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동요 100돌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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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창작동요 100돌을 앞두고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3.05.01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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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내년(2024년)이면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 <반달>이 발표된 지 꼭 100돌이 된다. 윤극영 선생이 가사와 곡을 모두 지은 1924년작 <반달>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노래였다. 그리고 이 노래를 효시로 해서 <고향의 봄>(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설날>(윤극영 작사, 작곡), <자전거>(목일신 작사, 김대현 작곡)와 같은 초창기 창작동요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대중성 있는 노래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한국 창작동요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 잃은 슬픔을 표현하거나 조국 광복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노래한 작품이 주로 발표되었고, 광복 직후에는 <어린이날 노래>(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 <새 나라의 어린이>(윤석중 작사, 박태준 작곡) 등과 같이 새 나라에 대한 희망을 담은 곡들이 많이 나온 한편 조국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반영하는 노래들도 적지 않게 작곡되었다. 예컨대 <초록 바다>(박경종 작사, 이계석 작곡)는 작사자의 고향인 함경도 홍원 앞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이 노래에 묘사된 초록 바다는 마음대로 갈 수 없게 되어 버린 북녘 땅의 바다를 가리킨다. 그리고 “산에 산에 산에다 나무를 심자”라는 후렴구를 가진 <메아리>(유치환 작사, 김대현 작곡)는 한국 전쟁으로 황폐화된 조국 강토를 되살리자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까지 2022년 국립한글박물관 기획특별전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어린이 노래>의 전시 내용을 참조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동요가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방송사에서 기획하고 중계방송한 창작동요 경연대회 덕택이었다. 특히 1983년부터 2010년까지 개최한 MBC 창작동요제는 어린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일선 학교 교사들이 동요를 주도적으로 작곡해 발표하는 계기를 마련했고, 해마다 어린이날 또는 그 즈음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신작 동요 경연대회였던 까닭에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시기에 창작동요제를 통해 발표된 동요들 중에도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적지 않다. 1983년 제1회 MBC 창작동요제 대상(1위) 수상작이라는 역사적 영예를 안은 <새싹들이다>(좌승원 작사, 작곡)는 2절 가사에 “해님 되자 달님 되자 별님이 되자 너른 세상 불 밝힐 큰 빛이 되자 / 무지개 빛깔 아름다운 꿈 모두 우리 차지다 너와 나 함께 우리가 되어 힘차게 나가자”라는 매우 진취적인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물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밝은 미래에 바치는 진심 어린 헌사였다. 그리고 1991년 제9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금상(2위)을 수상한 <아기 염소>(이해별 작사, 이순형 작곡)는 1990년에 발발한 걸프전을 모티브로 해서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아기 염소>가 발표된 대회의 대상 수상작 <하늘나라 동화>(이강산 작사, 작곡) 역시 국민 애창곡의 반열에 오른 작품인데, 이는 작곡자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린 노래로서 소아마비를 앓았던 작곡자가 비장애인 어린이들과 함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교사에 대한 고마움이 노랫말 속에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노랫말 속에 나오는 ‘천사’와 ‘선녀’의 실제 모델은 바로 그 교사였던 것이다. 이 노래들이 품고 있는 뜻은 2020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각종 전쟁과 분쟁은 하루빨리 멈추어야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무런 장벽 없이 어우러져 살아야 하고,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에게는 앞으로 더욱 찬란한 미래가 펼쳐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3년 현재도 수많은 동요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불리고 있고, 새로운 노래들 또한 계속 창작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어린이들이 동요를 잘 부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수십 년째 되풀이되고 있지만, 알고 보면 한국만큼 동요가 활발하게 보급되고 또 새로운 창작동요들이 꾸준히 나오는 곳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는 실로 한국 음악계가 세계에 마음껏 자랑해도 좋을 문화적 자산이요 지난 한 세기의 역사를 오롯이 담은 시대의 유산이다.

그러니 1년 앞으로 다가온 한국 창작동요 100돌을 맞이해 사회와 학계 곳곳에서 한국 동요 100년사를 함께 연구하고 그 성과를 널리 공유했으면 한다. 음악학뿐만 아니라 문학, 언어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 주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07년 공저로 출간한 <우리 시대의 문체>(도서출판 월인 발행)에 “20세기 한국 창작동요의 율격”이라는 제목의 연구 성과를 발표했고, 한국인권재단에서 운영했던 <인사동 편지> 웹사이트의 ‘인사동 칼럼’에 2017년 7월 “<아기 염소>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2023년 5월 1일 현재는 <인사동 편지> 웹사이트가 사라져서, 이 칼럼 내용을 한국인권재단에서 ‘브런치’에 그대로 옮겨 실은 것만을 구글 검색 결과의 ‘저장된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에 이 칼럼이 실린 인터넷 주소를 적어 둔다.) 필자는 앞으로도 전공인 언어학의 경계를 넘어 한국 동요에 대한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많은 분들의 동참을 기대하며, 혹시 이 주제에 먼저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 계셨다면 필자도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초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 “<아기 염소>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글을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 (2023년 5월 1일 기준)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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