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소설’의 역사와 계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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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소설’의 역사와 계보를 찾아서
  • 최애순 계명대학교
  • 승인 2023.06.1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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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테제_ 『한국 과학소설사: 한국 SF의 엉뚱한 상상의 계보』 (최애순 지음, 소명출판, 344쪽, 2023.04)

 

2020년대를 전후하여 SF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그러나 대학 강의에서 가르치는 텍스트는 서구의 것이 대부분이고,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텍스트는 이제 붐을 맞은 2020년대를 전후로 한 최근의 것이다. 그동안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던 한국 과학소설의 사적 맥락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국에는 ‘과학소설이 별로 없었다’로 그쳐 버리고 마는 게 통상적이었다. 『한국 과학소설사』는 한국 과학소설의 사적 맥락을 들여다보며, 현재의 붐을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들여다보고자 하였다. 

이 책은 2022년 필자가 냈던 『공상과학의 재발견』과 짝을 이루어서 보아야 한국 SF 발달사를 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한국 과학소설이 변방으로 밀려나 빛을 보지 못한 이유는,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이라는 이분법적 문단의 구도와 과학소설 내에서도 공상과학과의 용어 투쟁으로 대립했기 때문이다. 이런 대립 논쟁은 결국 과학소설을 어린이들이 보는 허무맹랑한 것으로 인식하게 했고, 어른들이 보는 잡지나 단행본에서는 과학소설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필자는 공상과학과 과학소설이라는 용어로 양분되었던 한국 과학소설의 발달 과정을 따라가 보며, 계보에서 배제되었거나 아직 연구되지 않은 작품을 그 시대의 문화사적 맥락 속에서 고찰해 보았다. 공상과학에 초점을 두고 1960년대와 1970년대 공상과학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것이 『공상과학의 재발견』이라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과학소설이라는 표제가 달렸던 작품을 중심으로 따라가 본 것이 『한국 과학소설사』이다. 한국 과학소설 계보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완전사회』와 『비명을 찾아서』에 관한 내용이 『공상과학의 재발견』이 아닌 『한국 과학소설사』에 수록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철세계: 이해조(李海朝)가 번안하여 1908년 11월에 회동서관에서 발행한 개화기 번안소설이다.

따라서 이 책은 ‘과학소설’이란 표제를 달고 유입되었던 1907년 「해저여행기담」과 1908년 『철세계』로부터 시작하여, 1987년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까지를 다룬다. 배명훈과 듀나 이후에서 김보영, 김초엽, 천선란, 정세랑 등의 최근 작가들은 평론가나 연구자들이 활발하게 언급하고 있다. 『한국 과학소설사』에서도, 이 책의 쌍생아인 필자의 다른 책인 『공상과학의 재발견』에서도 1980년대까지만 다루었더니 ‘왜 최근 것을 다루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한국 과학소설사』의 ‘나가며’ 부분에 2020년대 한국 SF의 전망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많은 2020년대를 아우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여력이 된다면, 최근 아동·청소년 SF와 성인 SF를 같이 읽으며 공통된 경향이나 차이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싶다. 

그러나 『한국 과학소설사』에서 필자는 지금까지 평론가나 연구자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그러나 한국 독자로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과학소설이 어떻게 험준한 과정을 거치며 발달해 왔는지에 주목하였다. 최근 것은 자료 구하는 어려움이나 발품을 팔아서 직접 사진을 찍거나 하는 일은 없지만, 시기가 거슬러 올라갈수록 자료 자체를 구하는 데 애를 먹거나 자료도 몇 번에 걸쳐서 가야 볼 수가 있는 것들이 있어서 작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작업이다.

김동인의 「K박사의 연구」는 연구자들에게서 ‘한국 최초 창작 SF’라는 타이틀만 얻고 서지를 추가하는 데서 그치고 왜 이렇게 엉뚱하고 뜬금없는 작품이 이 시기에 창작되었는지는 연구된 바가 없었다. 필자는 서지사항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과학소설이 어떻게 발달해 왔으며, 그 시기에 그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짚어보거나 혹은 반대로 작품을 통해 그 시기의 사회문화사를 들여다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대중 장르의 발달은 당시 대중의 흐름과 경향을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에 텍스트만 가지고는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식민지 시기 과학소설을 통해 발명학회를 필두로 하여 당시 대중의 발명·발견의 열풍과 막연한 기대와 좌절을 따라가 보았다. 

 

                                                    과학소설 표제가 달렸던 작품들

이 책에는 『신시대』의 「태평양의 독수리」와 「소신술」, 껌딱지 만화 『헨델박사』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연구되지 않았던 1940년대부터 1950년대 전쟁기까지의 디스토피아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한국 과학소설이 발달하지 않았었다’ 혹은 ‘한국 과학소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었다’라고 언급하기 이전에 어떤 작품이 어떻게 창작되고 발표되었는지부터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 연구되지 않은 작품을 다루는 경우는 위험 부담이 따른다. 뒷받침할 수 있는 선행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안전민의 「태평양의 독수리」는 같은 제목의 혼다 이시로(<고지라>로 더 알려져 있다) 감독의 1953년 전쟁영화 <태평양의 독수리>가 있고, 작품의 등장인물이 ‘하나다 공조’로 일본인인 것으로 보아 일본 작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시기상으로 안전민의 「태평양의 독수리」가 앞서 있으므로, <태평양의 독수리>는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식민지 시기 한국에서 발표된 과학소설은 아직까지도 번역인지 창작인지가 불분명하여 서지 정리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과학소설 연구가 최근 많이 진행되고 있고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는 하나 사적으로 한국 과학소설의 정체성을 명확히 규명하는 작업은 아직도 서지사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갈 길이 멀다. 서지사항을 바로 잡거나 한국 과학소설사를 기술하는 작업은 개인보다 여러 사람의 노력이 합해져야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이 책에서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한국 과학소설의 계보에서 해방 이후 많은 작품이 창작되었지만 배제되었던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이다. 그래서 한국 과학소설의 계보나 사전의 과학소설 항목에서 늘 거론되는 문윤성의 『완전사회』(9장)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10장)를 뒤쪽에 배치하고, 한국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을 두 작품 앞(6, 7, 8장)에 배치해 두었다. 특히 6장에서 8장은 해방 이후 아동·청소년 SF와 성인 SF로 갈라지게 되면서 문윤성의 『완전사회』(1965)와 한낙원의 『잃어버린 소년』(1959)을 두고 벌이던 최초 창작 SF 자리다툼에서부터 한국에서 과학소설이 아동·청소년의 것으로 인식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낙원의 연재 과학 소설 '우주 벌레 오메가호'

김이구가 『한낙원 과학소설 선집』(2013)을 낸 이후로 한낙원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더불어 아동·청소년 잡지에 실린 과학소설 역시 연구되기 시작했다. 한낙원과 SF 작가 클럽이 활동을 함께 하지 않았으며, SF 작가 클럽은 『학생과학』 지면에만 글을 실었다면, 한낙원은 『학원』, 『새벗』, 『소년』 등의 아동·청소년 잡지에 고르게 글을 실었다. SF 작가 클럽의 과학소설은 『학생과학』의 지면을 택하고 있지만, 성인 대상의 SF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아동·청소년이 주인공도 아니었고 강의식의 설명도 많았다. 이들이 『학생과학』 지면을 택한 것은 당시 과학소설이 어린이들이 읽는 허무맹랑한 것으로 여겨지는 바람에 성인 대상의 대중잡지에서는 지면을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문윤성의 『완전사회』가 1965년 『주간한국』의 ‘추리소설 공모전’에 당선된 작품이라든가, 복거일이 국내에서도 생소한 ‘대체역사’라는 장르를 들고 나온 것은, 당시 과학소설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당시 성인 대상의 대중잡지에 추리소설은 많았지만, 과학소설은 거의 실리지 않거나 간간이 어쩌다 한번 눈에 띌 뿐이었다. 그만큼 성인 대상의 읽을거리에 ‘과학소설’은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 책은 2020년대 한국 SF가 붐을 일으키기까지 얼마나 험준한 과정을 거쳤는지, 그리고 어떻게 당대 사회문화를 반영해 왔는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2020년대 SF 붐을 맞아서 배명훈과 듀나에 이어 김보영, 김초엽, 천선란 등의 여성 작가도 강세를 보이고 한국 과학문학상에서 매년 꾸준히 작가를 배출하기도 한다. 그동안 배제되었던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에서도 활발하게 창작물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강조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은 해방 이후 늘 많은 작품이 생산되고 읽히고 있었다. 다만 연구자나 평론가들이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다가 최근 주목해서 언급하고 있다는 경향이 달라졌을 뿐이다. 대학 강의에서도 SF 강의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대학 강의에서 다루고 있는 텍스트는 주로 서구의 고전이나 서구 SF 영화이다. 

장르문학의 발달은 장르 자체가 서구에서 유입된 것이다 보니 서구의 것에 밀려서 국내의 것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추리소설 쪽에서도 서구나 일본의 작품을 주로 읽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장르문학이란 각 나라의 고유한 특성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한국 과학소설에도 한국의 사회문화사나 시대적 특성이 가미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서구의 것을 중심으로 받아들였던 이론이나 개념, 텍스트에서 벗어나 ‘한국’ 고유의 것을 따라가 보는 데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SF의 서구적인 이론보다는 한국에서의 굴절 양상이나 발달 과정에 주목하였다.   
         
두 권의 책을 내고도 미진하게 남아 있는 부분은 있기 마련이다. 식민지 시기의 과학소설은 일본 과학소설과의 영향 관계에서 연구되어야 하는데, 일본 연구자들(한국어로 나온 논문)도 번역에 주목하고 일본에서의 수용 양상을 건드려 주지 않아서 경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더 연구할 기회가 있다면 1920년대와 1930년대 일본에서 로봇이나 인조인간에 대한 관심이 창작 SF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어떤 SF들이 있는지 등에 주목하고 싶다. 더불어 필자의 『공상과학의 재발견』에서 다루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공상과학 만화와 애니메이션 연구를 일본의 <마징가 Z>나 <철완아톰> 등과 같이 비교해서 채워 넣고 싶은 부분이 있다. 
  
필자의 오랜 작업이었던 과학소설 장르를 마무리하고 다른 장르나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고 하는 시점에서 아직 연구되지 않은 것들이 또 보여서 큰일이다. 『태극학보』에 실린 「해저여행기담」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아서 번역할 때 달라진 내용을 상세히 연구하지 않았는데, 새로 추가된 부분이나 대한제국 말기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낸 부분이 적지 않게 삽입되어 있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처럼 서지에 있다고 해도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그대로 두면 한국 과학소설의 특성이나 정체성은 묻히고 말기 때문에 최초 번역인 「해저여행기담」도 텍스트를 상세히 한 번 다루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붐이 인다고 하면 다들 그 붐으로 몰리거나 한다. 그러나 한국 과학소설 붐은 2020년대를 전후한 최근 작가들에 한정된 것 같다. 필자가 최근 것보다는 ‘식민지 시기부터 1980년대까지’를 다룬 이유도 하는 사람이 없는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다른 장르나 다른 주제를 택해서 한국 장르문학을 들여다보며 그 시대의 사회문화사를 훑는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최애순 계명대학교·국문학

계명대학교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최인훈 소설에 나타난 연애와 기억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식민지시기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대중문학과 문화의 계보를 추적하는 작업을 오랫동안 해 오고 있다.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에서 식민지 조선의 탐정소설사를, 『공상과학의 재발견』에서 한국 공상과학의 연대기를 살펴보았다.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 대중 장르의 초창기 유입과 정착 과정, 외국 문학보다 한국 문학의 장르와 코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 장르나 코드의 발달을 역사적으로 훑으며 그 시대의 사회문화사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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