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지역, 모두 성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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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지역, 모두 성공해야 한다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5.3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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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

현재 우리니라에서는 학령인구의 급감,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 수도권 집중화 현상의 심화 등으로 수도권-비수도권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지역대학의 쇠퇴, 지역의 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런데 지역소멸은 결국 지역주민의 삶의 질과 대한민국 전체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키는 일이기 때문에 지역을 살리는 일과 이를 위해 큰 역할을 해야 하는 지역대학을 살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교육부는 지난 2월 지역대학과 그 대학이 속한 지역의 상생 발전을 위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구축하기로 하였다. 동시에 RISE 사업을 바탕으로, 지역의 발전을 선도하고 지역 내 다른 대학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지역대학을 선정하여 집중 지원하는 ‘글로컬대학’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이는 지자체가 대학지원에 대한 책무성과 권한을 갖도록 하며, 지역-대학 간 협력으로 ‘인재양성-취·창업-정주’라는 선순환적 발전 생태계를 만들어간다는 계획이다.

RISE 사업은 올해부터 2년간 시범운영을 거쳐 성공모델을 만들고, 2025년에 전 지역으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현재 시범지역으로 7개 시‧도가 선정되어있다. 글로컬대학은 2023년 10개 내외로 시작하여 2027년까지 비수도권 모든 지역에 총 30개 내외를 지정할 계획이다. 선정되는 대학은 연 200억 원씩 5년간 총 1,000억 원을 지원받게 되는 총 3조 원 규모의 사업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부의 정책이 그 설계과정도 짧고, 대학과 지자체들이 이 정책에 대한 준비가 매우 부족한 상태에서 급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의문과 불만의 목소리들이 이어져왔다. 기존의 일부 지원사업처럼 국민 세금만 ‘공정하게 잘 나누어주고’ 마는 일이 되는 것은 아닌가? 4년 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 정책은 지속될 수 있는가? 

우리는 정부가 지역과 지역대학이 처한 심각한 상황을 상호협업으로 해결해나가게 하겠다는 ‘대의’는 존중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의 정책이 이대로 계속 추진되는 상황이라면, 우리 모두는 어떻게 해야 이 정책이 기대하는 효과를 만들어낼지에 대해 지혜를 모으는 것이 생산적일 것이다. 지자체는 그동안 부족했던 기획력을 키우고, 대학들과 실질적으로 연계 협업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역대학은 이 사업의 취지에 맞게 지자체와 함께 우수인재들을 배출하며 지역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모델을 찾아내야 한다.  

과거에 실패했던 정부의 정책 추진 방식, 대학의 대응 방식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대학과 지역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한 토양을 구축하려면, 정부, 지자체, 대학의 인식과 의지,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을 크게 바꿔야 한다. ‘insanity(미친 짓)’의 뜻은 ‘똑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면서 다른 성과를 기대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번에도 대학들이 교육부가 예시한 사업모델, 혁신방향 등에 주목하고, 교육부가 평가에서 어디에 주안점을 둘 것인지를 알아내려고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대학들이 교육부가 예시한 틀에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대학과 지역을 위해 구성원들이 함께 깊이 고민하기보다, 선정되는 일 자체에만 몰입하면 희망이 없다. 몇 년 후 이 사업이 중단되고 새로운 정책이 나오면 다시 옷을 갈아입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원사업이 오히려 내부적으로 여러 갈등과 상처, 후유증을 남기며 학교 시스템을 더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기존의 각종 정부 주도의 정책들의 추진 방식과 성과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하며 교훈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그동안 학부제, 프라임사업 등을 통해 학과 및 대학 간 통폐합, 학문 간 융복합을 추진했던 정책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또한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각 부처별로 추진했던 정책 및 사업들은 무엇을 남겼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정부와 지자체, 대학은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들은 앞으로 준비과정에서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정부가 공지한 계획에 충실하더라도, 대학과 지역의 미래를 위한 자신의 ‘영혼’을 담아야 한다. 오늘 우리는 4차 산업혁명, 기후변화, 팬데믹 등에 따라 일자리 형태, 일하는 방식 등 모든 것이 급변하는 대전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학들은 지자체와 함께 지역 인구 및 산업구조의 변화와 특성, 미래 비전 등에 부응하는 새로운 돌파구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교육부가 사업계획에서 제시한 예시는 이미 과거의 틀일 수 있으므로, 남들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도전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구성원들과 고민하며 독자적인 모델을 디자인해나가야, 정부와 사업이 바뀌어도 지속적 발전을 위한 토대라도 마련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들은 빠르게 변하는 주변을 살펴 새로운 기회도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대학들은 입학정원은 약 50만 명인데, 고교 졸업자수가 40만 명 정도라서 위기의식을 가졌다. 이제는 대학교육이 품어야 할 대상 그룹을 크게 확대해야 한다. 직무전환 교육을 비롯한 평생교육의 대상자 중에 베이비부머 세대 1,700만 명이 포함될 수 있다. 더 나아가 2015년에 1억6,000만 명이었던 전 세계 대학생 수는 2030년에 4억1,0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는 세계 고등교육시장에서의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한 교육산업 전략도 중요해졌다. 

안타깝게도 오늘의 우리 교육 현장은 ‘자율’이 사라진 것 같다. 얼마 전 한 교육기관의 현장 책임자로부터 ‘이제는 무엇이든지 시키는 대로 한다.’는 ‘자율’을 완전 포기한 듯한 말을 들었을 때, 일종의 충격이었다. 생기, 역동성, 새로운 기대를 갖기 어려운 사회라면, 이는 불행한 사회이고 미래가 위험하다. 여기에서 상상력, 창의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교육부는 대학과 지역이 스스로 시대변화를 읽으며 자유롭게 미래를 다양하게 펼쳐갈 수 있도록 ‘운동장’의 경계와 담을 없애주어야 한다. 지역과 대학별 입장에서 차별화된 특성을 읽어낼 수 있는 다양성, 맞춤형 기반의 정성적 평가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기존 제품을 개선한 제품이 아니라, 기존에 없던 제품들을 만들어낼 것을 요구했던 스티브 잡스의 변혁적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교육부와 지자체는 지역에서 이 두 큰 사업을 중심으로 지역에 ‘인재양성-취·창업-정주’라는 선순환적 과제를 풀어가려면 국가 생태계 차원에서 섬세하게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이 사업들은 몇 년간의 ‘재정지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지자체, 대학, 우수기업, 우수학생이 함께 모일 수 있어야 하는데, 필히 요구되는 여러 여건들이 언제, 시차를 따라 어떻게 조성되어 선순환적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를 고려하는 일이다. 

대학, 지자체, 정부는 더 크게, 멀리 봐야 한다. 지자체와 대학은 먼저 긴 안목을 가지고 정부의 지원과 상관없이 상호 신뢰, 협업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세워야 한다. 지자체와 대학이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며, 지역과 대학의 자율적 상생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RISE 사업, 글로컬대학 사업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큰 방향을 그려가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글로컬’ 정신으로 대학, 지역, 대한민국, 지구촌의 생존과 지속가능 발전을 모색하는 일이다. 이것이 대학과 지역 모두가 성공하는 길이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및 부회장,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과실연 명예대표, 태재학원 감사,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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