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과학
상태바
문장의 과학
  • 김의수 한국외대·국어문법론
  • 승인 2023.03.26 12: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 인터뷰_ 『문장 분석』 (김의수 지음, 하우, 476쪽, 2023.02)

 

▶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그동안 우리말의 문장을 올바로 분석해 줄 수 있는 틀을 모색해 왔습니다. 그래서 학교문법도 공부했고, 미국의 언어학자 촘스키(Chomsky, N.)의 이론에 입각해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을 쓰기도 했죠. 그러나 학교문법은 너무 성긴 틀이었고 촘스키의 생성문법은 너무 방만한 이론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서 저 나름대로 한국어 문장의 분석에 최적화된 이론을 만들어 보고자 했고, 그 결실로 얻어진 것이 해석문법입니다. 2008년도에 전문 학술지에 해당 논문을 게재하고 나서 줄기차게 연구하여 2017년에 그간의 결실을 담아 두꺼운 단행본(해석문법의 이론과 실제)을 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많은 내용을 담다 보니 정작 문장 분석 자체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룰 수가 없었죠. 그래서 바로 이 책을 기획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5년이 걸려 이제야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 이 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한국어 문장을 분석하고 그걸 바탕으로 글 전체가 문장들로 어떻게 짜여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문장 분석,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한 텍스트 분석. 이렇게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게 이 책입니다. 

문장 분석은 음운 층위, 형태 층위, 통사 층위, 화용 층위, 이렇게 4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통사 층위에서 문장을 분석합니다. 문장의 기능은 사건(일, event)을 서술하는 것이며, 사건의 서술은 서술하는 내용과 서술하는 태도로 구성됩니다. 이때, 서술하는 내용을 명제(proposition), 서술하는 태도를 양태(modality)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문장은 명제와 양태의 복합체인 거죠. 흔히들 문장은 주어와 서술어의 결합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주술관계는 명제에 국한된 것입니다. 문장은 주어나 서술어 같은 명제성분들뿐만 아니라 시제나 상, 높임법이나 종결법과 같은 양태성분들로도 구성되어 있죠. 이 책은 문장을 5개의 명제성분과 5개의 양태성분을 가지고 입체적으로 분석합니다. 문장성분은 영문자로 표시하고 문장성분의 내부 정보는 숫자로 나타내죠. 책 표지의 디자인은 이러한 기호들을 배열해 놓은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문장에 대한 분석입니다. 

이걸 바탕으로 한 텍스트 분석이란, 문장들이 모여 어떻게 한 편의 글을 조직하고 있느냐를 보는 겁니다. 첫째, 텍스트가 어떤 문형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핍니다. 텍스트의 종류나 저자의 문체적 특징에 따라 주된 문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둘째, 텍스트를 구성하는 문장들이 어떠한 복잡성 흐름을 보이는지 살핍니다. 문장의 통사 분석 결과를 통해 문장 하나하나의 복잡성을 측정하여 수치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문장의 무게를 잴 수 있다니, 마법 같은 일이죠. 문장의 형식적 복잡성 흐름을 내용의 흐름과 견주어 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셋째, 텍스트 안에서의 모문의 횡적인 흐름을 살핍니다. 이것을 통해, 단락이 내용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문장이 가진 복잡성 차이에 의해서도 구획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넷째, 텍스트 안에서의 내포문의 종적인 흐름을 살핍니다. 주술관계가 두 번 이상 나타나는 복문에서 바탕이 되는 절을 모문이라 하고 그 위에 얹혀 있는 절을 내포문이라 합니다. 모문 위에 내포문을 쌓아 올릴 경우 어떠한 양상이 드러나는지를 관찰하는 겁니다. 무게 중심을 낮춤으로써 수직적 구조의 안정성을 꾀하려는 경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이 책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독자는 누구인가요? 

우선, 대학의 학부나 대학원에서 가르치기 위한 책이 필요했죠. 2008년부터 지금까지 14년 동안 유인물로 가르쳐 왔습니다. 물론 2017년에 관련 서적을 내긴 했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문장 분석 자체에 대해서는 적절한 교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5년 전에 기획하여 이번에 완성하게 된 거죠.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예상 독자의 범위가 매우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어 문법을 연구하는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한국어 문장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을 통해 한국어 문장의 생생한 특징을 쉽게 파악하고 간편하게 표시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저도 중학생 때 학교문법을 배웠고 그걸 통해 숱한 문장을 분석해 보았죠. 

이 책에서 알려주는 문장 분석 방법은 학교문법보다 정교하고 간명하게 문장을 분석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중고등학교의 국어 선생님들이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이 책을 활용하면 학생들에게 문장의 과학을 일깨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말풀이나 숫자 넣기 등을 즐기는 어른들도 이 책에서 알려주는 방법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문장들을 분석하는 취미를 가져 볼 수 있겠죠. 제 수업을 듣는 어떤 학생이 지하철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아저씨가 그걸 보고 재미있어하며 그게 뭐냐고 묻더랍니다. 본인도 좀 해 보고 싶다고요. 그 얘기가 제겐 퍽 인상 깊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마치 옆에서 일러 주듯 경어체로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누구나 혼자서도 잘 배울 수 있게요. 


▶ 이 책에 따라 이루어진 문장 분석 결과를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소개하는 간단한 글을 쓰고 그걸 분석한 결과를 나타내 보이겠습니다. 

(가) 원문

(나) 원시말뭉치

(다) 문장 분석 말뭉치

여기서 (가)는 방금 만들어 낸 텍스트 원본입니다. 10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한 편의 짤막한 글이죠. 이걸 일단 문장 단위로 나누어 보기 좋게 정렬한 게 (나)입니다. 분석에 투입되기 전의 날것으로서의 말뭉치(raw corpus)입니다. 그리고 그걸, 이 책에서 소개하는 문장 분석 틀로 분석한 게 (다)입니다. 이렇게 문장들의 분석 결과를 모아 놓은 걸 전문적으로 통사 분석 말뭉치(syntactically tagged corpus) 혹은 구문 분석 말뭉치라고 합니다. 이걸 가지고 글의 특성을 연구하게 됩니다. 


▶ 이 책이 적극 활용되었으면 하는 분야는 어디인가요?

우선은 대학의 학부나 대학원에서 한국어 문장의 특징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적극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대학에서는 이론 중심으로 문장을 대하기 일쑤죠. 그래서 학생들이 문법론이나 통사론 수업을 들어도 정작 문장 하나를 제대로 분석해 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문장 분석을 가르치고 배우면 일상에서 마주치는 실제의 한국어 문장을 정말로 분석해 낼 수 있게 되죠. 외국인 유학생들도 제 수업을 많이 듣는데, 수업을 듣고 나서 상당수의 학생들이 한국어 문장 실력이 많이 나아졌다고들 합니다. 문장 하나를 정확히 분석하고 표시할 수 있어, 본인이 약한 부분이 정확히 어디인지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거죠. 

한국어 문장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텍스트의 조직적 특성을 파악하는 방법은, 국어국문학 분야의 문체론 연구에 매우 유용합니다. 작가별, 시기별, 장르별 특징을 분석해 낼 수 있죠. 국어교육이나 한국어교육, 통번역 연구에서도 효과적으로 쓰여 왔습니다. 십여 년 동안 이를 통해 저와 제 지도학생이 쏟아낸 학술지 논문과 학위논문이 수십 편에 달합니다. 앞으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분야는 언어병리학이나 법언어학 분야입니다. 아동의 언어발달 과정을 면밀히 추적하여 거기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개선하고 해결하거나, 언어적 지문을 채취하여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매우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한국어 문장 분석을 소개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중국어 문장 분석, 그리고 영어 문장 분석을 소개하는 책들이 나올 예정입니다. 


김의수 한국외대·국어문법론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런던대학 SOAS 박사 후 연수 및 QMUL 방문학자,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학센터 및 한국어문화교육원 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어의 격과 의미역』, 『문법 연구의 방법 모색』, 『언어의 다섯 가지 부문 연구』, 『해석문법의 이론과 실제』, 『문법 연구의 주제 탐색』, 『언어단위와 인지체계의 불확정성』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