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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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수 효과
  • 김진웅 선문대학교·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3.06.11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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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광화문, 시청은 안 갑니다” 주말에 시내버스를 이용하다 자주 듣는 말이다. 어떤 노선버스는 아예 주말에는 항시 우회 운행한다는 알림을 붙이고 운행한다. 코로나 이후 서울 광화문-시청-남대문을 잇는 도심은 주말마다 시위가 이어진다. 한편에서는 진보단체, 다른 편에서는 보수단체의 집회가 동시에 개최되곤 한다. 양대 진영에서는 사생결단의 극단적 구호들이 난무한다. 이전에 반정권적 단체들이 집회를 이어가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즉 과거에는 집권 여당의 정책에 대한 반대집회의 성격이 강했는데, 지금은 여야 대립적 단체들의 맞불 집회적 특성이 두드러진 모습이다. 이들을 바라보면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해방 이후 전개되었던 좌우 대립과 같은 모습이 재현되는 듯한 우리 세대의 퇴행적 자화상을. 

반쪽으로 갈라진 분열의 사회상은 치유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앞이 안 보이는 터널 속 암흑과 같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정치를 보아도, 언론을 보아도 극단적 갈등 양상은 서로 복사판 같다. 정치인들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포용의 정치를 포기하고, 대신 절반의 지지층만을 대상으로 삼는 모습이다. 자신이 욕망하는 지위를 획득하는데 필요한 표만 얻으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대표로서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전체 구성원을 위한 것이지, 지지자들의 의사만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이 수행해야 하는 것은 공익(公益)이지, 편익(便益) 또는 사익(私益)을 추구하는 행위는 아니다.   
  
언론의 공론장(公論場) 역할도 길을 잃었다. 수십 개를 넘어 수백 개에 이르는 방송채널에서는 고전적 여론형성 기능을 찾아보기 어렵다. 종종 등장하는 뉴스 정보는 보수 또는 진보 편향의 프레임을 대변하곤 한다. 동시에 언론들은 시장경쟁에서 이윤을 창출하는 상업적 목표를 최우선으로 추구한다. 자극적·선정적·폭력적 프로그램 경쟁이 난무하는 언론현실은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이들 언론을 통해 바람직한 여론이나 공론장이 형성되기를 바라는 것은 물거품일 뿐이다. 

이러한 집회, 언론, 정치의 대립적 양상을 바라보는 시민의 입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런 갈등 속에서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하는 효과만 팽배해진다. 반쪽을 넘어선 공동체의 통합을 향한 길은 안개 속처럼 희미하다. 시민들은 바람직한 여론의 이정표를 제시해 줄 누군가를 기대하게 된다. 본래 정치인, 언론, 전문가들이 그런 역할을 주도하지만 지금 우리사회는 그런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와 관련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를 떠올리게 된다. 원래 승수효과는 경제학적 개념인데, 언론에서는 영국 공영방송 BBC의 품격 높은 프로그램으로 인해 방송시장 전체의 품질이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견인하는 의미로 알려져 있다. 이와 유사하게 우리 정치영역에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뛰어난 리더십으로 정치문화를 끌어올리는 승수효과를 소망해 본다. 또는 타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전문가들의 역할로 바람직한 여론이 형성되고 사회를 이끌어가는 현상과 같은 승수효과를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승수효과를 견인할 주체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인, 의사, 변호사, 교수 등 지도층 인사들은 부동산 투기 등 비리에 얽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이른바 ‘덕망 있고 품위 있는 지도층’에 속하는 인사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건에 연루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법조인들의 대장동 사건 연루설, 김남국 의원의 60억대 코인 보유설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런 사례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들 행위가 법적 그물에 걸리느냐 빠져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막대한 사회적 영향을 미치는 지위를 고려하여 윤리적 잣대가 비판과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는 그런 윤리의식이 실종된 듯하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한 것이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승수효과는 고사하고 반대로 ‘구축(驅逐)효과’가 널리 파급되어 있다. 이런 현상들을 몰아내고 바람직한 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각 부문에서 승수효과가 발휘되어야 한다. 교수, 지성인들은 그 중심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진웅 선문대학교·커뮤니케이션학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독일 베를린대학교(FU)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MBC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 분야는 미디어를 넘어 생태, 생명 등 광의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에 대한 연구이다. 저서로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예술 커뮤니케이션』, 『메타커뮤니케이션』, 『기 철학과 커뮤니케이션』, 『방송자유와 공영방송』 등이 있고, 역서로 『커뮤니케이션학의 이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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