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낙관론자 스티븐 핑커에 대한 역사학계의 첫 전면적 비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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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 없는 낙관론자 스티븐 핑커에 대한 역사학계의 첫 전면적 비판서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13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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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스티븐 핑커의 역사 이론 및 폭력 이론에 대한 18가지 반박 | 필립 드와이어·마크 S. 미칼레·대니얼 로드 스메일·다그 린드스트룀·에릭 D. 웨이츠 외 13명 지음 | 김영서 옮김 | 책과함께 | 688쪽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는 인류사에서 “문명화과정에 따른 폭력성의 순화와 평화화”로 인해 폭력성이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는 낙관적 주장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사회과학 전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비판받아왔다. 이 책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는 전 세계의 권위 있는 역사학자들이 ‘폭력의 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왜곡에 바탕을 둔 핑커의 저술을 전면적으로 논박한 최초의 책이다.

스티븐 핑커는 서구 문명과 자본주의가 폭력적이고, 불평등하고, 부정의하다기보다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한다. 핑커에 따르면, 폭력은 일탈 현상이지 결코 자본주의가 가차 없이 전 지구적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징후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과거가 폭력적이었다는 데 반대하지 않으며, 오늘날의 삶이 전보다 덜 폭력적이라는 핑커의 주요 논지가 필연적으로 틀려서 그를 비평하는 게 아니다. 저자들은 핑커와는 대조적으로 폭력이 타고나는 것이라고 믿지도 않고, 인간이 생득적으로 폭력적이라고 보는 세계관을 믿지도 않는다. 그런 만큼 책은 핑커가 내세우는 계몽주의 프로젝트인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지금 다시 계몽》의 핵심인 비판적 질문과 탐구라는 최고의 정신에 따라 논의를 제시한다.

이 책에서 다양한 분야의 역사학자들은 핑커의 잘못된 기본 개념부터 원천자료에 대한 몰이해, 통계의 오용 및 편파적 해석, 반대증거의 무시, 인지적 편견, 폭력의 편협한 범주, 피해자의 고통이 아닌 공격자의 분노회로가 중심이 되는 폭력관, “온화한 상업”(곧 자본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신념, 폭력의 심리에 대한 논증의 기반인 역사적 조건의 비(非)고려, 나머지 세계에 눈감는 서구중심적 역사관에 이르기까지 핑커의 비학문성과 그에 따른 맹목적 결론에 대해 비판적 의문 제기와 합리적 반박을 제기한다.

책에는 지성의 역사, 감정의 역사, 문화사, 사회사, 의학사, 고대사, 중세사, 근현대사, 유럽사, 지역사, 형법사. 환경사, 생물학·고고학의 역사 등의 학제간 방법론이 동원되어 다방면으로 핑커의 저술을 비평하고 있지만, 핑커식 역사에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마치 사망자 수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것인 양, 과거의 모든 잔혹행위를 똑같이 취급한다는 점이다.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했던 이 잔혹행위들은 그것들의 의미를 규정하는 역사적 맥락에서 벗어나 왜곡되었고, 잔혹행위가 벌어진 시대나 그 행위를 둘러싼 문화적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폭력은, 용인된다고 여겨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따라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르게 사용되어왔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러저러한 시기는 얼마나 폭력적이었나”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시기는 어떻게 폭력적이었나”이며, 폭력은 역사성과 사회성 모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홀로코스트는 현대성의 산물로서 일시적 광기 아닌 반복가능한 현재”라고 한 통찰이 의미심장하게 공명하는 지점이다.

“선사시대의 무정부 상태”에서 “이성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다른 문명화 및 계몽주의 이후의 현대는 그러나 아직 “천사들이 발 딛기 두려워하는 세상”이다. “우리의 이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의 세계”라는 스티븐 핑커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타파하려는 이유는, 당대에 대한 근거 없는 긍정성은 앞날에 대한 방향성이나 “진보”를 결코 제시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핑커의 이야기에서 목소리와 행위주체성이 부정된 사람들은, 그가 평화와 진보의 사자(使者)로 그리는 서구의 정부들이 주도한 엄청난 폭력에 빈번히 고통받은 이들이다. 이는 권력에 의해 오랜 세월 동안 역사 서술에서 배제되어온 종속적 지위의 인간 집단에 역사 주체로서의 제자리를 되찾아주려는 당대의 역사인식과 심하게 괴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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