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영문학 수용…상호텍스트성과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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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영문학 수용…상호텍스트성과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
  • 승인 2023.04.0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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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한국문학의 영문학 수용: 1925~1954』 (김욱동 지음, 서강대학교출판부, 489쪽, 2023.03)

 

서양 사람들이 흔히 ‘조용한 아침의 나라’ 또는 ‘은둔의 왕국’로 일컫던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영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1924년, 그러니까 일본 제국주의가 경성에 여섯 번째 제국대학으로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민립대학을 설립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자 제국일본의 정책 입안자들은 이를 잠재우고 중국 대륙을 연구하여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기 위한 목적을 내세워 경성제대를 서둘러 설립하였다. 1924년 개교와 동시에 예과를 시작으로 1926년 본과인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설치하였다. 법문학부에는 법학과, 철학과, 사학과, 문학과의 4학과를 설치하였고, 문학과는 다시 국어·국문학(일본어·일본문학) 전공, 조선어·조선문학 전공, 중국어·중국문학 전공, 외국어·외국문학 전공으로 나뉘었다. 여기서 외국어·외국문학 전공이란 다름 아닌 영어·영문학을 말한다. 당시 영어·영문학 외의 다른 외국어나 외국문학은 아예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1924년을 기점으로 삼는다면 이 땅에 영문학의 씨앗을 뿌린 지도 벌써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셈이다.

물론 한국에서 영문학 연구는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기 전부터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이 일본과 미국에 유학하면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들이 하나둘씩 귀국하면서 식민지 조선에서 영문학 연구는 더욱 활기를 띠었다. 여기에 서양 선교사들이 경성과 평양에 이미 설립한 전문학교들도 한국 영문학이 발전하는 데 비옥한 토양이 되었음을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따지고 보면 일제가 서둘러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한 이유 중 하나는 사립 전문학교의 영어 교육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영문학도인 나는 몇 해 전부터 영문학 도입 100년을 맞이하여 영문학이 한국 근대문학에 끼친 영향이나 교섭을 다루는 단행본을 집필하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동안 이 일 저 일에 치여 좀처럼 실행에 옮길 수 없다가 이제 하던 작업을 겨우 마무리 짓고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이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외국문학연구회(外國文學硏究會)’의 창립 회원으로, 해방 후에는 시인과 번역가로 활약한 이하윤(異河潤)의 말 한 마디가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내 머리 속을 좀처럼 떠나지 않고 계속 맴돌았다. 그는 「외국문학 연구 서론」에서 “영국에는 영국문학, 불란서에는 불란서 문학의 연총(淵叢)과 근거가 있어서 각각 그 문학을 연구하는 데 당대의 가장 진보된 사상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있는 것이지마는, 조선에는 아직 외국문학과 우리 문학에 한가지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참된 방법에서 비교 연구하는 학자가 한 사람이나마 있었는가”라고 묻는다. 이하윤이 이 질문을 던진 지도 벌써 몇 십 년이 지났다. 외국문학을 연구하는 동안 이 물음이 늘 나의 뇌리에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걸려 있었다. 

그러나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한국문학과 영문학을 다루는 작업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생각처럼 사정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논의를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로 국한시켰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김소월(金素月)이 《개벽》에 「진달내ᄭᅩᆺ」을 발표한 1922년부터 김내성(金來成)이 『청춘극장』을 집필하던 1940년대 말까지 기간의 한국문학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룬 작가는 김소월을 비롯하여 정지용(鄭芝溶), 김기림(金起林) 같은 시인들, 이태준(李泰俊), 박태원(朴泰遠), 김내성 같은 소설가들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근현대문학의 집을 굳게 떠받들고 있는 기둥들이다. 

나는 이 책에서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20세기 전반기 한국문학이 영문학에서 받은 영향 관계를 밝히려고 하였다. 그러나 단순히 영향 관계나 기원과 원천을 밝히는 전통적인 방법론에서 벗어나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모든 텍스트는 모자이크 같은 인용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텍스트도 다른 텍스트를 흡수하고 그것을 변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쥘리아 크리스테바의 말을 자주 머릿속에 떠올리곤 하였다. 이러한 상호텍스트성과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한국 근대문학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영문학이 끼친 영향과 변형, 상호 관계 등을 비교문학적 관점에서 자세히 밝히려고 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나는 ① 어휘, 구, 문장 등 표현, ② 특정 소재나 주제, ③ 텍스트를 둘러싸고 있는 맥락과 상황, ④ 작가의 전반적인 문학관이나 세계관, ⑤ 이미지와 상징과 문장 스타일, ⑥ 장르와 문학 전통 등 좀 더 광범위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마디로 나는 명시적인 영향 관계와 기원이나 원천은 말할 것도 없고 ① 전유, ② 인유나 암유, ③ 인용과 차용, ④ 패러디와 파스티슈, ⑤ 개작, ⑥ 모방, ⑦ 번역 등 묵시적인 관계도 광범위하게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지면 관계로 이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작가와 작품은 다른 책에서 다룰 예정이다. 후속 단행본에서는 김남천(金南天), 조세희(趙世熙), 최인호(崔仁浩) 등을 다룰 것이다. 


김욱동 서강대 명예교수·영문학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 인문대학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환경문학, 번역학, 수사학, 문학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해 온 인문학자다. 주요 저서로는 《번역가의 길》, 《궁핍한 시대의 한국문학: 세계문학을 향한 열망》, 《비평의 변증법: 김환태·김동석·김기림의 문학비평》, 《이양하: 그의 삶과 문학》, 《환경인문학과 인류의 미래》, 《세계문학이란 무엇인가》, 《외국문학연구회와〈해외문학〉》, 《아메리카로 떠난 조선의 지식인들》, 《눈솔 정인섭 평전》, 《하퍼 리의 삶과 문학》, 《미국의 단편소설 작가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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