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와 이해충돌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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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와 이해충돌 방지
  • 최영종 가톨릭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3.04.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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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메시아’(messiah)는 ‘신의 메신저’(messenger of God)로서 고난에 처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임명한 자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주로 쓰는 용어지만, 세속 정치와 관련해서도 수많은 자칭 타칭의 메시아가 등장하였다. 하늘에나 있을 법한 천국을 이 땅위에 세우려는 시도들의 물고를 튼 사람은 12세기 이탈리아의 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요아킴 피오레(Joachim of Fiore)이다. 그는 성경의 구약과 신약에 해당하는 ‘성부의 시대’와 ‘성자의 시대’를 뒤이어 ‘성령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예언 겸 역사발전의 단계설을 주장하였다. 성령의 시대는 하나님의 뜻의 완성을 의미하며, 정의 평화 자유 사랑이 충만한 세상이다. 이렇게 하여 현실에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다가올 시대에 대한 희망이 잉태되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자칭 메시아들이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을 목표로 한 크고 작은 민중 봉기가 줄을 이어 일어났다. 또한 성령은 누구의 매개 없이 인간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보았기에, 교회와 사제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측면도 있었다. 종국에는 종교개혁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들은 전통과 종교에서 해방되고, ‘이성’이란 능력을 장착해서 신이나 사제의 도움 없이도 사리분별이 가능하고 물질적 풍요마저도 향유할 수 있는 존재로 부상하였다. 그렇지만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은 오히려 더욱 강해져만 갔다. 자본주의가 파괴시킨 전통사회에 대한 향수와 노동을 팔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냉혹한 세상에 대한 좌절과 분노가 폭발할 지경에 다다른 것이었다. 이런 현실에 부응해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라는 신의 메시지를 받은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은 물론이고 신 자체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들이 등장해서 혁명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또한 계급적으로 분열적인 사회주의를 혐오하는 파시스트들이 국가사회주의란 이름하에 모두가 단결해서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자는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그러나 현실에서 유토피아를 약속한 메시아는 많았지만 모두 ‘디스토피아’로 끝나고 말았다.

메시아의 비극은 메시아가 하늘의 메시지만 전달하고 원위치로 돌아갔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놓고 능력 있는 자를 공정하게 선정해서 국정을 맡겼더라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메시아들은 예외 없이 자기 맘대로 세상을 바꾸고, 몸소 권력을 장악해서, 직접 나라를 운영하는 선택을 하였다. 완벽한 이해관계 상충이었다. 하늘의 뜻이라면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경기 규칙을 바꾸고 직접 경기에 참가해서 승리를 꿰어 찬 셈이다. 증명하기 어려운 하늘의 뜻은 편하게 왜곡하고, 자기 뜻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임의로 처단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국민들을 수단처럼 부리기만 했던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메시아가 세상을 의미 있게 변화시킨 사례는 많지 않다. 그러나 성공 사례에서 보이는 공통점은 메시아가 메시지 전달이란 역할에만 충실했을 경우이다. 모세가 야훼의 뜻을 전달하고 실천하는 데 충실했지만, 만일 이스라엘을 세워서 직접 통치했더라면 이상적인 나라를 만들 수 있었을까? 예수가 사회변혁에 성공하고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해관계 충돌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기게 되었을 것이다. 계몽주의적 이상의 메신저였던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에서 처형되지 않고 수완을 더 발휘해서 후세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처럼 장기집권을 했더라면 과연 프랑스 혁명이 인류사회 발전의 이정표가 될 수 있었을까? 전체주의적인 독재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에 대한 이해충돌 방지 조치를 막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미국 혁명이 위대한 것은 메시아로 자가발전을 할 수 있었던 조지 워싱턴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탐하지 않고 권력분립이란 족쇄를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신원 확인이 안 되는 메시아들이 진위가 불분명한 하늘의 메시지를 갖고 등장해서 맹활약 중이다. 머지않아 모두가 구원받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다 죽을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할 것 같은 분위기이다. 노력 없이 운 좋게 구원받으려는 마음이 가짜 메시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스스로 깨어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면서 대통령 하나 잘 뽑아서 일거에 좋은 나라 만들겠다는 요행심이 정치판에 가짜 메시아를 양산하고 있다. 

이해관계 충돌이 만연하는 사회가 바로 현재 한국이다. 지금도 우리 국회에서는 자기들이 따라야 할 선거 규칙을 국회의원 스스로가 만들어대는 엄연한 이해관계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자기들에게 불리한 규칙은 아예 만들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이런 이유로 민주화 세력이 비민주적이 되고, 양심 세력이 비 양심세력으로 변하고, 정의가 불의로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 바 있다. 시민들의 염원으로 이루어낸 촛불혁명이 조기에 깃발을 내린 것 역시 이익충돌 방지에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만들라는 국민들의 메시지를 받들어 감동적인 축제를 통해서 멋진 정치 개혁을 이끌어내고, 스스로는 구질구질한 정치에 발담구지 않고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그런 쿨한 메시아를 마음속에 그려본다.


최영종 가톨릭대학교·정치학

• 가톨릭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 미국 워싱턴대학교 정치학 박사 
• 한국국제정치학회 국제정치논총 편집위원장
• 저서 『혼돈의 글로벌시대, 공동체주의를 말하다』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22)
• 현재 『누미노제 정치와 공동체 변혁 그리고 대한민국』 (가칭)이란 책을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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