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운가? - 한국 가족 문화의 그림자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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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의 세계로부터 자유로운가? - 한국 가족 문화의 그림자 들여다보기
  • 전주희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 승인 2023.04.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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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테제_ 『한국의 옛이야기에 나타난 가족 관계와 역할 정체성』 (전주희 지음, 역락, 284쪽, 2023.02)

 

누구나 자유를 좋아한다. 넓게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부터 사소하게는 카페에서 마실 차를 고르는 행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지고 내가 원하는 것을 노력 여하에 따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미국의 독립혁명을 이끈 페트릭 헨리(Patrick Henry, 1736-1799)는 영국의 압제를 향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우리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억압에는 쉽게 감지하고 저항한다. 그래서 국가 정책이나 내가 속한 조직의 시스템이 나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변하면 불쾌감을 느낀다. 직장 상사가 나의 업무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하고, 부모님이 내 생활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지옥이 된다.
  
그러나 정작 내가 속한 집단이 오랫동안 나에게 미쳐온 압력에는 무지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아는가?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나는 1남 2녀, 곧 막내아들 바로 위에 둘째 딸이다. 남아선호가 강했던 우리 집에서 나는 별다른 기대를 받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첫째인 언니와 남동생에 비해 미래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 자유로웠다. 반면에 장녀인 언니와 아들인 남동생이 고등학교, 대학을 진학할 때마다 우리 집은 온갖 조언과 간섭이 난무하였다. 결국 언니와 남동생은 부모님이 원하는 진로를 선택했다. 그 당시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지속적으로 부여했던 그들의 미래상은 비록 그들이 원하던 모습은 아니었을지언정 당장에는 받아들이기가 더 편했을 것이다. 가정 안에서 요구되고 기대되어왔던 나의 삶과 역할은 암묵적으로 나를 그 모습에 가깝게 행동하도록 만든다. 

『한국의 옛이야기에 나타난 가족 관계와 역할 정체성』은 우리가 일상에서는 뚜렷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나의 정체성, 특별히 가족 관계 안에서 수행하는 ‘역할’과 서로에 대한 ‘인식’을 재조명한다. 부부, 처가와 사위, 시집과 며느리, 부모와 자식은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이라면 보편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관계들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인권이나 남녀평등과 같은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고 그래서 결혼 문화와 가족 문화도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하여 갈등을 겪는다. 이 책은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문화에서 가족 구성원 각자의 위치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다룬다. 그러한 인식은 이미 우리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초점은 우리가 왜 그렇게 인식해왔는지, 그럼으로써 상호 관계가 어떠한 방식으로 고착되고 유지되어왔는지를 밝히는 데 두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700여 편의 옛날이야기와 전통적인 가족 문화에 관한 문제의식은 한국인들이 알고도 모른 척 넘겨왔거나 당연하듯이 받아들였던 불편한 상황들의 근거를 보여준다. 

1장 <선녀와 나무꾼> – 전통 혼인제도(시집살이혼)에서 부부생활은 남편과 아내에게 각각 어떻게 다르게 기억되는가? 선녀처럼 가족과 고향을 떠나 시집에서 살아야 하는 여자와 혼인해도 나무꾼처럼 결코 터전을 떠나지 않는 남자는 입장의 차이를 보인다. 이들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원가정(뿌리 가정)과 구성가정(혼인 가정) 사이에서 저마다 ‘분리’의 문제와 분투한다. 전통사회에서 혼인은 시집온 여성에게 자식들만 데리고 떠나고 싶을 정도의 고난을, 처자식을 돌보러 가려는 남성에게는 뜨끈한 죽이라도 먹고 가라는 어머니를 결코 떠나지 못하는 가장의 딜레마를 남겨왔다. 
  

                       혼인과 동시에 '사위노릇' 하기는 남자가 취할 수 있는 최초의 권력이었다.

2장 <사위 설화> - 장인 장모에게 사위는 반자식이기도 하지만 개자식(?)이기도 하다. 한국의 옛이야기에서 사위는 ‘처가를 돕는 사위’, ‘처가를 욕보이는 사위’, ‘처가의 덕을 보는 사위’ 세 유형으로 나타난다.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처가를 돕는 사위’가 있기는 하나 많지 않다. 흥미로운 점은 나머지 두 유형이 주를 이룬다는 것이고, 더 당황스러운 점은 ‘처가를 욕보이면서 처가 덕을 보는 사위’가 흔하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딸을 데리고 갔으니 사위가 도둑질을 하든 사기를 치든 그가 가져간 이익은 딸의 것이므로 어쩔 수가 없다고 하자.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사위라는 지위가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남자가 혼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초의 권력이었다는 사실이다. 이야기들을 보면 남자들은 대체로 활쏘기(남성과 무예의 상징)를 잘해서, 혹은 출세(남자의 사회생활)의 바탕이 되는 글솜씨가 뛰어나서, 심지어 처가를 속이는 거짓말을 잘해서 혼인을 하고 사위가 된다. 남자들의 성인식이자 통과 의례로서 ‘사위 되기’가 하나의 성장 서사로서 위치함을 알 수 있다. ‘바보 사위’ 이야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가부장제 사회로 진입할 수 없는 주변인, 곧 실패한 남자의 성장 서사로 볼 수 있다. 
  
3장 <며느리 설화> - ‘자고로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는 옛말은 며느리 설화를 보면 진실이다. 수많은 이야기에서 며느리는 ‘해결사’로 등장한다. 며느리는 부모의 병을 고치고, 집안의 재물을 불리고, 무능한 남편을 출세시키며, 자신을 괴롭히는 시부모를 제압하기도 한다. 심지어 시집 식구들이 자신의 외모를 탐탁치 않게 여기자 도술을 부려 미인으로 변신하기까지 한다. 며느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상황의 어려움과 해결 방식의 비현실성으로 인하여 비극과 통쾌를 넘나든다. 

분명한 것은 시집의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며느리는 ‘할 수 있다’와 ‘해야 한다’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한 능력의 발휘는 텍스트 내부에서든 외부에서든 필연적으로 피로감을 유발한다. 나는 집안의 새로운 식구인 며느리를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하나의 ‘도구’로 설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가정의 행복은 가족 구성원 각자의 몫을 모아서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고 지향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어떤 역할을 잘 수행함으로써 인정받으려고 하기 전에 자신의 존재 자체로도 인정받을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4장 <효행 설화> - 편찮으신 부모를 위해 한여름에 홍시를 구하고, 한겨울에 죽순을 찾는 효자들. 어머니의 병환을 고치려고 어린 아들을 가마솥에 삶아 어머니를 봉양하는 효자 부부. 특히 후자의 경우는 전통사회의 관점으로나 지금으로나 과히 충격적이며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전승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하다. 우리 스스로의 문화적 분위기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이 이야기가 왜 효행 설화로 전해져왔을까? 
  

아들을 신의 희생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은 한국의 효행설화의 자녀희생 모티프를 공유한다. 카라바조, 이삭의 희생, 1603,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이러한 이야기를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류사에서 발견되는 영아 살해(infantcide)와 희생 제의에 관한 인류학적 고찰이 필요하다. 자녀를 희생하여 부모의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는 마치 신에게 제의를 바쳐 자신이 원하는 바(풍요와 같은 축복)를 얻고자 했던 농경사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인류는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풍요와 생산을 관장하는 존재인 신을 상정하였다. 사람들은 땅에서 수확하고 가축을 키우면서 그러한 번성이 신의 가호라고 믿었고, 감사의 표시로, 한편으로는 투자의 의미로 신에게 가축의 피와 살을 바쳤다. 

중요한 점은 단지 살아 있는 동물, 예를 들면 야생 동물을 제물로 바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이 키운 가축을 제물로 바쳤다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효자가 다른 아이가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아이로 부모를 살린 것처럼 말이다. 희생은 본래 신의 축복을 갚을 수 없는 인간의 부채 의식에서 기인한 지속적인 ‘증여’ 행위이다. 이러한 논리로 본다면, 효행 설화에서 부모를 살리기 위해 자녀를 죽이는 행위는 한국인이 부모의 은혜를 결코 갚을 수 없는 신의 가호와 같은 것으로 인식하며 수행하는 하나의 희생 제의이다. (남겨진 의문: 한국인은 왜 부모의 은혜를 갚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4장 후반에 제시되므로 책을 참고하시라.)
  
5장은 ‘부모 사랑’의 서사에서 ‘부모 되기’의 서사를 만들고 있는 현대 한국 사회의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다룬다. 효행 설화는 넘쳐나도 부모 설화는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즈음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부모님의 사랑을 다루는 담론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노래(g.o.d의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영화(친정엄마), 드라마(엄마의 바다, 부모님 전상서 등)와 같은 대중문화에서부터 문학인 소설(가시고기, 아버지 등)에 이르기까지, 어렸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모의 사랑을 자녀 세대는 슬픈 파토스로 그려내기 시작했다. 

 

                 자녀는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의 사랑을 알게 된다.(신한평, 자모육아, 간송미술관 소장)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꽤 오래 전부터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홍수처럼 넘치는 육아 담론과 육아 솔루션의 스타 오은영 박사의 등장은 지금 이러한 시류를 잘 반영한다. 그야말로 한국 사회는 ‘부모 사랑’의 서사에서 ‘부모 되기’의 서사로 이행해 온 것이다. ‘부모 되기’의 서사는 지금의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부모에게서 경험하지 못한 양육 방식을 새로 배우고 아이와 나의 자존감을 모두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제 건강한 부모 자녀의 관계는 부채 의식에 바탕한 ‘효’의 영역에서 정서적인 친밀감과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친’의 패러다임으로 향하고 있다. 
  
코로나가 불러온 팬데믹이 비대면 사회를 초래했다고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결코 피할 수 없었던 관계는 가정이다. 사실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속하고, 죽을 때까지 떠날 수 없는 이 작은 사회는 우리의 많은 것들을 통제한다. 우리 가족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인식하냐에 따라 나의 삶은 물론 내가 앞으로 만나고 만들어 나갈 모든 세계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 
  
혹자는 이 책에서 다룬 옛이야기를 보면서 뭐 그리 대단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니 그냥 즐기시길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이야기가 된 이상 그것은 하나의 반영이다. 이야기를 곱씹고 의미를 찾는 것은 저자인 내가 하였으니, 독자들은 그저 옛이야기들을 재밌게 읽어만 주셔도 이 책의 소임은 어느 정도 이룬 것이다. 


전주희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인문사회융합연구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교수.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부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으며, 제주도 무속신화를 공부하면서 구술 담화(Oral tradition)와 인류학, 종교학, 민속학, 기호학을 연결하는 학제적 관점을 발전시켜왔다. 다양한 집단과 문화에서 전승되는 옛이야기들을 통해 집단의 사고방식과 의식 체계를 연구하고 있으며 인간이 창조할 수 있는 유형ㆍ무형의 예술이 지닐 수 있는 의미를 탐구한다. 저서로 『이론으로 서사읽기』(공저, 역락, 2020), 『한국민속신앙사전-무속신앙편』(공저, 국립민속박물관, 200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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