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문자인가…문자의 일반 이론은 무엇을 다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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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문자인가…문자의 일반 이론은 무엇을 다루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2.27 0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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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와 언어학: 문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 | 연규동 지음 | 따비 | 320쪽

 

문자의 변화 규칙을 찾고, 그것을 추동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세계의 문자들이 갖는 공통성과 차별성, 그것이 주는 문화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저자의 치열한 고민과 문제의식, 그 학문의 여정이 담겨있는 책이다.

“언어는 인류의 고귀한 자산입니다. 인류를 최고의 영장으로 만든 언어에 대한 연구가 줄곧 관심거리였고, 고대 언어는 음성이 아닌 문자로 기록되었기에 ‘문자’에 대한 연구로 그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한글, 즉 훈민정음에서부터 주변의 문자로, 다시 세계의 문자로 그 대상을 넓혀나갔습니다. 게다가 언어든 문자든 모든 언제나 변하게 마련입니다. 그 규칙과 원인을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찾고자 했습니다.”

평생 문자의 일반 이론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 연규동 교수가 생전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한국어’를 잘 모르는 외국인에게 ‘한글’을 잘 모른다고 한다든가, ‘한국어’는 잘하지만 ‘한글’을 잘 모르는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잘 못한다고 하는 등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해서 사용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글과 한국어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한글(훈민정음)은 15세기에 세종대왕이 만든 문자체계이며, 한국어는 한국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기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해왔다.

이처럼 ‘문자’와 ‘언어’를 혼동해서 쓰는 것은 언어생활에서 문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기도 한다. 특히 요즘처럼 얼굴을 마주 보지 않으면서 문자 교환만으로도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대에, 그 형태가 어떠하든 문자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역사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문자가 지역에 따라 불균형하게 창조되고 발전해왔음에도 문자를 중요하게 봐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저 우연히 생기고 사라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대를 저물게 하고 새로운 시대를 불러오는 큰 위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문자 사용은 소통 방식을 바꾸었고, 사회제도를 새롭게 했으며, 새로운 세력을 등장하게 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문자의 일반 이론에 관한 연구서는 아주 드물고, 일반적으로 우리에게는 ‘문자’에 대한 관심도, 제대로 된 개념 정립도 잘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이 책은 1장 ‘언어와 문자’에서 언어와의 비교를 통해 문자의 개념 정립을 엄격하게 시도하고,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문자의 생성 및 발달 원리’를 꼼꼼하고 체계적으로 살펴본다.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음성중심주의와 문자중심주의의 비교를 통해 문자의 개념을 정리해가는 1장은 그간 우리가 파편적으로,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문자와 글자, 글자와 글씨, 상형문자와 그림문자, 표음문자와 표의문자 등의 개념을 더 깊고, 체계적으로, 그리고 21세기의 다양한 변화에 맞춰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준다.

또한, 2장은 익히 알려진 문자의 생성 원리인 상형(象形), 지사(指事), 전주(轉注), 회의(會意), 가차(假借), 형성(形聲) 등을 다루는 데서 더 나아가, 문자가 표상하고 있는 단위에 따라 단어문자, 음절문자, 음소문자로 나누어 살펴본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변화하는 언어생활과 환경 속에서 문자가 어떻게 대처해나가는지 역시 다룬다. 문자들이 서로 차용하며 변해가는 과정, 즉 유럽 사회의 알파벳, 동아시아의 한자, 서아시아의 아랍 문자, 인도의 데바나가리 계열 문자 등이 변해가는 과정 등을 흥미진진하게 살펴본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자 역시 그 모습을 조금씩 달리할 수밖에 없는데, 6장 ‘자용론: 문자의 화용론’은 문자의 시각성, 문자의 공간성 등으로 그 변화의 양태를 살펴보고, 7장 ‘문자의 혼종’은 한자 전용, 한자 혼용, 한글 전용을 비롯해 한글 쓰기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양상을 고찰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지점은 우리가 쉽게 얘기하고 있는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훈민정음’의 문자 유형(2장), 도상성과 자질성(5장) 등 문자학의 측면에서 고찰하는 대목이다. 흔히 한글이 발음기관 모양을 본떴다고 하거나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문자라는 등 자랑스러워하는 대목이 문자학의 측면에서 어떤 의미인지, 그 특징과 한계 등을 체계적으로 일별하는 즐거움을 준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쓰고 있는 한글, 알파벳, 한자 등을 비롯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문자들까지, 그것들이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유사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변하는 시대 속에서 어떻게 빠르게 변화하거나 더디게 변화하면서 충돌을 일으키는지를 문자학의 관점에서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무엇보다, 문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그 길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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