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 변화의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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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변화의 탐구
  • 김덕삼 대진대학교
  • 승인 2023.06.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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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에세이]

변화가 빠르다 

너무 진부한 얘기가 됐다. 그렇다 해도, 변화는 빨랐다. 인터넷의 놀라움에서 AI의 공포까지 모든 일이 삽시간에 벌어졌고, 그 끝도 종잡을 수 없다. 

학문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지식의 반감기가 빨라졌고, 학문의 생태계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철학, 국문학, 사학 등의 인문학이 궤멸하고, 단순 계산이나 암기 위주의 공부, 지식 확장을 위한 외국어 학습이 축소됐다.

변화는 변화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2차, 3차로 이어지는 파생적 변화, 그리고 이들이 서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분출하는 예기치 못한 변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런 연유로 변화를 놓을 수 없다. 


변화의 인문학적 탐구

변화와 관련하여 필자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문화의 수용과 창조』(북코리아, 2013), 『변화와 장의 탐구』(한국학술정보, 2022)를 출간했고, 중국 소수민족을 토대로 ‘변화의 탐구, 장이론의 구축’이란 장기연구를 수행중이다. 변화를 ‘주체’와 이를 둘러싼 ‘장(場, field)’으로 탐구하고, 변화에서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을 파악하며, 변화에서의 ‘패턴’을 찾아 활용하고자 했다. 


변화와 패턴

변화의 ‘패턴’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대비할 수 있다. 『주역』도 변화 속 패턴을 찾았다. 같은 이유로 집 앞 편의점도 덥고 건조한 여름에는 하드를 준비하고, 장마철에는 아이스크림보다 청량음료를 준비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화 속 패턴을 발견하여 대비했다.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하인리히가 만든 법칙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말한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 같은 죽음의 5단계도, 매슬로의 욕구 단계도 변화에서 발견한 패턴이 근간을 이룬다. 그래서 이언 스튜어트의 “우리는 패턴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말에 힘이 실린다.

인문학적 변화 연구에서 주목할 것은 모두가 알지만 쉽게 망각하는 본질적 사실에 있다. 예를 들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사실, 우주도, 지구도, 국가도, 권력도, 생명도, 그리고 나도.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여 겸손할 수도 있고, 만족할 수도 있으며, 물러날 때를 가늠할 수도 있고, 감사할 수도 있다. 나아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본질에서 생각하는 착한 목자의 마음을 가질 수 있어, 공동체는 자정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문학적 변화 연구에서 패턴의 발견과 이에 따른 대비도 중요하지만, 본질적 울림으로 ‘회색 코뿔소’를 막는 파수꾼의 역할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풋과 아웃풋

‘인풋과 아웃풋’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다음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다. 『문화의 수용과 창조』에서 인풋과 아웃풋을 수용과 창조로 풀었다. 수용은 인풋이고, 창조는 아웃풋의 적극적 표현이다. 

인풋하는 것으로 우리의 신체, 성격, 행동 등이 아웃풋된다. 개인, 사회,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거리의 가로수도 인풋에 따라 달라지듯, 인간도 똑같다.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서도 인풋은 중요하다. 어느 위치에서 인풋되느냐에 따라 아웃풋이 달라진다. 책을 보는 위치에 따라, 찬성인지 반대인지 입장에 따라, 그래서 같다는 입장에서 보면 다른 것도 같고, 다르다는 입장에서 보면 같은 것도 달라 보인다.

그러므로 사람과 사회의 변화를 탐구하려면, 환자에게 투약하는 의사처럼 무엇이 인풋되고 아웃풋되었는지를 살피고, 그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나만의 장이 아닌 너의 장을 헤아리며, 나아가 너와 나를 아우른 상위의 장에서 생각하는 실천이 요청된다.  

  
주체와 장

‘주체와 장’의 관계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누구의 탓으로만 돌리는 끝없는 갈등을 막고, 조화로운 변화를 기약할 수 있다. 그 장에는 그 장에 요구되는 양식이 있다. 그래서 “사자가 물에 빠지면 붕어 밥이 되고, 상어가 뭍으로 올라오면 쥐에게 물어 뜯긴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세상은 삭막하고 내 탓이 아닌 것도 내 탓이 되고, 심지어 없던 피해까지 나의 탓으로 넘어간다. 다양한 장 속에 저마다의 문제를 품고 우리는 섬처럼 살고 있다. 많은 문제와 갈등이 상존하지만 해결은 고원하다. 대부분의 문제는 주체에게 책임을 묻는다. 맞다. 하지만 이게 어찌 주체만의 잘못일까?
 
1977년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아무 이유 없이 살해하고 스스로 사형을 요구한 사람, 바로 게리 길모어. 그의 동생은 형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내 심장을 향해 쏴라』에 담았다. 물론, 게리 길모어의 사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 자신이다. 하지만 그 자신에는 가정, 사회, 국가, 나아가 인류와 같은 다양한 장이 중첩하여 연결되어 있다.

주체 개인만이 아닌 주체를 둘러싼 장의 책임이 존재한다. 이는 여전히 지금 여기에도 요청된다. 지난 주 캠퍼스에서 청소차에 목숨을 잃은 영혼, 어제 자살한 어린 학생의 죽음, 축제를 즐기다 생명을 잃은 한(恨), 개선할 일이 도처에 넘쳐난다.  
 

희망 그리고 믿음

희망을 놓지 않는다. 느리고 더디지만 적어도 과거보다는 발전해왔음을 믿기 때문이다. 인권, 사회권, 동물권 등에 변화가 있었다. 기저에는 인류의 사고를 넓혀주며 선한 실천을 이끈 ‘의심’하고, ‘탐구’하며, ‘실천’하는 노력이 있었고, 그 동력에는 인문적 힘과 상상력이 있었다. 

변화를 읽는 방법도, 접근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무궁한 변화에서 필자가 탐구할 수 있는 변화는 극히 제한적이다. 또한 자연과학적 변화 탐구와 동일할 수 없다. 변화의 끝도 중요하지만, 변화의 뿌리도 중요하다. 하늘에 날고 있는 연도 중요하지만, 연을 붙잡고 있는 손도 중요하다. 그 지점에 인문학적 변화의 탐구가 위치한다. 

인문학이 변화의 풍랑 속에 좌초하고 있지만, 인문학이 존재할 위치는 바람 속에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연이 아닌, 연을 붙잡고 있는 손, 즉 근원에 대한 의문과 탐구이다. 그 방향에서 필자의 연구도 서있다. 그래서 다시 말한다. “변화의 ‘패턴’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대비할 수 있다. ‘인풋과 아웃풋’도 밝혀야 한다. 그래야 다음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 수 있다. ‘주체와 장’의 관계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누구의 탓으로만 돌리는 끝없는 갈등을 막고, 조화로운 변화를 기약할 수 있다.”


김덕삼 대진대학교·동양철학

대진대학교 창의미래인재대학 교수.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장자』 외·잡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중국 소수민족’, ‘도가 문화’, ‘중국 고등교육’,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 등의 주제로 연구 과제를 수행했고, 현재 ‘변화의 탐구, 장(場)이론의 구축’으로 10년 장기과제를 수행 중이다. 「老庄思想中场理论的解析与扩展」 외 130여 편의 논문과 『中國 道家史 序說 I』 외 20여 권의 저작을 한국, 중국, 대만 등지에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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