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경쟁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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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경쟁력인가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4.2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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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대학 구조조정을 하면서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에서 국문과를 없앤다. 영어는 경쟁력이라는 이유에서, 영문과는 없애지 않고 강화한다. 이래도 되는가?

영어가 경쟁력이라면, 영어를 더 잘하는 필리핀이 한국보다 앞서야 한다. 한국이 영어의 본국인 영미보다 물건을 더 잘 만드는 것도 있을 수 없다. 한국이 필리핀보다 앞선 나라이고, 영국이나 미국보다 물건을 더 잘 만드는 것은 영어 아닌 다른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많은 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것은 영어를 잘하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영어를 배우러 자기 나라 한국학과에 몰려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열망이 뜨거운 것이 잘 알려진 바와 같다. 그 이유는 한국어가 매력이 특별한 언어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어를 통로로 삼아 한국의 경쟁력을 배우려고 한다. 

한국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고 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한국에서는 버리는 한국어를 외국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괴이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사람은 없어진 집에서 도깨비들이 춤추는 꼴이다. 지금은 국문과를 퇴출시키고,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과는 육성하려고 한다. 나무의 뿌리는 없애고, 옆으로 뻗은 가지 하나만 잘 살리려고 하는 짓이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사태는 대학 강의를 영어로 하라는 것이다. 영문학은 영어로 강의하면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영미에서 수입하는 학문도 번역의 번거로움을 피해 우선 영어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창조하는 학문은 영어로 옮기기 어렵고, 무리하면 창조의 의의가 파괴되어 강의를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한국문학을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한국어 실력이 모자라는 영어권의 대학에서 부득이 택하는 편법이다. 한국의 대학이 그 수준으로 후퇴하라고 하니, 누가 들어도 비웃을 일이다.

미국에 이민 간 사람들에게서 있는 일을 든다. 어느 부부는 한국에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가서 영어를 잘한다고 자부한다. 그 자부심을 자식들에게 물리려고 집에서도 영어만 쓴다. 그렇지만 영문과 공부가 영어 사용국에서는 경쟁력이 전연 없어, 안정된 직업을 얻지 못하고 방황한다. 다른 부부는 영문과와는 거리가 먼 공부를 하고 가서, 영어가 서툴러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 손을 움직이는 기술로 살아가는 것을 좋은 대안으로 삼는다. 집에서 한국어만 쓰니, 자식들이 자연스럽게 배운다. 

양쪽의 자식은 영어를 다 잘하고 차이가 없다. 영어만 아는 것과 영어와 한국어를 다 아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영어만 알아서는 미국에서 알아주지 않는다. 한국어도 안다는 것은 경쟁력이 되어 좋은 직장을 얻는다. 한국과 관련을 가진 업체의 요직을 얻은 것을 자주 본다. 미국 정부는 한국계 미국인이 한국어를 잊지 않아야 미국의 국익 증진에 기여한다고 한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중간 결론은 말을 하나만 알지 않고 둘 이상 알면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둘 이상의 언어 가운데 하나는 모국어이고 다른 것은 외국어이다. 누구든지 자기 모국어는 창조에 쓰고 외국어는 소통에 써서, 모국어가 경쟁력을 더 가진다. 한국인에게는 한국어가, 미국인에게는 영어가 외국어보다 더 소중하다. 미국에서는 영문과를 대단하게 여기고 특별하게 육성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을 한국에서는 국문과를 두고 해야 한다.

할 말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고, 말을 하는 사람은 할 말이 없다. 영어로 진행하는 비교문학 국제학술회의에 자주 참석하면서 내가 탄식하는 말이다. 영문학자는 말을 하지만 할 말이 없다. 영어가 모국어인 학자들은 모르고 있는 것을 알아내 발표하지 못한다. 국문학에 대한 초보 이해를 남들에게 소개하면서, 국문학자가 곁에 없기를 바란다. 국문학자인 나는 할 말이 있으나 말을 하지 못하는 쪽이어서, 말을 하려고 노력한다. 말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할 말을 장만하는 쪽보다 쉬워 진전이 뚜렷하다. 영어로 책을 둘 내고, 논문을 여러 편 썼다. 그러나 모두 한국어 원본의 서투른 모사이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한국어가 경쟁력이다. 한국어의 경쟁력은 국문학에 축척된 민족의 창조력에 근거를 둔다. 나무의 뿌리는 없애고 가지만 살리려고 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뿌리의 창조력으로 제작한 업적을 외부에 알리려면, 널리 통용되는 외국어로 선전 책자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한국어로 이루어진 창조물을 외국어로 온전하게 수출할 수는 없다. 말을 바꾸면 진가가 손상된다. 한국어를 아는 외국인이 원본 그대로 수입해가야 고가로 거래할 수 있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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