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우리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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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우리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 승인 2023.04.2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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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경 칼럼]

2021년 8월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제목의 책이 단숨에 12쇄를 찍는 기염을 토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은 코로나19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얻은 유명세로 G7 정상회의의 ‘귀빈석’에 앉는 전대미문의 국제적 위상을 향유하고 있었다. 팬데믹에 따른 극심한 경제침체기임에도 한국경제는 나름 선방했고 한국 민주주의는 ‘완전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지표가 나왔다. 방탄소년단의 ‘K팝’이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으며 ‘기생충’과 ‘미나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이어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무엇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승격시킨 것은 정말 가슴 벅찬 소식이었고 그 모든 것의 화룡점정이었다. 

지금 여기저기서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는 한숨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 좋았던 기록들이 일거에 다 없어지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실제 지표상의 징후가 좋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우선 지난 2년 새 급감한 대중 수출로 인해 국가의 경제지표 대부분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지수가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할만한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갑자기 국제무대의 다자주의 원칙을 버리고 ‘최소주의(minimalist) 국지 노선’으로 선회한 듯 ‘한미일’ 공조만 강조되고 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조공’이나 ‘구걸’이 대수냐 하겠지만 아무 실익도 없이 헛발질만 한다면 그건 반역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잇따라 심각한 수준의 공개 경고를 하고 나섰다. 지금 한국 외교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작금의 상황은 윤석열 정권 출범이라는 사건과 따로 떼어 설명할 길이 없다. 우선, 대한민국의 ‘대통령궁’인 청와대는 대외적으로 백악관, 자금성, 엘리제궁, 버킹엄궁 등과 비견되는 국가의 상징 아이콘이었고 무엇보다 현대 한국정치의 생생한 역사적 현장이었다. 그런 소중한 상징성과 역사성이 하루아침에 말살되고 ‘용산 대통령실’이라는 초라한 이름의 집무실이 급조되는 일련의 과정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대통령은 내각과 주요 공직은 물론 당직까지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대체하는 이른바 ‘측근 과두제’를 실시함으로써 민심과 멀어지는 자충수를 두었다. 해외순방 때마다 반복되는 크고 작은 말실수와 어설픈 거짓 해명은 비단 국제적 망신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잠재성이 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친미·친일·반중·반러·반북 ‘신냉전’ 노선 편승에 따른 막대한 대중(對中) 무역 적자와 북방외교의 붕괴다. 

현재 대한민국 입법부도 행정부 못지않게 엉망진창이다. 의원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의 핵심은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다. 특히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건강한 긴장관계 유지는 국익 증진과 민의 수호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국회는 양대 정당이 각기 내홍에 빠진 탓에 사실상 ‘식물국회’나 다름없다. 지난 2년간 벌여온 국민의힘의 지리한 ‘친윤-반윤’ 주도권 싸움은 결국 최근 당 대표 선거를 통해 친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당의 수뇌부가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 온갖 꼼수와 변칙을 동원하여 ‘친윤’ 후보를 집중 지원한 결과였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이처럼 현직 대통령과 일체화하면서 행정부 견제를 야당 몫으로 떠넘기는 것은 ‘위헌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원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제 역할을 다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는, 제 아무리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 해도, 자신의 정치생명 유지를 위해 안면몰수하고 당권에 도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당에 뼈아픈 대선 패배를 안긴 사람이 염치도 없이 당권을 거머쥐고 자신의 ‘사법 리스크’ 관리에 당력을 집중하는 모양새니 하는 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돈 봉투’ 살포 의혹까지 불거졌다. 2019년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송영길 대표 진영에서 일부 의원을 상대로 일종의 ‘매표’ 행위를 한 사실이 뒤늦게 폭로된 것이다. 대선 전부터 당이 ‘친명-반명’으로 갈라져 좀처럼 화합을 이루지 못해왔는데 이를 계기로 내홍이 분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쯤 되면 ‘도긴개긴’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고, 대한민국 국회가 왜 국민으로부터 그렇게 신뢰받지 못하는지가 분명해진다.

금일 윤 대통령이 지난 1년 사이 ‘여왕’ 놀음에 제대로 맛 들인 영부인과 함께 ‘여유로운’ 5박 7일 일정으로 미국 ‘국빈’ 방문길에 오른다. 역시나 이번에도 외교 세부 일정과 의제는 안 보이고 윤 대통령 개인의 ‘의회 연설’과 ‘하버드대’ 강연 계획만 대서특필되고 있다. 이는 어쩌면 지난해 방한했던 바이든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윤 대통령 부부의 ‘SWOT’는 물론 그들의 ‘데카당트’한 사적 취향까지 속속들이 파악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국빈 방문에 앞서 미국에 간 김태효 국가안보실 차장이 대통령 부부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전달하여 얻어낸 사전 협상의 결과일 것이다. 이번에 또 어떤 ‘실언’과 그것의 만회용 ‘임기응변’으로 인해 얼마만큼의 국고가 탕진될지 벌써부터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들도 제 몫을 못 하니 애꿎은 우리 국민의 속이 타들어 간다. 나라 전체가 흡사 칠흑 같은 어둠의 동굴에 갇히기라도 한 듯 숨이 턱턱 막히고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굴을 박차고 나가 청량한 하늘을 보고 맑은 공기도 마시고 싶지만 입구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정말 답답하고 죽을 노릇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 누가 이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함께 견뎌내야 할 이 총체적 난국이 형편없는 사람들에게 투표한 과거 우리 각자의 조그만 날갯짓이 촉발한 ‘나비 효과’의 총합이라는 사실이 몹시 뼈아플 뿐이다. 주여,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서유경 논설위원/경희사이버대·정치철학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학과장 겸 문화창조대학원 미래시민리더십·거버넌스 전공 주임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주제는 한나 아렌트 정치미학, 시민정치철학,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민주주의 패러다임, 한국의 시민사회와 시민운동 등이다. 저서로 The Political Aesthetics of Hannah Arendt(2017), 『한국 민주주의의 새 길: 직접민주주의와 숙의의 제도화』(공저, 2022), 『문화의 이동과 이동하는 권리』(공저, 2022), 역서로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와 하이데거』, 『과거와 미래 사이』 , 『책임과 판단』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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