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근본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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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근본은 사람이다
  • 엄창섭 고려대·의과대학
  • 승인 202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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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코로나19 감염병 여파가 대학교에도 몰아치고 있다. 여러 학교가 졸업식과 입학식을 취소하였고, 개강도 미루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도 개강을 연기하였는데, 아무래도 다수의 학생이 좁은 강의실에 모이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긴 탓이리라. 학교에서는 수업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 첫 2주 동안 모든 과목의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수업에는 여러 방법이 사용된다. 가장 보편적인 것은 한 명의 교수가 여러 명의 학생들 앞에서 학습할 내용을 주제에 따라 설명하는 강의일 것이다.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 깊이 조절도 가능하고 교수와 학생이 서로 마주보고 있어 상호작용도 잘 일어나는 장점이 있는 대신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칠수도 있는 단점도 있다. 최근 의과대학에서는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PBL (문제중심학습)이라든가 TBL (소그룹기반학습)과 같은 방식이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강의 도중 시연을 하는 시연강의(demonstration lecture)라든가 먼저 주요한 학습내용을 요약하여 강의한 비디오를 보게 하고 수업시간에는 토론이나 질의응답 방식으로 진행하는 거꾸로학습법(flipped learning)과 같은 것들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에서 준비하라고 하는 온라인 수업은 강의실이 아닌 웹이나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학습을 하는 방식이다. 실제 강의를 바로 촬영하여 실시간으로 방송하는 웹캐스팅(webcasting)과 미리 녹화를 해둔 강의 동영상을 예를 들면 유튜브나 블랙보드 등과 같은 파일공유 도구를 사용하여 학습자가 볼 수 있도록 하는 소위 인터넷 강의(인강)가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 세상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4차산업혁명은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만 해도 몇 년 전부터 강의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등 동영상 콘텐츠를 개발하라고 독려해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에 대하여 학교나 교수가 기호에 따라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온라인 수업은 싫고 어쨌든 현장강의를 하겠다고 우긴다면 기존과 같이 강의실에 학생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어차피 1-2주 정도의 분량이고, 상황이 어려우니 강의를 비디오로 촬영하거나 스트리밍 강의를 시도해 봐야겠다. 카메라 앞에서 학생 없이 강의를 하는 뻘쭘함은 어쩌면 한 번만 해보면 사라질지 모르고, 혹시 실수를 해도 처음이라고 핑계를 댈 수도 있다. 강의가 기록으로 남으니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두려움은 원고를 잘 작성해서 읽으면 해결될 것이다. 게다가 내가 강의하는 것은 엄청 빠르게 변하는 분야가 아니어서 어쩌면 한 번 촬영해 놓고 몇 년간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연구에 신경쓰느라 교육에 신경쓸 여유도 별로 없는데 나름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최근의 변화 트렌드에도 맞는 것이라니 금상첨화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번 사태가 대학가의 수업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뭔가 편안하지 않다. 왜일까?

그것은 아마 교육이나 수업이 갖는 기본적인 목적, 학습목표가 아닌 교육목적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육목적은 ‘민주교육의 근본이념을 바탕으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교수 연구하는 동시에 국가와 인류사회 발전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한다’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덕체를 겸비한 인격을 연마하고, 창의적 학문 탐구와 전문적 실천능력을 배양하며, 국제사회에 기여할 개방적 지도력을 육성한다’를 교육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수업은 이런 교육목적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도구인데 수업에 사용하는 다양한 방식들에 따라 정말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필자가 처음 강의를 한 것이 1985년이었으니 올해로 35년이 되었다. 그런데 처음이나 지금이나 고민이 되는 것은 “강의를 하는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존재일까?”라는 것이다.

교육에서 결코 바뀔 수 없는 기본적인 요소가 스승과 제자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모본을 보이면서 끌고 가는 스승, 그 발자취를 따라가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제자. 그러한 끎과 끌림의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인격이 형성되고 지식이 자라나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인재로 변해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온통 콘텐츠 이야기고 교수법 이야기만 한다. 그러다보니 스승이 없다. 선생도 없다. 교수도 없다. 너도 나도 모두 지식을 파는 지식도매상 혹은 지식소매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나는 무엇을 팔고 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라는데 괜스런 걱정에 시간만 보내고 있다.


엄창섭 고려대·의과대학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해부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박사후 연수를 받았고, 고려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주임교수, 고려대 실용해부연구소 소장, 대학연구윤리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위원장, 한국한의학연구원 연구윤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교과서인 《사람조직학》, 《조직생물학》을 비롯해 《미래가 보인다-글로벌 미래 2030》, 《전략적 미래예측 방법론 Bible》등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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