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성경은 다루는 범위와 목적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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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성경은 다루는 범위와 목적이 다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3.1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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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이론 | 로버트 C. 비숍·래리 L. 펑크·레이먼드 J. 루이스·스티븐 O. 모시어·존 H. 월튼 지음  | 노동래 옮김 | 새물결플러스 | 688쪽

 

미국 휘튼 칼리지에서 오랫동안 과학과 신학에 관해 각 분야의 전문 교수진이 교양 과목으로 가르쳐 온 내용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다. 책은 현대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고인류학의 표준 이론이 제공하는 우주와 태양계 및 지구, 생명, 생물 다양성, 인류의 기원에 관해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내용이 지니는 신학적, 성경적 함의도 설명한다. 

현대 과학의 표준 이론은 우주의 나이가 약 138억 년 이상이고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년이며,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다양한 생물은 진화의 산물이고, 인간은 영장류와의 공통 조상에게서 나왔으며,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약 10,000개의 개체에게서 나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약 1만 년 전 이내에 하나님이 엿새 동안 무로부터 직접 만물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창세기의 기록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없으므로 과학이 틀렸는가? 아니면 독립적인 여러 증거가 동일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과학 연구의 결과에 비추어 볼 때 성경이 틀렸는가?

성경이 진리임을 옹호하려는 사람들은 과학은 확고한 사실이 아니라 “이론”일 뿐이며, 따라서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진리이고 과학은 하나의 가설적 이론일 뿐이므로 양자는 비교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 이론은 허술한 추측이 아니라 많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일정한 규칙이 발견되고, 실험 결과가 재현 가능하며 그 가설에 입각한 예측이 사실로 밝혀져야 비로소 이론의 지위를 얻게 된다. 따라서 많은 반대 증거들을 통해 그것이 틀렸음이 입증되기까지는 잠정적으로 사실로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우주를 기적적으로 창조했다고 믿는 지구 창조론자들은 우주 나이가 138억 년 이상이고 지구 나이가 45억 년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할 때 물질들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창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거나, 사실은 하나님이 우주를 1만 년 이내에 창조했는데, 창조 직후에는 방사성 붕괴율이 현재보다 훨씬 빨랐던 것을 포함하여 물리 법칙이 현재와 달라서 현재 우리가 관찰하는 수치를 사용하면 나이가 과도하게 많게 측정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경우 하나님이 허위를 조장하는 존재가 되거나 지구에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조건이 부과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성경은 실제로 하나님이 약 1만 년 전에 무로부터 엿새에 걸쳐 만물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가? 성경은 세계의 기원에 관한 역사적, 과학적 서술인가? 하지만 그것이 창세기에 묘사된 우주의 기원에 관한 유일한 해석 방법인 것은 아니며, 사실 그런 해석은 교회사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이론일 뿐이다. 과학과 성경은 다루는 범위와 목적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은 가시적인 자연계를 대상으로 그 구조와 속성, 법칙 등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있지만 궁극적인 원인, 목적, 의미를 말해 줄 수는 없다. 과학이 그 한계를 벗어나 보이는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신은 존재하지 않고 이 세상은 단순한 우연의 산물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본분을 벗어난 처사다. 이에 반해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죄를 범한 인간의 구원의 필요와 구원의 방법, 인간과 우주의 목적과 의미 등을 알려주지만, 자연계의 기원이나 구체적인 작동 방법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다. 

생각건대 우리 인간은 몸을 지닌 존재로서 자연환경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우리는 공기와 물과 식량을 필요로 하고 땅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서 먼저 다른 생명체들을 창조했고, 그 전에 그것들이 살아갈 지구를 창조했고, 또 그 전에 지구가 존재할 태양계를 창조했고, 그런 식으로 태양계가 존재할 우리 은하와 우리 은하가 존재할 우주를 창조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우주와 지구는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곧 한치라도 틀어지면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필수적인 법칙들과 원리들이 작동하고 있다. 

저자들은 전능하고 자애로운 하나님이 자연에게 자기 스스로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해서 자연의 모습을 형성해가는 방식으로 창조했다고 말한다. 즉 창조와 진화 개념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하면 표준 과학이 말하는 우주와 지구 나이나 인간의 기원에 관한 설명은 우리의 신앙을 포기하게 하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책은 현대 과학이 발견한 우주, 지구, 생명체, 인간의 기원에 대한 핵심 내용을 상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더불어 물리적인 우주 안에 담긴 기독교 신앙의 함의들을 제시한다. 이 책은 특히 과학을 이해하는 면에서 반지성주의 경향이 강한 한국 교회에 매우 좋은 치료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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