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참여 공론화 해외사례와 시사점…정부·의회 간 추가적 합의, 사후적 입법절차 확보로 공론조사 효능감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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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 공론화 해외사례와 시사점…정부·의회 간 추가적 합의, 사후적 입법절차 확보로 공론조사 효능감 높여야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6.03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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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S 현안분석]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론화 종합토론회에 참석한 시민대표참여단이 토론회 방식과 진행 경과보고를 듣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기술의 발달과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한편 대의제에 대한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면서, 직접 정치의사결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사회의 요구와 움직임도 활발하다.

따라서 주요 국가정책결정을 위한 시민참여와 공론장의 요구는 지속적으로 높아져 왔다. 최근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2023년 5월 국회에서는 500명 안팎의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조사가 진행됐다. 공론조사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서는 해외 각국의 공론화 사례까지 포함한 다양한 사례연구가 필요하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국회입법조사처 정치발전제도개선T/F 활동의 일환으로, 2023년 5월 25일(목), 「시민참여 공론화 해외사례와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NARS 현안분석』 보고서(작성자: 김선화 선임연구관·오창룡 입법조사관)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헌법개정에서부터 원전 정책, 기후위기 대응과 같은 중요한 국가정책까지 시민참여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한 해외사례를 몇 가지 살펴서 시사점을 정리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공론참여자 다양성 확보로 인한 대중적 참여동기유발, 논의 쟁점에 대한 충분한 정보제공 공론화 , 결과의 정책반영을 위한 입법 절차 확보와 같은 요건이 충족될 때, 권고안을 효과적으로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었고 공론조사와 공론화의 효능감도 높았다.

 

□ 보고서는 헌법개정에 대한 대표적인 시민참여 사례로 아이슬란드 헌법심의회 사례와 아일랜드 헌법대회와 시민의회 사례를 소개했다.

• 아이슬란드는 크라우드소싱방식의 시민참여 헌법개정을 처음으로 시도하여 주목을 받았고, 아일랜드도 헌법개정 시민회의를 구성하여 헌법개정이 이루어졌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다양한 층위의 시민으로 구성한 헌법심의회가 헌법개정안을 작성하여 의회에 제안하였으나 정치적 국면과 여러 한계로 인한 문제가 노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의 헌법개정에 대한 시민참여 사례는 기술적인 뒷받침과 저변의 마련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긴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시민참여 개헌논의라는 가능성을 열어둔 매우 중요한 사례로 참고할 수 있다.

• 아일랜드에서는 2011년 헌법대회의 성과가 있었으나, 정작 시민의 제안이 반영된 사안이 미미하다는 비판과 함께 2016년 헌법개정을 위한 시민의회가 구성됐으며, 여러 안건에 대한 헌법개정을 이루어냈다.

아일랜드의 헌법개정을 위한 헌법대회의도 아이슬란드의 사례와 같이 무작위로 뽑은 시민들이 참여하였고, 제시한 헌법개정권고안 중에서 동성결혼 허용규정만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어 헌법개정이 이루어졌다.

2016년부터 시작한 시민의회는 여러 주제에 대하여 여러 헌법개정안을 권고하여 헌법개정을 이루어냈으며, 가장 최근에는 2023년 4월 “Citizens’ Assembly on Drugs Use”가 활동 중이다.
각 헌법개정안의 논의 끝에는 권고안에 대한 최종보고서가 발간되는데 각 보고서는 상당히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히 의견을 망라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필요한 정보와 사실을 공유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설득하는 절차의 중요성, 절차의 노하우에 대해서 아일랜드의 사례를 좀더 면밀하게 살펴서 앞으로 우리가 헌법과 같이 국가전체의 가치체계를 합의하는 과정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 2000년대 후반부터 각국에 주요 정책에 대한 공론화 프로그램이 확대됐다.

ㅇ 핀란드에서는 원전 확대 여부에 대한 공론조사가 시행됐으며, 벨기에서는 시민사회가 G1000 프로젝트를 통해 민주주의 복원을 위한 정책 수렴을 시도했다.

• 2006년 핀란드 사례는 공론조사의 효과와 방법론을 깊게 연구했으나 실제 , 정책 결정에 대한 영향력을 평가하기는 힘들다. 특히, 최종 설문조사에서 증가한 6번째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부정 여론은 2007년 2월 후속 설문조사에서 숙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2007년 3월 핀란드 의회 선거를 앞두고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공론화가 활발하게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찬성 여론이 우세했기 때문에 공론조사 참가자들이 다시 입장을 수정한 것으로 분석됐다.

• G1000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출범했으며, 정치 엘리트가 아닌 시민사회가 주도한 기획이라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받았다. 초기 선언문 발표를 통해 시민 약 1만여 명의 지지를 얻었으며, 1단계 프로그램의 인터넷 여론조사, 2단계 프로그램의 대규모 시민참여는 언론과 여론의 대대적인 관심을 유도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특정 정치인들은 G1000 프로젝트를 기성 정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시민들이 발의한 권고안이 실제 법안이나 정책으로 거의 전환되지 못한 것은 궁극적인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G1000 프로젝트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환기하고, 시민참여 숙의 프로그램의 역할에 대해 많은 관심을 유도했다. “G1000의 권고안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져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 동의한 의원 수는 2011년 14.4%에서 2017년 27.4%로 증가했으며, 다수의 정당은 숙의 민주주의 확대를 민주적 혁신의 의제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벨기에 정부 기관과 지방의회는 유사한 형태의 시민참여 숙의 프로그램을 조직했다.

ㅇ 2010년대에는 아일랜드, 프랑스, 영국, 스코틀랜드, 덴마크, 독일 등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의회 프로그램이 확산됐다. 권고안의 입법화를 위해 입법 실무자와 시민이 협력하는 다양한 방식이 시도됐다.

□ 해외 공론화 사례의 시사점

ㅇ 해외 주요 공론조사 사례의 공통점은 시민의 정치 효능감을 높이고, 정치적 관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증대시켰다는 점이다. 기존 사례 대부분은 일반 시민들도 높은 수준의 숙고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했고, 참가자들은 공론조사 과정에 대해 높은 수준의 만족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공론조사의 원래 목표가 정책에 대한 참가자들의 선호를 도출하거나 특정 주제에 대한 권고안을 제출하는 것이었으므로, 정책 방향에 대해 합의를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 정책과 법안을 직접 발의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ㅇ 해외 공론조사 사례는 공론조사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몇 가지 요소들을 시사해 준다. 

• 우선 시민의회 구성부터 추첨제 등으로 다양하게 하여 대중적 화제성과 참여 동기를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 

•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여 논의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도록 관련 쟁점에 대한 충분한 정보제공이 필요하다. 

• 논의 결과에 대한 사후적인 입법 절차가 확보되어야 공론조사에 나타난 시민들의 권고안을 효과적으로 정책으로 전환할 수 있었고 공론조사와 공론화의 효능감도 높아질 수 있다. 

• 또한 공론화 단계의 결정 사항은 법적인 구속력을 갖지 않기 때문에, 시민과 정부·의회 간의 추가적인 합의가 요청된다.

• 다만, 정책결정자가 책임을 정당화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는 제도로 잘못 운용할 경우에는 오히려 책임정치의 실종과 포퓰리즘에 빠질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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