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재성찰: 21세기 자유주의의 급진화에 대한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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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재성찰: 21세기 자유주의의 급진화에 대한 경계
  • 이상원 인천대학교·정치사상
  • 승인 2023.04.2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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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자유주의와 그 불만』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이상원 옮김, arte, 264쪽, 2023.03)

 

프랜시스 후쿠야마(1952~)는 미국의 정치학자이다. 1990년대 초반 냉전의 종식과 함께 찾아온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역사적 승리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한 저서인 『역사의 종말』을 출간한 이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정치이론가로서 자유주의의 현실적 의미를 숙고한 연구결과를 대중에게 활발히 알리고 있는 저술가이기도 하다. 후쿠야마는 이 책 『자유주의와 그 불만(Liberalism and Its Discontents)』에서 자유주의의 근본적 문제들을 재검토한다. 그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와 함께, 자유주의가 여러 불만과 반대를 생성해 온 현실적 원인들을 분석한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학문적 통찰을 바탕으로, 이제 그는 단순히 자유민주주의라는 목표점에 대한 강조에서 벗어나, 자유주의가 하나의 정부 형태로서 추구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의 원천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후쿠야마의 접근법은 더욱 근본적인 관점에서 자유주의 정체가 기초한 기본 원칙들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분석은 단지 자유주의의 장점을 설파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유주의 정체가 보여주는 근본적 한계점들을 드러내고 이를 신중하게 다루기 위한 방법들을 조명한다. 그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이론적 토대와 함께, 자유주의가 여러 불만과 반대를 생성해 온 현실적 원인들을 분석한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학문적 통찰을 바탕으로, 이제 그는 단순히 자유민주주의라는 목표점에 대한 강조에서 벗어나, 자유주의가 하나의 정부 형태로서 추구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의 원천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후쿠야마에 따르면 오늘날 자유주의는 우파 포퓰리스트들과 좌파 진보주의자들 모두에게 공격받고 있다. 그는 이들의 비판에 어느 정도 합당한 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현대 자유주의 사회는 모든 인간 존재를 동등하게 대우하지 못하고 자유주의의 고전적 이상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좌·우파 세력의 비판은 자유주의 자체가 딛고 서 있는 근본적 원칙들(헌법에 기초한 보편적 평등, 진리를 포착하기 위한 의사 표현의 자유,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믿음 등)을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좌파와 우파 모두에게 자유주의가 불편한 이유는 자유주의 교리의 근본적 취약성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불만은 자유주의 원칙 그 자체가 아니라, 지난 몇 세대 동안 자유주의의 근본적 교리들이 변화해 온 방식에서 비롯한다. 

우선 오늘날 우파가 지지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는 소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로 변질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불평등과 치명적인 경제 위기를 가져와 많은 서민에게 아픔을 주었다. 이제 대다수 사람들은 사유재산권 보호를 바탕으로 시장경제의 이데올로기적 기초를 구성하는 자유주의의 특성을 단지 자본주의와 연계된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긴다. 이에 좌파 진보주의 측에서는 부와 권력의 광범위한 재분배를 강조하는 동시에, 개인을 넘어 집단으로 자율성의 급진적 확장을 시도한다. 그들은 인종, 젠더 같은 고정된 범주의 정체성에 기초한 평등과 집단적 권리의 인정을 요구한다. 한편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취약계층에 대한 평등한 권리 부여를 기존 체제와 전통적 믿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며, 자신들이 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침해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후쿠야마는 자유주의의 기본 원칙은 계층과 집단에 따른 구별 없이 모든 사람의 개인적 권리를 보호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모두가 느끼는 불만은 자유주의의 본질에 연관되어 있다기보다는, 자유주의의 고전적 아이디어들이 구현되는 과정에서 편협한 방향으로 왜곡되고 극단적으로 치우친 현상들과 관련 있다. 따라서 그는 자유주의를 향한 불만에 대처하는 길은 자유주의 그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급진적 움직임을 자제시키는 데에 있다고 본다.

후쿠야마의 시각은 그가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정당화한 이후, 자유주의에 대한 지나친 편견 속에서 정치현상을 해석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자유주의와 그 불만』도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를 극단적 비판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그의 이론적 관점이 잘 묻어나는 글이다. 물론 이 책을 성급하게 읽은 독자는 후쿠야마가 기존의 자유주의 편향적 태도를 여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신중히 읽은 독자라면, 그의 연구가 단지 자유주의를 하나의 절대적 이데올로기로서 지켜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장점을 살려내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자유주의는 그 자체로 절대 완벽한 교리가 아님을 우선 자각할 필요가 있다. 후쿠야마는 자유주의의 한계에 대한 통찰 속에서, 이것이 우파와 좌파 모두에 의해 왜곡되고 타락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무엇보다 자유주의에 대해 보다 깊이 있고 신중한 철학적 접근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후쿠야마의 궁극적 메시지는 책의 후반부에 잘 드러난다. 그는 자유주의 사회를 현실적으로 지탱하는 원칙의 핵심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내려오는 철학적 통찰로서 “아무것도 넘치지 않도록(μηδεν αγαν; mēden agan)”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하는 ‘절제 (σοφροσυνη; sophrosynē)’의 원칙임을 강조한다. 자유주의 사회에서 절제의 윤리는 단순히 당위적 교훈이 아닌 현실적 생존의 문제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주의의 실제적 추구 과정에서 이 절제에 대한 강조가 무시되어 왔다는 것이다. 

후쿠야마에게 참된 생존 방식은 삶의 특정한 지향점과 노력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삶은 너무 완벽한 성과를 지나치게 추구하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는 ‘자기 제약(self-restraint)’의 실행 능력에 달려 있다. 따라서 자유주의 정체가 인간이 추구하는 최선의 공존방식이자 궁극적 목표점이라면, 절제는 자유주의 정체의 실현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모든 개인과 집단의 보편적인 생존 원리이다. 따라서 자유주의가 나아갈 방향은 단순히 경제적 번영 혹은 정체성 정치의 양극단이 아니라, 이 모두를 지속가능하게 하기 위해 “아무것도 넘치지 않도록” 하는 시민들의 보편적인 노력일 것이다. 후쿠야마는 이 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서, 성취는 ‘한계의 받아들임(acceptance of limits)’에서 나온다. 

절제는 한계에 대한 신중한 인식에서 나온다. 따라서 후쿠야마는 이 한계를 함부로 규정 짓지 않는다.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시민 각자가 일상에서 사유와 대화를 통해 자유롭게 논의하면서 생각할 부분이다. 다만 후쿠야마의 시각에서 이러한 자유로운 철학적 고민과 소통을 진정으로 가능하게 하는 정체는, 오직 자유민주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제기하는 모든 주장은 단순히 마침표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정치공동체와 삶의 방향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진다. 일상에서 그 궁극적 해답을 찾는 시도는, 결국 독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이상원 인천대학교·정치사상

인천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클레어몬트대학원 정치학 박사. 정치적 존재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현대사상에서 나타나는 고전정치철학의 진리와 존재 문제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근대성의 끝에서 마주한 정치적 존재의 문제: 스트라우스의 하이데거 실존주의 해석과 새로운 존재물음의 가능성」, 「인민의 존재, 포퓰리즘 그리고 민주주의의 정치윤리」, 「Democracy, Faction and Diversity: An Analysis of the Existential Ground of Democratic Republic Reflected in The Federalist Papers」, 「진리 경험의 역동성과 긴장성: 하이데거의 『파르메니데스』에 나타난 플라톤 해석의 정치적 함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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