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종합, 가족의 미래
상태바
국가의 종합, 가족의 미래
  • 박호성 국제평화전략연구원·정치사상
  • 승인 2023.04.02 12: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 에필로그_ 『루소 사상의 새 지평: 문명과 자연』 (박호성 지음, 서광사, 264쪽, 2023.03)

 

18세기의 유럽사회는 근대적인 학문과 과학의 진보가 두드러진 시기이다. 당시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은 놀라운 성취에 힘입어 인류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새로운 과학기술과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해 근대세계는 머지않아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류의 낙관적인 미래를 보장할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근대사회의 놀라운 발전이 근대인의 도덕적 향상으로 이어지리라는 견해조차 등장했다.

그러나 루소에게는 근대사회의 외적인 진보가 바로 이상적인 미래를 보장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근대세계의 놀랄만한 성취는 그 이면에 참으로 비극적인 결과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실상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은 유럽사회의 현실은 이성의 발전에 입각한 계몽주의사상가들의 낙관적인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였다. 루소는 근대사회를 넘어 근대문명의 토대가 되는 핵심적인 요소들을 비판하며 정치적 상상력에 입각하여 새로운 문명질서의 대안을 제시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대화의 장을 열고 있다.

저자는 20세기 후반 한국사회의 소산인 가난한 삶을 체험했다. 그러나 절대빈곤의 아픔인 가난보다 견디기 힘든 혈연-지연-학연의 상대적 차별에 낙심했다. 그런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려고 뒤늦게 학업을 계속하여 루소의 저술을 접하면서 구조적 모순의 실체를 깨닫고 ‘피흘림이 없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 가능성을 모색했다. 적지 않는 시간이 흐른 뒤에 한국사회에서 나타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모순 극복은 분단을 극복한 통일 이후 대동세상에서 가능하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개인 삶의 성취를 지향한 법학과 졸업 이후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설계하는’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분단 현실을 극복하는 통일운동 지향의 사회운동단체인 [한걸음]에 참여하고 학문적으로 정책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영토의 통일을 넘어 사람의 통일을 위한’ 학습으로 정치사상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여 그 길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좌절과 실망에 낙담하기도 했지만, 루소의 메시지를 생각하며 힘을 내곤 했다. 이 책은 시대를 초월하여 한국사회에 적용 가능한 사상의 가치를 밝혀준다.

 “. . . 모든 것이 정치에 뿌리박혀 있으며, 인민은 정부의 성격이 만드는 데서 절대 벗어나지 못함을 알았다. . . . 최고의 의미에서 최선이라는 말에 부합하는 가장 계몽되고 지혜로운 사실상 최선의 인민을 창조하기에 가장 적합한 정부의 본성은 무엇인가?”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현실로 존재하는 정부가 아닌 가능한 최선의 정부에 관한 통찰을 제시하며, 그 당시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독창적인 견해를 밝혔다. 루소가 1762년에 [사회계약론]을 통해 제시한 정치적 권리의 원칙은 시대를 넘어 현대 민주정치의 근본 원칙으로 확립되어 현실화되었다. 루소가 사망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그의 저술을 통해 현대인은 루소와 지적 대화를 계속 이어가는 중이다.

이 책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저술의 한글 번역본이다. 저자는 책머리에 이어 개관에서 [사회계약론]을 중심으로 당시의 시대적 조건과 지적 배경을 비롯한 루소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을 조망하고 있다.

저술 읽기에서는 정당한 사회의 기초와 조직의 근본 원리, 정당한 사회의 입법 틀, 정부의 다양한 기능과 능력에 대한 세부 사항, 종교의 위상을 포함한 사회조직의 다른 양상으로 구분하고 [사회계약론] 본문의 핵심을 요약 정리하며 학습문제를 제기한다.

평판과 영향에서는 루소의 저작이 당시 프랑스와 유럽을 넘어 낭만주의와 칸트를 비롯한 독일 관념론과 마르크스주의에 미친 영향력을 소개한다. 최근에도 루소는 철학자와 정치이론가들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지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학자는 존 롤스로서 그는 루소와 비슷한 질문을 제기한다. “우리 모두가 다른 개인적 욕구와 능력 및 필요를 갖는다면 보편적으로 구속하는 정의와 통치의 공정한 원리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는가?” 이 점에서 롤스가 가정하는 ‘원초적 지위’는 루소의 자연상태에 대한 논의를 연상시킨다.

루소는 역사적 중요성 이상의 지위를 차지한다. 루소의 사상은 정치적 권리와 평등에 대한 현대의 적용에 여전히 도움을 준다. [사회계약론]의 효과는 심오하고 다양하며, 현대 정치사상과 실천, 도덕철학, 심지어 심리학의 이해를 발전시키는 데 여전히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처음에 이 책의 번역을 요청받았을 때, 분량이 적어 쉽게 마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영국식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역자로서 수없이 당혹감을 느끼게 되었고, 예상보다 훨씬 더 긴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만 초역을 출판사에 넘긴 후에 돌려받은 교정본을 보면서 전문서적 출판사의 내공을 느끼며 몹시 고맙게 생각했다. 이제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서광사 이숙 대표와 편집부 직원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완벽한 번역’은 좀처럼 이룰 수 없는 드높은 이상일 뿐, 번역가는 ‘차선’을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소원한다. 


박호성 국제평화전략연구원·정치사상

(재)국제평화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선린상고, 국제대학 법학과,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경희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장 자크 루소의 정치사상: 시민사회와 개인의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연구주제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정치쟁점연구회>와 <현대북한연구회>를 창립했으며, <국제이주문화포럼> 대표로도 활동하는 한편, 양원주부학교 등 평생교육시설에서 30년 넘도록 사회교육에 종사해왔다. 지금까지 통상적인 학회 활동 외에 정치사상의 관점에서 한국정치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는 데 관심을 갖고 민주주의와 통일과 연관된 주제를 연구 중이다. 역서로 <루소의 『사회계약론』 입문>, 『루소 사상의 이해』(편역), 루소의 『에밀—교육에 관하여』, 『사회계약론 외』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