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현대 심리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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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와 현대 심리철학
  • 유원기 계명대학교·철학
  • 승인 2023.06.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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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철학』 (유원기 지음, 아카넷, 564쪽, 2023.04)

 

 

수천 년간 논의된 영혼의 문제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1861~1947)는 유럽의 철학적 전통이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주어진 철학적 물음에 대한 답변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더욱 치밀하고 정교해지지만, 애초에 제기했던 물음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서양철학이 시작된 기원전 7세기 이래로 제기되었던 많은 철학적 물음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의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영혼과 육체에 대한 물음이다. 이 책은 영혼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6~324)의 견해를 현대적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논의하며, 그것을 단순히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대적 관점에서 고찰하고 분석하고 평가한다. 


영혼의 문제에서 정신의 문제로 

이 책의 논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 세계의 변화 원리를 체계화하는 『자연학』에서 출발한다. 이 저서에서 그는 생물을 외부의 도움이 없이 스스로 운동하는 ‘자기 운동자’로 규정하고 두 가지 내적 부분들을 통해 설명하는데, 이 부분들은 『영혼에 관하여』의 논의 주제인 영혼과 육체로 밝혀진다. 따라서 우리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영혼과 육체의 상호 관계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고대 그리스 초기에는 생물과 무생물을 비롯한 운동하는 모든 사물이 ‘영혼’을 갖는다고 생각되었고, 플라톤(기원전 427~347)과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그것은 생물의 다양한 생명 작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리로 생각되었다. 그러다가 근대 시기의 데카르트(1596~1650)가 영혼을 생명 전반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원리로 간주했던 이래로 영혼과 육체에 대한 논의는 정신과 두뇌에 대한 논의로 축소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의 속성이라고 말해지는 것이 과연 영혼에만 고유한 속성인가 또는 영혼과 육체의 복합체가 갖는 속성인가를 묻고, 만약 영혼에만 고유한 어떤 속성이 있다면 그런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될 수 있으리라 말한다. 그는 ‘분노’라는 감정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면서, 논리학자처럼 그것을 ‘복수하려는 욕구’라는 형상적 측면을 통해 정의하는 것이 적절한가, 또는 자연철학자처럼 ‘심장 주변의 피의 끓어오름 또는 뜨거움’이라는 질료적 측면을 통해 정의하는 것이 적절한가, 만약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형상적 측면과 질료적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정의하는 것이 더 적절한가를 묻는다. 

영혼이 육체와 별개의 작용을 수행할 수 있는가, 또는 더 나아가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의 문제는 ‘영혼의 존재론적 위상’에 관한 물음이다. 1950~60년대에 심리철학 분야에서는 정신적 작용이 두뇌의 작용과는 무관한 비물리적인 작용인가, 아니면 두뇌의 물리적 작용에 불과한가를 묻는 ‘정신의 존재론적 위상’에 관한 물음이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고, 그런 흐름에 동반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심리철학 이론들을 통해 해석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영혼과 육체의 분리 가능성 

스승인 플라톤은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가 없는 형상이 있을 수 없고 또는 형상이 없는 질료가 있을 수 없다는 ‘질료형상론’을 주장한다. 모든 사물이 형상과 질료로 이루어졌음을 함축하는 이 이론은 모든 생물이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졌고, 영혼이 없는 육체나 육체가 없는 영혼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상이 질료보다 우선한다는 형상의 우선성, 또는 육체의 원인으로서 기능하는 영혼의 역할, 또는 지성적인 영혼과 육체의 분리 가능성 등을 간혹 언급하는데, 이것은 마치 영혼과 육체의 분리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그가 생각했던 영혼과 육체의 관계가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심리철학은 정신이란 무엇인가, 정신과 육체의 관계는 무엇인가, 정신과 육체는 영향을 주고받는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하는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뇌와 컴퓨터는 동일한 작동 체계를 갖는가 등의 문제를 다루며, 주요 이론에는 이원론, 관념론, 물리론(또는 물질론)이 있다. 플라톤과 데카르트는 영혼과 육체가 서로 분리되어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실체들로 보았다. 이 견해에 따르면, 사람이 죽은 뒤에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된 뒤에도 존속할 수 있으며, 이처럼 두 종류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실체 이원론이라 불린다. 

반면에, 관념론과 물리론은 하나의 실체만을 인정하는 일원론이다. 관념론은 우리의 정신에 지각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데, 지각되는 것은 모두 관념에 불과하고 물질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한편, 물리론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정신작용이 모두 물리적 작용이고 정신적 상태나 사건이나 과정이 결국 물질적 상태나 사건이나 과정에 불과하며,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 상실 없이 물리화학적 용어와 법칙을 통해 모두 설명될 수 있다는 환원론적 입장을 취한다. 특히, 이원론과 물리론은 정교하고도 복잡한 이론들로 분화되어 발전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해석은 실로 다양한 이론들로 시도되었다. 


현대 심리철학의 해석들

먼저 (a)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이원론적 해석은 그가 영혼과 육체를 서로 독립적인 별개의 실체로 보았다는 실체 이원론, 그것들이 하나의 실체이지만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속성들로 보았다는 속성이원론 등의 해석이다. 한편, (b) 물리론적 해석은 그가 감각작용이 발생하는 경우에 육체적 변화가 항상 동반된다고 생각했다는 해석이다. 그런데 강한 물리론에서는 우리가 빨간색을 볼 때 우리의 눈이 실제로 빨갛게 된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고 주장한다. 이와 달리, 약한 물리론 가운데 하나인 기능론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하나의 정신작용이 항상 하나의 동일한 물질이 아니라 다양한 물질에서 실현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정신과 물질의 연결성을 약화시키지만, 심지어 그가 그런 생각을 했던 최초의 기능론자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c) 기능론적 해석에 반발하는 일부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감각작용에 있어서 반드시 육체의 질적 변화가 동반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d) 어떤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현대적인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는 독창적인 이론으로 보는데, 특히 (e) 이 가운데 일부 학자들은 그의 이론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여 보는 현대적 이론과는 다르다는 자연론적(또는 본질론적) 해석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이원론적 해석은 사고작용과 관련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 초점을 두며, 물리론적 해석들은 대체로 감각작용에 초점을 맞추지만 그를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그려낸다. 

 

                                                          사진 출처=THE·COLLECTOR

이 책의 논의와 쟁점

총 6장으로 구성되는 이 책에서 위의 내용들이 1~3장에서 주로 논의되는데, 1장은 자기운동자의 부분들에 대해 논의하고, 2장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과 플라톤이 생각했던 영혼 개념의 특징을 소개하고 정리하며, 3장은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일반적이고 전반적인 견해를 소개한 뒤에 심리철학적 해석들의 쟁점과 문제점을 논의한다. 

그런 뒤에 이 책의 4~6장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견해에 대한 논의인데, 4장과 5장은 영혼의 측면에 대한 견해를 살피고 5장은 육체의 측면에 대한 견해를 살핌으로써, 기존의 해석들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반박하고 대안적인 해석을 제안한다. 4장은 영혼을 가짐으로써 어떤 종류의 생물이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갖고, 그 능력이 어떤 작용과 관련되는가,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동물의 장소운동을 특히 중시하는 이유를 살핀다. 5장은 그가 감각지각과 사고와 구분하여 소개하는 환타시아가 동물의 다양한 능력 가운데 특히 장소운동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논의한다. 

끝으로 6장은 생물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일 뿐만 아니라 장소운동에 관여하는 다양한 심리적 작용들에 모두 수반되는 물질적 요소로 제시되는 쉼퓌톤 프뉴마의 특징과 기능을 살핀다. 특히, 물질적 요소인 프뉴마에 대한 분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대한 다양한 현대적 해석을 거부하는 근거가 되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여 보지 않고 총체적인 결합체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것을 근대 이후의 물리론과는 달리 이른바 자연론적(본질론적) 사고로 규정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인간을 물질적인 요소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질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놓여 있는 현대 학자들과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오늘날 논의되는 다양한 형태의 물리론과는 다른 이른바 자연론적 견해를 제시하는데, 이 견해는 부분들에서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그것들의 합에서 나타난다는 창발론과 관련하여 주장되는 현대적인 견해와 부분적으로 유사하다. 이 책은 고대로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흐름과 연결성을 보임으로써, 과거를 토대로 현대를 발전시키는 계기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단순히 흥미로운 고대 사상이 아니라 현대에도 고찰할 만한 가치를 지닌 이론임을 확인하게 된다. 


유원기 계명대학교·철학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 영국의 Glasgow대학교와 Bristol대학교에서 고대 그리스철학(아리스토텔레스)을 연구하여 각각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비교철학 연구를 위해 성균관대학교에서 성리학(퇴계와 율곡)을 연구하여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연과 인간의 본성과 상호 관계를 규명하는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행복의 조건을 묻다』,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 『조선 성리학 논쟁의 분석적 탐구: 사단칠정론과 인심도심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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