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은 군주의 하늘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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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은 군주의 하늘이니
  •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
  • 승인 2023.06.18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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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칼럼]

코로나19 대응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일 것이다. 그런데 당시 가장 각광을 받았던 사람들은 간호사와 라이더였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엘리트일지 몰라도, 당시 한국인들의 삶을 지탱한 것은 이들의 노고였다. 이들에 의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성공할 수 있었으니,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이는 이들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필수 노동자'로 치켜세우면서 그들을 응원했다. 지금은? 간호법은 무산되었고, 라이더는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코로나가 또 터지면 그때는 무슨 염치로 또 손을 벌리려고 저러는 걸까? 돈만 주면 일할 사람이 많다고? 그런 시대는 지나고 있는데, 이 사회는 사람 귀한 줄 모른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틀을 세운 정도전은 “국가는 백성에 의지하니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군주의 하늘이다”(『조선경국전』)라고 말했다. 조선의 지배자들 역시 여타의 지배자들과 다를 바 없이 백성을 수탈했지만, 당시 세계사적으로 드물게 500년간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한국 고교야구연맹에 가입한 고교 야구부는 모두 95개이고, 일본 고교야구연맹에 가입한 고교 야구팀은 3,600개여 개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만화 같은 활약을 하는 오타니가 다닌 고교 야구팀은 부원이 130명을 넘는다고 한다. 물론 일본의 고교 야구팀은 183전 183패의 서울대 야구부와 같은 곳도 많이 있지만, 일본은 생활체육으로 돌아선 지 오래고 우리는 여전히 엘리트 체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 유형 발표가 났다. 누구는 기뻐할 것이지만 대다수는 좌절하였다. 432명이 선정되었고, 인문사회계 강사는 2만 명이 넘는다. 강사도 대학에서 강의하려면 연구실적물이 있어야 하는데 연구비는 없다. 한국 사회는 강사의 연구성과는 가져가면서 연구비는 주지 않는다. (염치없는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나마 푼돈이나마 주는 것이 한국연구재단의 사업인데, 단발성 지원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이에 대한 한 대안이 5년간 연 4천만 원을 주는 A 유형이었을 것이다. 이들도 5년이 충분한 기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최대한 많은 연구자를 지원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소수의 연구자를 선발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인문사회 학술지원사업은 단순히 가난한 강사들에게 돈 몇 푼 더 주려는 차원이 아니라, 이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연구 역량을 보장하여 대학의 몰락을 막는 데 기여해야 한다. 그런데 신청-심사-선정-지원이라는 현행 방식은 연구의 목적을 연구비에 두게 하여 선정 가능성이 높은 논문이 양산된다. 5년간 연구계획을 제출해야 하니 연구 주제는 대형화할 것이고, 심사를 통과해야 하니 내실보다 외형에 치중하게 될 것이다. 인문사회학을 망치는 길이다.

한 명의 플라톤이 나오기 위해서는 플라톤과 치열한 논전을 벌였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수많은 사상가가 필요했다. 학문은 한 명의 천재에 의해 발달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연구자를 선발해서 중장기적으로 지원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연구자들이 많을수록 학문이 융성한다. 폭넓게 지원해야 한다. 인문사회학은 백가가 쟁명하는 곳이어야 한다.

한국의 학계는 협소하고, 심사자는 한정되어 있다. 심사자의 학설이 선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비전공자가 심사하는 경우도 있다. 심사자와 충돌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가 쉽지 않고, 무난한 주제를 선택하게 되어 학설의 쏠림 현상이 심화한다. 학문공동체의 규모가 작아 세부 전공으로 들어가면 알음알음으로 서로를 다 알 수 있어 지원자와 심사자 간의 인간관계가 작동할 수 있고, 심지어 세부 전공의 정파성(학파가 아니다!)까지 얽힐 수 있다. 이는 편향된 학술연구의 흐름을 낳게 된다.

사전 공모 방식이 아니라 사후 지원방식으로 가야 한다. 연구계획서를 심사해서 지원하지 말고 학계에 발표된 연구물을 지원하면 된다.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면 다 지급하자. 등재(후보)지는 이미 연구재단의 심사를 통과한 학술지이고, 여기에 논문이 수록되기 위해서는 또 심사를 거치는데, 사후 지원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연구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연구 기간 종료 후 2년 이내 업적 1편 이상을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연구 기간 종료 후 6개월 이내에 학술 활동 결과보고서도 제출해야 한다. 연구계획서, 논문, 결과보고서라는 같으면서도 다른 일을 해내야 한다. 사후 지원방식으로 가면 연구계획서와 결과보고서를 없앨 수 있다. 학술연구교수로 선정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학계의 인정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탈락은 전혀 다른 문제다. 두 명의 심사위원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니 학계의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탈락한 지원자는 어쩔 수 없이 좌절하게 된다. 연구계획서를 잘 쓰면 된다? 그래도 여전히 누군가는 미선정될 것이기 때문에 연구계획서 탈락이라는 충격이라는 애초의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그리고 이를 해결할 길은 사실상 없다. 학술의 평가는 학계로 돌리자. 학술지 심사위원한테 돌리자. 학술지 심사 역시 문제가 많지만, 현재로서는 이 길이 최선이다.

헤겔이 말했듯이 인정 욕망은 생사를 가를 수 있을 만큼 중대한 문제다. 연구자들에게는 특히 더 그러하다. 오죽했으면 공자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이 군자라고 했겠는가. 연구자들에게는 자신이 속한 학술공동체에서의 불인정이란 곧 자신의 존재 부정을 뜻한다. 자신의 연구가 무시당하는 일은 자신의 존재성 자체가 박탈당하는 일이다. 연구계획서 탈락은 연구자의 삶의 의미의 상실과 무력감을 낳는다.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면 다 지원하자. 논문이 게재될 때마다 지원하면 그게 장기적 지원이 된다. 인문사회학술 예산의 증액은 중요한 문제지만,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정의는 곧 분배의 정의다. 소수보다 다수를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발해서 지원하겠다는 발상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선 선정 후 지원의 공모 방식이 아니라 사후 지원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는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관료주의에 이미 포획된 교수들도.


이상룡 논설위원/부산대학교·철학

부산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사. 부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학 개혁, 특히 비정규교수의 노동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비정규교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의사소통과 일치」, 「해명·치료·언어투쟁」, 「비트겐슈타인 삶의 방식의 변경」, 「대학 구조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벼랑 끝 비정규교수」,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고용구조」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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