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청산의 실패,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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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청산의 실패,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5.0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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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일파와 반민특위, 나는 이렇게 본다 | 이강수 지음 | 보리 | 252쪽

 

제2차 대전이 끝난 뒤 세계 여러 나라들은 과거사를 청산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된 뒤 70여 년이 지났지만 친일파에 대한 심판은 단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다. ‘반민특위’ 연구 전문가인 저자 이강수가 친일파와 권력자들에 의해 좌절된 반민특위, 곧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낱낱이 짚어 본다. 더 나아가 국민을 배신하고 반민특위를 짓밟았던 친일파들이 어떻게 기득권이 되고 특권 세력으로 살아남아 오늘날 검찰 공화국의 뿌리가 되었는지 날카롭게 파헤치며 저자는 묻는다. 그래서 과연 지금, 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냐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 없이 강제 징용공 문제를 억지로 매듭지어 버린 현 정부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것처럼 연일 굴욕적인 친일 외교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1905년 나라를 빼앗겼던 을사늑약에 빗대 2023년 ‘계묘늑약’이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퍼지는 가운데 책 속에서 저자는 말한다. 이 모든 것이 해방 뒤 친일파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치 협력자’를 과감히 처형한 프랑스, ‘전쟁 범죄자’를 끝까지 추적해 처벌한 독일, 조국을 배반한 ‘한간(간첩)’을 혹독히 숙청한 중국과 달리 처벌받지 않은 대한민국의 친일파들은 오히려 승승장구 기득권이 되고 특권 세력이 되어 나라를 좀먹고 망가뜨렸다고.

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 곧 ‘민족에 반하는 행위’를 한 친일파와 그 세력을 처벌하고자 만든 특별위원회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마자 바로 만들어진 ‘반민족행위(친일파) 처벌법’에 따라 활동을 시작한 반민특위에 국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일제강점기 36년을 견뎌낸 국민 앞에서 마침내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 청산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든 국민들에 속하지 않는 소수, 거대 권력에 빌붙어 독립운동가를 억압하고 자신들의 영달만 꾀하던 친일파 무리가 남한에 들어왔던 미군정의 힘을 빌려 화려하게 부활하고 만다. 그 끝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친일 정부가 있었다.

그렇다면 반민특위는 실패했는가?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반민특위가 아예 없었다면 대한민국에 숨어 있는 친일파의 권력과 힘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반민특위는 친일파를 제대로 처벌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반민특위 활동이 있었기에 친일파 숙청의 중요성을 역사 속에서 부각시킬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친일파들에게 역사적 심판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본문에서

1910년 한일합병에서, 1945년 해방, 그리고 현재 2023년까지 한일 관계는 여전히 평행선이다. 일본은 반성은커녕 오히려 독도는 일본 땅이라 우기고, 동해에 원전 폐수를 흘려보내거나 오염된 후쿠시마 수산물을 수입하라고 뻔뻔한 요구까지 하고 있다. 이런 때에 지나간 반민특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책 속에서 담담하게 반민특위 활동을 이야기한다. 잘한 것은 잘한 대로, 실패한 것은 실패한 대로. 상해 임시정부에서부터 시작되어 대한민국 제헌국회를 거쳐 타올랐던 친일파 처벌의 의지는 반민특위에서 정점을 찍지만, 그 뒤 끈질긴 권력층의 방해로 끝내 좌절되고 만다.

그런데도 오늘날 반민특위를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럴수록 더욱 알아야 한다고 답한다. 그래서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나씩 바꿔 나가야 한다고. 그것이 ‘개혁’의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우리가 새삼 과거사 청산이나 친일파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친일파와 특권 세력들에 의해 장악된 한국 사회를 하나씩 바꾸어 건강한 시민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친일파 청산은 친일파와 특권 세력들에 의해 왜곡된 한국 사회를 개혁하는 문제이고, 더 나아가 돈과 권력이 결탁한 한국 사회, 불법과 편법이 결합된 한국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또 다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 본문에서

또한 책 속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반민특위 상식이 각 장의 끝에 배치되어 책의 이해를 돕는다. 미군정기 구석구석 숨어 있던 친일파가 누구인지, 독일을 비롯한 외국은 어떻게 나치 협력자나 민족 반역자를 청산했는지, 친일파들의 변명 논리는 무엇이며, 1949년 『국무회의록』에 담겨 있는 추악한 진실은 과연 무엇인지 같은 흥미로운 반민특위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마지막 장, “검찰의 뿌리, 그들은 누구인가”에서는 현 검찰 공화국의 뿌리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살아남은 친일파들이 어떻게 기득권이 되고 특권 세력이 되었는지, 어떻게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대를 이어 나라를 망치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친일파 청산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제이다. 이는 단순히 친일파 몇 명을 처벌하는 문제가 아니다. 친일파와 그 비호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왜곡된 한국 사회의 뿌리를 바꾸는 문제이며 친일파들와 특권 세력이 장악한 한국 사회를 건강한 시민 사회로 만드는 시민운동의 하나이다. 친일파 청산이 곧 특권 집단의 ‘카르텔’을 붕괴시키고 잘못된 특권 세력들을 이 땅에서 제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 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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