의 기대도 도전에 직면했다.

금융 위기에 대한 미국의 대응과 개방적 지역주의를 앞세운 느슨한 통합 움직임에 좌절을 느낀 지역 국가들은 동아시아라는 상대적으로 협의의 지역을 중심으로 협력과 통합을 강화하려 시도했다. 이러한 지역주의 움직임 가운데 결정적인 것이 동아시아정상회의(EAS)의 조기 출범이었다. 중국은 동아시아정상회의의 조기 출범을 지지함으로써 지역 국제 질서 형성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 시도했다. 이러한 중국의 적극성은 동아시아 지역 협력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주도권 경쟁이라는 반작용도 촉발했다.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 협력이 주도권 문제를 둘러싼 내부 이견과 경쟁 등의 요인으로 인해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한때 동아시아 지역 협력과 거리를 유지했던 미국이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하며 동아시아정상회의에 참여함에 따라 아태 지역의 주도권은 더욱 강화된다.

 

경쟁과 이견의 확대

그러나 2008년에 발생한 세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아태 지역 질서와 관련하여 이견과 경쟁이 확장된다. 이는 세계 금융 위기를 계기로 미중 간 국력 격차가 급속하게 축소되고 이로 인해 지역의 질서와 관련한 주도권 문제가 부각하기 시작한 것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특히 세계 금융 위기를 계기로 국력과 국제적 영향력에 대한 자신감이 제고된 중국은 해양 영유권 분쟁을 위시한 지역의 이슈와 관련하여 공세적 입장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중국의 공세에 직면한 미국은 아태 재균형과 TPP를 통해 대응했다. 미국의 회귀는 지역 국가들에 중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도록 작용했다. 

지역 질서를 둘러싼 이견이 증대되고 또 이 과정에서 지역의 정체성에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중국이 2013년에 선언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과 일대일로의 추진에서도 확인되었다.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후 중국은 독자적 움직임을 통해 자국의 이익과 선호를 추구하려는 의지를 강화했고, 그 결과 지역의 범주를 더욱 확장하려 든다. 

일대일로는 지역의 범위를 더욱 확대시켰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지리적 관심이 아태 지역을 넘어 확대됨을 의미했다. 이 과정에서 중앙아시아의 비중이 증대됨으로써 주변(周邊)이라는 중국의 전통적 지리 관념이 복원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일대일로는 동남아와 인도양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이처럼 중국의 관심이 동남아와 인도양에 집중됨에 따라 미국과 동맹국들 또한 대응의 지리적 초점을 인도양으로 확장할 필요성을 자각하게 되었다.

 

인도태평양과 질서의 분리

인도태평양 지역의 등장은 지리적 범위의 확대와 함께 질서의 형성과 관련하여 경제와 안보가 연계되는 추세가 강화됨을 의미한다. 또한 인도태평양이라는 거대 지역의 등장은 지역에서 경쟁의 심화와 함께 질서의 분리 가능성도 제기했다.

우선, 인도태평양의 등장은 인도양과 태평양 지역의 통합을 통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려는 미국과 지역 국가의 의도에 힘입었다. 미국은 인도를 포함시켜 인도양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증대 시도에 대응하도록 함으로써, 자원을 아태 지역에서 중국에 대응하는 데 집중하려 시도했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등장은 경제와 안보의 연계를 상징한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Chip 4와 같은 경제적 연대를 형성하면서 가치의 동일성을 그 기반으로 제시함으로써 동류 국가들끼리 연대하고 중국을 배제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경제 관계의 안보화는 지정학적 이익과 고려가 경제 협력의 필요성을 압도함을 의미하며, 이 점에서 지역 질서 형성의 초점이 경제적 협력에 집중되었던 추세로부터 분명한 전환을 상징한다.

인도태평양이 인도양과 태평양의 통합을 통한 지역의 확대를 의미하지만 지역 내 연계가 강화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도태평양의 등장은 지역과 지역 질서가 분리되고 경쟁할 가능성을 제고했다. 중국은 미국이 동류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시도에 경계를 보인다. 중국은 일대일로와 제3세계(全球南方, Global South)를 강조함으로써 대응하려 한다. 

인도태평양이 아태 지역을 대체한 것은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미국과 현상을 유지하려는 지역 국가가 연대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도태평양 지역의 등장이 미국 패권이 다시 강화될 것임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우선, 미국 자체의 한계가 분명하다. 또한, 미국의 영향력이 제약될 가능성이 곧 중국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도태평양의 부상은 중국의 영향력도 제약할 가능성을 지닌다. 

인도태평양이라는 거대 지역이 힘을 얻으면서 동아시아 협력이라는 전통적 지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주의는 약화되었다. 그 대표적 증거로 아세안의 약화를 들 수 있다. 동시에 동아시아 지역의 또 다른 소지역 협력 시도인 한중일 협력도 한계에 직면했다. 3국 모두에서 민족주의가 강화됨으로써 협력의 주도권 문제가 제기된 데 더해,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면서 중국의 적극성은 더욱 약화되었다.

 

공존인가 신냉전인가?

탈냉전기 아태 지역에서 국제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모색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지역의 범위가 확장되고 또 지역 질서 형성에서 경제적 고려의 비중이 약화된 반면에 외교ㆍ안보의 비중이 증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부상으로 세력 전이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증대되고 이와 함께 지역 질서의 주도권에 관한 경쟁이 심화한 것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쟁은 어떻게 귀결될 것인가? 미국이 경쟁을 통해 힘의 우위를 다시 확보할 경우 재집중화(reconcentration)가 발생할 수 있고 이에 힘입어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복원되고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을 통해 우위를 다시 확보하더라도, 그 정도로는 질서 형성을 독자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양국 간 전쟁이 발생하지 않는 한 재집중화의 정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큰 것은 지역의 질서를 둘러싼 경쟁과 그 결과 분리의 추세가 이어지고 또 심화하는 것이다. 이 경우, 다시 두 개의 서로 다른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그 하나는 공존이다. 이는 양국이 경쟁을 관리하는 데 성공할 경우이다. 이 경우 양국은 서로 다른 질서와 세력권을 형성한 상황에서도 교류를 계속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류의 수준과 정도가 탈냉전기보다 약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두 개의 진영을 주도하게 될 미국과 중국 모두가 국가 안보를 내세워 교류를 제약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미중 경쟁이 관리되지 않을 경우, 지역에서 신냉전의 국면이 형성되고 이와 함께 충돌의 위험성도 증대될 것이다. 즉, 미국이 주도하는 진영과 중국이 중심이 된 진영이 형성되어 서로 경쟁하고, 이 과정에서 충돌의 위험성이 수시로 부각하는 상황이다. 가령, 한반도의 경우 한미일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진영과 북중러를 중심으로 한 다른 진영이 형성되어 서로 대립하는 냉전기의 양상이 재현될 수 있다. 그 어느 경우든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통합을 추구하던 탈냉전 초기에 힘을 얻었던 지역 질서로부터의 분명하고 현저한 변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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