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거나 일제에 의해 왜곡되거나 축소된 우리의 독립운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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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거나 일제에 의해 왜곡되거나 축소된 우리의 독립운동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3.20 0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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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겁한 근대, 깨어나는 역사: 기억되지 않은 독립운동가, 기록되지 않은 독립운동사 | 김진섭 지음 | 지성사 | 280쪽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역동적인 활동에 관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땅의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관련 자료도 많지 않아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내용이 대단히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일제에 의해 독립운동이 지워지거나 축소 또는 왜곡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관련 신문 자료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활동을 정리했다. 

우리나라 5대 국경일 중 가장 먼저 맞이하는 삼일절! 해마다 3월 1일을 맞이하면 누가 일깨워주지 않아도 으레 “기미년 3월 1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노랫말이 떠오른다. 이어서 태극기 휘날리며 “대한 독립 만세!”를 목청 높이 외치는 장면에 일제의 총칼 앞에 무참히 쓰러져 간 우리의 선열들이 모습이 겹쳐진다. 어느덧 100년을 훌쩍 넘어섰음에도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울컥 치미는 감정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암울했던 그 시대, 기억되지 않은 독립운동가, 기록되지 않은 독립운동사가 여전히 역사의 공백으로 남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 우리가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만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점점 잊히거나 왜곡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사에 주목하여 단지 연구 논문이나 자료로 남아 있는 기록들을 엮어 이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에겐 조금 낯선 독립운동가들이 어떻게 일제에 항거했는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 그 뜨겁고 치열했던 시대의 조각조각을 모아 정리했다.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그들과 관련한 당시 신문 자료와 함께 그들이 펼쳤던 활동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강압적으로 국권을 탈취하여 식민 지배를 하고 있으면서도 대외적으로 “평화적으로 병합이 이루어졌고, 조선은 자립적인 국정운영의 능력이 없다. ……조선은 여전히 봉건적이다”라고 홍보했다. 또한 자립 능력이 없는 낙후된 조선을 부각시키면서 “병합 이후 다방면에서 발전하며 조선이 근대화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러한 일제의 주장은 식민 지배의 수탈 목적을 교묘하게 감추기 위한 술책이며, 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염원을 국제사회에 강조하기 위해 끊임없이 거사를 계획하고 무장투쟁을 벌였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의병’에서 1910년 독립군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하지만 근대화와 애국계몽운동에서 무장의혈투쟁 등에 이르는 다양한 활동에 비하면 이제까지 우리가 접한 독립운동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독립운동가는 모두 20명이지만, 이들과 관련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거나 조금은 낯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다. 황해도를 대표하는 의병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한 이진룡, 국내에 활동 근거지를 구축하며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헌신했던 우재룡, 밀정의 계략에 빠져 비록 완전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현재의 150억 원에 달하는 거금을 강탈해 통쾌함을 안겨주었고,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모티브가 되었던 ‘15만 원 탈취 사건’의 윤준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가 있다.

우리 독립운동사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3·1운동과 관련하여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배포하는 데 중심적으로 활동했던 이종일, 불교계의 3·1운동을 지휘한 뒤에 좀 더 먼 앞날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나라 최초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박노영, 3·1운동으로 체포되어 유관순과 함께 수감 생활을 했던 8호 감방 여성 독립운동가 동풍신과 어윤희, 김향화에 얽힌 일화가 뜨겁게 다가온다.

여성 독립운동가로는 최초로 사형선고를 받은 안경신, 5척 단신으로 투사가 되어 꺾이지 않은 기개로 ‘배포 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한훈, 대구 중심가에 폭탄을 터뜨려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사형을 앞두고 형무소에서 갑자기 사망한 장진홍, 홀로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벌인 이수흥이 독립운동사의 한 면을 장식한다. 무장투쟁만이 독립운동의 전부가 아니었다. 러시아에서 24년 만에 귀국하여 마술사로 활동하면서 계몽운동을 도왔던 김문필, 조선어학회를 중심으로 적의 항공모함보다 강한 우리말과 글을 지켰던 정태진, 그리고 결은 다르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밀정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35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이 땅의 독립운동가에 관한 우리의 기억은 여전히 몇몇 독립운동가에 국한되어 있다. 독립운동사의 채워지지 않은 공백을 살펴보면서 뜨겁게 살다간 기억되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가슴 벅차고 설레는 우리 역사 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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