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문화의 편향성과 재현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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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문화의 편향성과 재현의 문제
  • 홍남희 서울시립대
  • 승인 2023.06.1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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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편향된 기술 문화는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 한국 포르노그래피 규제 담론의 궤적』 (홍남희 지음, 컬처룩, 320쪽, 2023.05)

 

존 버거는 〈보기의 방식 Ways of Seeing〉이라는 책에서 미술사를 가로질러 지속되어 온 여성 재현의 관습을 비판한다. 세월이 흘러 사진, 텔레비전, 비디오, 스마트폰 등으로 기술환경이 변화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여성 재현의 관습은 바뀌기는커녕 더욱 심화되어 왔다는 점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보는 주체로서의 남성과 시각적 대상으로서 여성은 다양하게 변주되어 오며 우리 기술문화의 편향성을 구성해 오고 있다. 

이 책 〈편향된 기술문화는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 한국 포르노그래피 규제 담론의 궤적〉은 젠더 관점에서 인터넷 역사를 그려내려는 시도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재현하는 극단적 사례로서 포르노그래피는 인쇄 매체 등장 시기부터 대중적 ‘장르’로 자리 잡아온 동시에 여성을 특정한 방식으로 재현하고 성애화하는 사회적 관습을 형성해 왔다. 이 책은 이러한 재현의 관습이 기술 진보와 함께 어떻게 지속, 변주되어 왔는지를 확인하면서, 기술과 관련한 중립성, 객관성 담론이 ‘신화’임을 밝히고자 했다. 또한 오늘날 디지털 생태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을 가시화하고자 했다. 기술의 설계자, 집행자, 이용자는 물론 미디어 기기, 알고리즘, 규제 제도, 담론, 문화 등 다양한 ‘인간-비인간’ 행위자들의 연합적인 환경으로서 오늘의 디지털 기술문화의 역사적, 구조적 조건들을 살피고자 한 것이다. 특히 미디어 연구가 그간 파편적으로 다루어 온 기술문화의 편향성과 인터넷 역사를 젠더 관점에서 꿰어보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자유’라는 개념을 파헤칠 필요가 있었다. 인터넷은 ‘자유’의 매체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 냉전의 종식과 자유주의의 확산, 특히 한국에서는 1987년 6월 항쟁과 공식적 검열 제도의 폐지 이후 정치적 자유와 성적 자유에 대한 사회적 갈망이 높아진 상태에서 인터넷은 자유의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 사회에서 꽤 오랜 기간 동안 성은 정치적 비판을 억누르기 위한 기제로 국가 차원에서 활용되어 온 수단인 한편, 정치적 자유화 이후에도 음란법을 통해 다양한 국가적 통제가 이루어져 온 분야기도 했다. 그러나 존 페리 발로우의 선언대로 “산업시대의 정부”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완전히 새로운 매체로서의 인터넷에 대한 인식은 정보의 자유, 표현의 자유,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의 서사와 연결되어 왔다. 그 자유의 서사는 디지털 기술 환경에서 취약해지는 여성, 아동을 시민에서 배제해 왔고 남성 중심의 성폭력과 성착취를 정당화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인터넷 포르노그래피 규제 담론의 궤적을 다룬다. 1장은 포르노그래피가 인쇄 매체 이후 ‘발명’된 근대적 산물로서 매체의 발전 과정과 소비사회의 정착 과정에서 어떻게 여성의 성을 상업화하는 구체적인 재현 방식으로 자리 잡아 왔는지를 다룬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허슬러〉 등의 포르노 잡지 대중화 과정과 안티 포르노그래피 담론 및 법 제도화 과정을 살피면서 포르노그래피와 여성혐오, 성차별 간의 관계를 이론화한 페미니즘의 논의를 정리하였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1990년대 인터넷 대중화 이전 포르노그래피 및 음란물 규제 담론의 양상과 인터넷 이후 포르노그래피 부상과 관련한 매체적 특성의 규정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2장은 인터넷 이후 아동, 청소년의 포르노 노출이 잦아졌고, 이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졌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청소년 보호를 위한 인터넷 규제 담론이 부상하게 된 맥락을 정리했다. 특히 유년기의 연장과 인터넷의 상업화, 기술문화에 대한 능숙함은 아동, 청소년의 음란물 소비 피해뿐 아니라 유통, 제작을 주도하는 가해자 청소년을 부각시켰다. 또한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과 연결성은 아동 성애와 아동 성착취로 나타났다. 특히 청소년의 성별에 따라 가·피해의 차이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3장은 기술 발전과 성 표현물 유통의 다변화를 다룬다. 1990년대 이래 여성은 온라인에서 ‘성적 대상’ 아니면 ‘페미니스트’로 양분되어 존재해 왔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적극적으로 수집, 소비, 공유되어 왔으며, 이를 전시하는 행위는 온라인에서 명성과 수익을 얻게 했다. 한편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미디어 및 정치권의 젠더 갈등 유발 담론으로 여성과 관련한 이슈는 수익화와 클릭 유발의 상품이 되고 있다. 

 

                                          사진 출처=Human Rights Watch(www.hrw.org)

4장은 디지털화와 여성 일상의 포르노화를 다룬다. 웹 2.0 이후 참여와 공유의 일상화, 개인 미디어의 대중화, 스마트폰 확산과 더불어 보통의 여성 개개인을 향한 도시공간에서의 불법촬영, 사적 동영상의 비동의 유포 등이 만연해져 왔다.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적 영상물이 청소년 보호나 사회의 성 도덕 보호 관점에서 적용되어 온 ‘음란’의 차원에서 규제되었다. 웹하드, P2P 등의 서비스는 제작과 유통, 소비의 연결된 생태계가 공고해지면서 일반인까지 이 연결망에 단단히 자리 잡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컴퓨터의 연결성은 특정 영상물의 걷잡을 수 없는 유포를 가능하게 했으며, 일상적인 다운로드 행위 또한 수요를 만들어 공급을 끊이지 않게 하는 등 이러한 영상물의 생태계에 기여하게 된다. 2017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이어진 ‘페미니즘 리부트’, 2018년 혜화역 시위 등의 액티비즘은 온라인에 만연한 여성 인권 침해 행위들을 불법과 범죄로 이름 짓고 언론과 규제, 문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기 위한 담론적 전략으로 이어졌다.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적 행위들이 문화이자 장난으로 묵인되고 소비되어 온 데는 평범한 소비자들의 방조 혹은 적극적 소비 등이 원인이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5장은 디지털 플랫폼의 기술문화적 조건으로 인터넷 개인방송의 수익화 조건, 동질적인 카카오톡 단톡방 문화, 익명적 플랫폼인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등을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 매개 성폭력’의 사례들의 연속성과 특성을 정리하였다. 또 기술 매개 성폭력과 동시대 친밀성의 변화를 정리하면서, 여성을 성애화하는 기술문화가 직장, 길거리, 연인 및 부부, 익명의 대중 등과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발생하고 있으며, 이것이 여성 일상에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젠더 폭력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정리하였다. 특히 현재 매체 환경에서 유포 불안은 상시적이고 실질적인 데도 불구하고 피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6장은 데이터 감시 사회의 특성 하에서 취약해지고 있는 여성, 아동에 주목한다. 데이터화가 스토킹, 불법촬영, 비동의 유포, 클라우드 해킹, 신상공개 등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여성에게 모욕을 주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젠더화된 프라이버시’ 위반 양상에 주목하면서, 끝나지 않은 독성의 기술문화를 보다 맥락적, 구조적으로 사유할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이 책이 포르노그래피라는 특정한 여성 재현의 관습을 통해 오늘날 기술문화의 편향성을 살펴보려고 한 이유는 인터넷 이후 포르노그래피의 유통, 소비는 물론 심지어 ‘제작’까지 대중화되면서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 그것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재현하고 유통시키는 문화 등으로 쉽게 이어져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성 일상을 촬영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것이 정당한 ‘문화’라고 볼 수는 없으며, 이를 성적 흥분을 위해 상업적으로 기획 제작된 포르노그래피로 불러서는 안 되지만, 이 책은 포르노그래피의 재현 관습, 포르노그래피 소비의 관습이 여성 일상을 모두 성애화하고 ‘포르노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본다. 

실제로 한국의 소라넷이나 캐나다에 적을 둔 세계적 규모의 폰허브(PornHub) 사이트는 포르노그래피 유통에서부터 아동 성폭력, 불법촬영, 비동의 유포, 인종차별 및 여성혐오 콘텐츠로 가득차 있다. 〈뉴욕 타임스〉는 2020년 12월 4일자 “왜 캐나다는 이 회사가 착취와 폭력 비디오로 이윤을 내도록 허용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폰허브를 통해 여성 청소년 성착취 사례와 아동 이미지의 제약 없는 유통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소라넷 또한 다양한 성 범죄와 불법 촬영물의 유통 경로로 오랫동안 성장해 왔으며 여성단체들의 오랜 폐쇄 주장과 비판에도 2016년에야 폐쇄되었다.  

포르노그래피의 유통은 인터넷을 산업화하는 주요 동력이 되어 왔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 새로운 기술로 성적 모욕을 만들어 내는 ‘문화’, 모욕을 상업적으로 유도하는 다양한 기술적 장치들, 여성 인권 침해를 규제하지 않는 법 제도와 담론은 여성 일상의 포르노화와 편향된 기술문화를 형성한 주요한 행위자들이다. 이러한 기술문화의 편향성은 AI 인플루언서, AI 챗봇, AI 규제를 위한 데이터 학습과 라벨링은 물론 딥페이크 포르노그래피, 메타버스 성착취, 인터넷 개인방송 ‘벗방’ 등 새로운 기술의 실행과 적용 과정으로도 이어져 오고 있다. 

아동, 청소년들은 이러한 편향된 기술문화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고 있으며, 상업화된 디지털 문화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을 학습하고 있다. 누가 어떠한 목적으로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지, 기술은 어떻게 누군가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는지, 그것으로 기술기업은 어떻게 성장해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오늘날의 ‘플랫폼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디지털 시민성 논의에 있어 꼭 필요한 젠더적 관점을 강조하며 한국 인터넷 역사를 다시 그려내고자 했다. 부족하지만 이 책이 편향된 기술문화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사유하는 데 아무쪼록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이 지금과 같은 기술의 폭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고민해 보는 계기로 이어진다면 좋겠다.


홍남희 서울시립대·영상학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영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방송학회 방송저널리즘연구회 김세은저널리즘논문상(2023), 한국언론법학회 유당신진언론법상(2018) 등을 수상했다. 디지털 미디어, 저널리즘, 젠더, 미디어 거버넌스 관련 연구를 해 왔다. 〈Gated Communities and the Digital Polis〉(공저),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공저), 〈AI와 더불어 살기〉(공저), 〈디지털 미디어 소비와 젠더〉(공저), 〈SNS 검열〉 등의 저서와 다수의 학술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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