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가 모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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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가 모르는 것
  • 손필영 국민대학교·국문학
  • 승인 2023.03.1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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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금쯤 깊은 산 그늘에는 복수초가 아직 녹지 않은 얼음 밑에서 올라와 노랗게 피어 있을 것이다. 솜털 달린 연분홍색 노루귀도 아무렇지 않게 올라와 여기저기 귀를 기울일 것이다. 막 봄이 번지는 시간이지만 연초록잎들이 햇빛에 흔들리려면 한차례 추위를 더 견뎌야 할 것이다. 삼월이 되고 그동안 코로나로 대면을 못했던 학생들이 밝은 표정으로 등교를 하면서 개강이 즐겁다. 특히 이번 학년도 입학생들은 코로나 기간 동안 이미 디지털의 경험이 충분해서인지 세상의 변화나 현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안정적이다.

요즘은 ChatGPT나 DeepL 번역기와 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화두인데 반해 학생들은 그러한 세상을 예견한 것처럼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생활화한다. 학교에서 오랫동안 지내오면서 시대에 따라 학생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아왔다. 1990년대 학번들에게는 세계의 변화와 세기의 변화에 대해 불안과 진지함이 같이 있었다. 1999년에서 2000년이 접어들면서 입학한 밀레니엄 학번들은 새천년의 시작처럼 쾌활하고 적극적이었다. 2013년 학번은 또 다른 변화를 느끼게 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어려서부터 핸드폰에 익숙한 학생들을 아주 스마트하게 바꾸어서 학생들이 시니컬했다. 무엇이든지 네이버가 알려주니 상식적인 내용이든 세상의 변화든 스마트폰으로 접하면서 실제적 세상보다 비실제적이거나 비현실적 세상을 읽고 아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2020년부터 한 2년 반 동안 비대면으로 지내다가 지난 5월부터 실제적인 공간에서 사람과 소통하는 상황을 맞이한 학생들은 완전히 일상화된 디지털 세상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실제 현실을 낯설어 하기도 한다.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과다한 디지털 생활로 문해력 저하라든가 사고력 저하가 일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수준이 심각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상황은 무척 아이러니하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이 필요하고 인문학과 과학의 연결이 앞으로의 살길이라고 말해 왔지만, 많은 대학에서 외국문학이나 문예창작 같은 과는 없어진 지 오래고 교양과목으로라도 이러한 학문을 접할 시스템을 점점 없애고 있다. 또한 대학이 추구하는 핵심교양은 개론 수준의 문학을 얘기하는 정도이고 코딩을 위시한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는 일에 급급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융합만이 미래의 살길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인문학의 본질은 사람에 있는데, 대학교육을 통해 자신을 알고 사람다운 삶을 고민하는 기회를 가져보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연극을 보고 얘기를 하다가 앞으로는 ChatGPT가 연극 대본도 쓸 것이고 사람이 그 대본으로 공연을 할 것이라는 말을 나누었다. 인공지능은 그동안의 데이터를 조합해 최적화 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문학은 무엇을 위해 있어 왔고 있어야 할까? 통계와 기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각기 다른 인간의 끊임없이 변하는 내면세계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글을 쓸 때 자신이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쓰라고 한다.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생각은 구체적이고 창조적인 생각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데이터의 조합으로 지금까지의 인간보다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고통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과학과 인간의 융합에 대한 문제는 인공지능으로는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은 감각이 없으므로 인간 경험을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통계에 의해 해답을 제시할  것이다. 현재 디지털 교육의 접근방식은 메타버스를 사용한 체험형 교육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체험을 대체할 수는 없다. 깊은 산에 오를 때 느끼는 바람과 나무들의 숨결이나 새소리의 황홀함을 인공적으로 대체한다면 인간을 개념적으로 제한하는 것일 것이다. 친구가 보고 싶어 그 집 앞을 서성이는 것이나 사람을 만나고 돌아설 때 뭔지 모를 혼동과 허탈감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것을 인공지능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변화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인간의 모습을 찾는 것이 지금 인문학의 과제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디지털 시대의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일수록 우리는 삶을 이해하고 인간을 발견하기 위해 자연에 기대야 할 것이다.

십 년 전 몽골에서 사철을 보낸 적이 있다. 겨울에 눈 쌓인 벌판의 소들이 저녁이 되자 이끄는 사람도 없는데 일렬로 줄을 서서 어디를 향해가는 것을 볼 때 무척 신기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들은 하루 종일 풀을 뜯다가 해가 질 때 한 마리가 앞장서면 그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쯤 몽골의 짐승들은 새끼를 낳느라 바쁠 것이다. 망아지는 어미 배에서 나오자마자 깡충거린다. 봄에 태어나야 온 여름 무럭무럭 자라 겨울 혹한의 추위를 견딜 수 있고 그 다음 해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 자연을 체험하고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이번 입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앙드레 지드가 <지상의 양식>에서 말한 것처럼. 천재적인 수학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굿 윌 헌팅>의 주인공은 책을 통해 많은 지식을 습득하여 무엇이든지 알고 논리적으로 얘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담 교수가 그에게 미켈란젤로에 대해 얘기하라고 한다면 온갖 정보로 말은 할 수 있겠으나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알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주인공은 모른다. 그곳에 가본 사람만이 아는 것을. 인공지능은 모를 것이다. 그 냄새를.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보여주는 다채로운 영상에 의해 자아가 함몰되어 자아를 알 수 없는 상태에 처했다. 앞에서 말한 문해력 저하는 단순히 그러한 현상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저해하여 타인을 이해하는 데 무관심하게 만들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정체도 모르고 이끌려가는 수동적 에너지의 고립된 공간에서 고독하게 있다가 사라질 것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이 결국 이러한 상황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연구는 진행될 것이지만 우선 모두에게 자연 체험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


손필영 국민대학교·국문학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19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빛을 기억하라고?」가 당선되어 시작 활동을 하고 있다. 제4회 김기림문학대상을 수상했다. 개인시집 『빛을 기억하라고?』, 『타이하르 촐로』, 『그 바람이 어찌 좋던지』, 저서로 『잘못 읽어왔던 한국시 다시 읽기』, 『김우진 시와 희곡 연구』가 있으며, 공동시집 『산늪』, 『곰배령 넘어 그대에게 간다』, 『빙폭』, 『금강산에 살다 죽어도』, 『천지에서 바이칼로』, 『백두대간 시집-혼자 걸어도 홀로 갈 수 없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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