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종교, 대안적 담론의 통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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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 종교, 대안적 담론의 통로가 되다
  • 박진규 서울여자대학교·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3.06.1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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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테제_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 (박진규 지음, 컬처룩, 268쪽, 2023.04)

 

<미디어, 종교로 상상하다>는 미디어학자로서 ‘미디어와 종교’라는 낯선 분야를 전공하는 나의 연구 성과물을 하나의 서사로 엮은 책이다. 이 분야는 ‘미디어,’ 그리고 ‘종교’라는 그동안 이질적이라고 여겨졌던 두 영역이 서로 만나는 아주 다양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점들에 대한 연구를 전문으로 한다. 그동안 미디어학에서 종교는 주요 탐구 대상이 아니었다. 공(公)과 사(私)에 대한 근대적 이분법을 따르는 사회과학에서 종교는 주로 사적 영역에 한정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미디어학 역시 그 전통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미디어학, 종교학, 신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문학, 철학 등에서 학제적으로 미디어와 종교의 교차 현상을 탐구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분야 ‘미디어와 종교’가 등장함으로써 이제 미디어학에서도 종교 현상에 관한 학술적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종교는 ‘제도 종교(organized religion)’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보다 훨씬 넓은 의미의 종교 즉, ‘종교적인 것(the religious)’에까지 확장된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는 제도 종교를 벗어나 더 포괄적인 기능과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디어 시대(media era)’라 일컬어지는 현재, 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에서 개인에게 고통, 죽음, 비극, 불의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현실의 혼돈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종교적 상징의 최대 공급원이 되었다. 이제 미디어는 사람들의 일상 속 ‘살아내는 종교(lived religion)’의 현장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생산하는 주요한 통로가 되었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는 종교를 발견하는 핵심적 장소다. 

이 책에서 나는 ‘매개 종교(mediated religion)’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매개 종교, 쉽게 말하면 ‘미디어 속 종교’는 필연적으로 의도적인 혹은 비의도적인 ‘선택’과 ‘배제’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 책은 매개 종교의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단지 제도 종교만이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현상까지 그 탐색의 범위를 확장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미디어 속 종교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얼마나 험난한 현실에 처해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기간이었다. 방역 당국이 설정한 방역의 최대 적인 ‘밀접(密接),’ ‘밀집(密集),’ ‘밀폐(密閉)’는 기존 종교의 생존 방식이었을 뿐 아니라, 신천지와 개신교를 비롯한 제도 종교는 집단 감염의 온상으로 규정되었다. 이제 종교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새롭게 맞닥뜨려야만 하는 시대 질서와 함께 호흡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인식마저 드러났다. 이러한 부정적 인식은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제도 종교에 대한 불신의 추세를 더 강화하는 것이었으며, 이제 그 흐름은 돌이키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아직 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종교는 여전히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걸어온 역사적 여정과 현재 한국 사회가 지닌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 맥락에서 종교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세속 사회가 내놓는 답은 무엇인가? 

종교의 필요성에 대한 세속 사회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미디어’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미디어는 종교에 관한 세속 사회의 가치, 규범, 정서, 합의, 논쟁, 변화 등을 읽어내는 데 매우 유용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미디어가 존재하는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구조와 생존 방식, 그리고 미디어에 참여하는 개인과 사회의 기대치는 종교에 대한 세속 사회의 생각을 중층적으로 담아내는 데 유리하게 작동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책은 서론 격인 1장을 포함해 모두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2장은 ‘매개 종교’ 개념을 소개하고 그것이 미디어와 종교의 교차점 분석에 지니는 유용성을 설명한다. 3장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 팬데믹의 재난 속에서 종교와 미디어가 만나는 몇 개의 지점들을 통해 이 책이 담아낼 다양한 화두를 짚어 낸다. 4장에서는 종교에 대하여 비판적인 저널리즘의 사례를 분석하고 그 비판이 궁극적으로 함의하는 바를 ‘기대(expect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5장은 역으로 종교 집단이 미디어를 바라보는 방식과 논리를 분석함으로써, 제도 종교가 미디어를 어떤 존재로 규정하는지에 따라 만들어지는 결과를 논의한다. 

6장, 7장, 9장은 미디어 텍스트를 통해 종교에 대한 세속 사회의 기대를 구체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사례들을 다룬다. 3대 종교 지도자의 죽음 재현을 통해 구성된 ‘종교 영웅 서사’,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대한 열광적 보도, 젊은 세대의 개신교 비판 정서를 일시적으로 유예시킨 래퍼 비와이, 그리고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대중문화 속 ‘힐링’ 담론은 각각 세속 사회가 기대하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읽어 낼 수 있는 좋은 텍스트가 된다. 8장은 초월성과 초자연성이 등장하는 픽션 텍스트를 통해 종교를 다루는 미디어의 궁극적 관심은 매우 현실적인 차원에 있음을 확인하고, 결론에 해당하는 10장에서는 미디어와 종교를 ‘상상(imagination)’이라는 개념으로 연결하여 한국 사회에서 이 둘의 만남이 함의하는 바를 종합한다. 

다양한 사례들을 탐색하면서 발견한 것은 종교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대안적 가치의 제공자’ 역할에 수렴되며, 이는 종교의 궁극적인 존재 가치가 ‘사회 변화(social change)’를 위한 열망의 실현에 자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점이었다. 미디어가 종교를 다룰 때면 언제나 그 내러티브에 반복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비관적인 평가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해결하고 극복할 방향성의 제시였다. 종교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미디어는 먼저, 우리가 처한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현실을 그 배경에 위치시키고, 그 절망에서 벗어날 유력한 해결책으로 종교로써 표상되는 가치들을 제시한다. 즉, 종교는 현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적 가치를 대체하는 대안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결국 절망적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와 질서로 움직이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매개 종교 현상에 투영된 종교에 대한 기대들은 사회 변화라는 틀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하는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이 종교에서 인간 해방을 위한 유용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시대 사회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발상이라고 했던 것이 연상되는 지점이다. 사회의 의미 있는 변화, 즉 암울하고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대안적인 가치와 질서로 움직이는 ‘더 나은 세상’으로의 전환에 종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상(imaginat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현실에 대한 절망만으로는 곧바로 새로운 세상으로의 전환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사회 변혁의 과정에서 상상과 영감의 중요성을 말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려내는 상상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디어는 종교가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대안적인 담론이 생산, 유통되기 어려운 맥락에서는 사회 변화의 도구로서 상상력의 가치는 더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간 내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던 저널리즘을 통해서 그의 말과 행동이 가리키는 진보적 가치와 의제가 한국 사회의 담론 영역을 압도했던 것, 대중문화 속 ‘힐링’ 담론이 보수적인 한국 사회의 담론적 레퍼토리에 탈물질주의적 기호와 상징, 언어를 추가했던 것처럼, 종교는 사람들에게 대안적 가치, 대안적 삶의 질서, 대안적 삶의 방식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물론 제도 종교를 통해서만 이러한 역할이 충족되는 건 아니라는 점도 확인된다. 다양한 매개 종교 현상은 제도 종교가 그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다양한 형태와 내용의 ‘종교적인 것’이 그 자리를 메꿀 것이라는 점 역시 분명히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 지점은 세 가지였다. 첫째, 종교의 가시성이 크게 높아진 현재를 이해하는 데 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하는 것, 둘째, 향후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전망하는 준거 틀을 마련하는 것, 셋째, 한국 사회의 현재를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변화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를 발견하는 핵심 장소가 된 미디어를 잘 들여다보면 종교가 여전히 필요한지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를 읽어낼 수 있다. 더구나 미디어를 통해 종교의 필요성을 따지는 일은 지금 우리 사회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디어가 종교를 다룰 때 강조하는 바는 한국 사회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 무엇이 충족되어야 하는지 등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박진규 서울여자대학교·커뮤니케이션학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기반으로 대중문화를 가르치고, 미디어와 종교의 교차점을 연구한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학교에서 석사, 콜로라도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리츠메이칸아시아태평양대학교(APU)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ISMRC(International Society for Media, Religion, and Culture)의 Board Member, 한국언론학회 종교와커뮤니케이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Healed to Imagine: Healing Discourse in Korean Popular Culture and its Politics” 등 여러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청춘, 대중문화로 말하다(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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