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즘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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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즘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얼굴
  • 손주경 고려대학교·불어불문학
  • 승인 2023.04.0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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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_ 『마키아벨리, 가면 뒤의 얼굴』 (파트리크 부슈롱 지음, 손주경 옮김,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206쪽, 2023.02)

 

1513년 7월에서 10월 사이에 작성되고 사망한 지 5년이 지나 출간된 『군주론』(1532)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명사와 “마키아벨리적”이라는 형용사를 모두 소유하게 된 특별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윤리라는 추상적 원칙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한 치의 거리낌도 없이 거짓, 술수, 기만과 같은 악덕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외쳐대는 선동가를 발견했으며, 또한 그것을 그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약속을 지키고 정직하며 술수를 쓰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마땅히 칭송받을 일이라는 것을 어떤 군주라도 알고 있다”, “자비롭고 충직하며 인간적이고 경건하며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군주에게는 언제나 좋은 것이다.” 그리고 . . . “군주는 가능하다면 선(善)이라는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그로부터 듣게 된다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Portrait of Niccolò Machiavelli (Firenze, 1469–1527) - Santi di Tito<br>
Portrait of Niccolò Machiavelli (Firenze, 1469–1527) - Santi di Tito

음흉한 살쾡이의 얼굴을 닮은 마키아벨리를 그린 산티 디 티토(Santi di Tito)의 초상화가 보여주는 얼굴 뒤에는 현실에 가득한 갈등의 근원을 찾아 나선 지식인의 얼굴이 있다. 그에게 덧씌워진 마키아벨리즘이라는 가면 뒤에는 고전을 통해서 현재를 읽으려 했던 인문주의자의 얼굴, 국가 간의 난해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했던 외교관의 얼굴, 현재의 위험을 미리 감지하는 통찰력을 지닌 사상가의 얼굴 그리고 여전히 사랑을 꿈꾸었던 사내의 얼굴이 숨어있다.


갈등에서 실제적 진실을 발견하라

외세로부터 이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위기상황”이라는 문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마키아벨리에게 갈등은 언제나 화두였다. 일상의 다양한 일들 속에서 사람들이 왜 불만을 달고 사는지, 갈등이 왜 인간의 삶에 자리를 꿰차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그는 찾으려 했다. 그리고 한결같지 않은 이 살아간다는 일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벌어진 일들의 “실제적 진실”을 찾아나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매 순간 변화하는 현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주장했다. 질서도 없고 안정적이지도 않으며, 그래서 다양하고 우연적이며 부단히 변화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운명이 초래하는 현재의 갈등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현재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현재의 갈등을 벗어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그는 요구했다. 갈등을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갈등 안에서 질서의 동인과 자유의 원천을 찾으려는 의지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갈등을 직시하라

이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사회의 균형과 화합을 위해 사회적 갈등을 피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 기존의 정치사상으로부터 탈선하는 인물이다. 그가 갈등으로 점철된 현재를 자주 언급한다면, 그것은 염세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갈등을 비껴갈 수 없는 대상으로 보는 체념적 태도가 그에게는 없다. 법이라는 것이 뛰어난 법률가에 의해 고안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갈등의 한복판에서 훌륭한 법이라는 것이 태어난다고 파악한다. 사회의 분열이 올바른 법과 통치의 탄생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자유라는 것이 갈등이 초래한 어떤 열정들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갈등을 억압하기보다는 오히려 촉구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갈등이 없으면 자유에 대한 욕망도 없다는 이런 인식, 갈등을 질서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는 이런 주장은 대단히 위험해 보인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명사가 그에게 덧씌워진 이유이다.

그러나 그의 삶과 말을 기꺼이 왜곡시키는 이 가면 뒤에는 온갖 야망과 질시, 두려움과 권력관계가 소용돌이치는 현실에서 그것의 “실제적 진실”에 눈을 돌릴 때 비로소 다수의 질서를 위한 씨앗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자의 얼굴이 숨어있다. 상이한 원자들이 사선으로 떨어지며 부딪힐 때 비로소 물질의 자유로운 생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루크레티우스에게서 배웠던 마키아벨리는 권력의 부딪힘이 초래하는 갈등 그 자체에서 정치적 자유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갈등의 위험성이 제거된 『유토피아』의 토머스 모어와는 다른 길을 선택했던 그는 탈선과 충돌에서 자유의 생성이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폭풍우 속에서 생각하라

               파트리크 부슈롱 (Patrick Boucheron)<br>
                     파트리크 부슈롱 (Patrick Boucheron)

저자 파트리크 부슈롱이 소개하려는 것은 이렇게 “사물의 실제적 진실”을 추적할 것을 주장하는 마키아벨리의 감춰진 얼굴이다. “역사를 사랑하게 만드는 자”라는 평판을 얻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이며, 프랑스의 진보 사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진 저자는 갈등을 경험하는 세상이 덧씌워놓은 마키아벨리즘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마키아벨리의 얼굴을 드러내려고 시도한다. 

나아가 마키아벨리가 여전히 우리에게 갈등에서 자유를 찾을 것을 주장하고 있다고 전해주려고 애를 쓴다. 불안과 갈등이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이라면, 마키아벨리의 목소리는 폭풍우가 예고되는 매 순간마다 다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여름의 태양 같이 결코 누그러뜨릴 수 없는 마키아벨리가 여전히 폭풍우를 맞이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깨어나시오”라고 말을 건네고 있다는 것을 저자는 환기시키려고 노력한다. 사물의 진실을 되살리기 위해 글을 써내려갔던 마키아벨리가 거리낌 없이 품에 안았던 문제들이 여전히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그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한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마키아벨리에 대한 재성찰을 요구한다고 볼 수 있다. 피렌체 인문주의자를 신중하게 읽지 못한 그간의 경향에 대한 간접적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과 일을 통치하는, 정확히 말하면, “경영하는” 모든 전문가에게 유용한 의사결정 안내서 혹은 행동을 취할 적절한 순간의 포착이 중요하다는 자기계발서로 『군주론』을 읽고 마키아벨리를 이해했던 그간의 성급하고 서투른 독서에 대한 경고라고도 할 수 있다. 「청춘」, 「행동의 시간」, 「재난 이후」, 「글쓰기의 정치성」, 「대립의 공화정」, 「결코 늦지 않았다」 등의 부제 하에 30장으로 구성된 이 자그마한 책을 통해 저자는 독자의 현재가 통치자와 민중에게 영광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 정도로 과연 무르익었는지 자문하기를 요구한다. 폭풍우를 발견하고 경험했던 과거의 마키아벨리에게서 현재의 폭풍우에 대한 진단을 받아오기를 희망한다. 마키아벨리가 마주했던 폭풍우를 지금의 우리는 여전히 경험하고 있고, 사납기 그지없는 이 폭풍우는 결코 멈추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라디오채널 <프랑스 앵테르 France Inter>에서 2016년 7월 11일부터 8월 18일까지 아침 7시 45분에 4~5분씩 송출했던 내용을 『마키아벨리와 함께 하는 여름 Un été avec Machiavel』(Des Equateurs, 2017)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것을 번역했다. 국내의 독자에게 처음으로 프랑스 연구자가 쓴 마키아벨리에 대한 책을 소개한다.


손주경 고려대학교·불어불문학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프랑스 투르대학교 르네상스고등연구소(CESR)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르네상스 궁정의 시인 롱사르』, 『글쓰기의 가면 Le masque de l'écriture』(공저), 『낯선 시간의 매혹』(공저), 『프랑스 문학의 이해』(공저) 등이 있고, 『프렌치 프랑스』, 『헤르메스 콤플렉스』, 『카상드르에 대한 사랑시집』, 『프랑스어의 옹호와 현양』, 『자발적 복종』 등의 번역본이 있으며, 르네상스 시와 시학 및 번역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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