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일 국경 비교연구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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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일 국경 비교연구 포럼
  • 차용구 중앙대·역사학
  • 승인 2023.02.25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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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포럼]

 

중앙대 인문사회과학 융복합 연구팀은 ‘발트해와 동아시아의 국경연구 클러스터 구축’을 주제로 한 국제 워크숍을 지난해 10월 26일 개최했다. 정치국제학과 손병권 교수, 중앙사학연구소 전우형 교수, 역사학과 차용구 교수로 구성된 연구팀은 독일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대학 연구팀과 공동으로 이번 워크숍을 준비했다. 

경계 짓기가 인류의 보편적인 행위이기는 하지만, 유독 16세기 이후에 근대 서구 국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세계지도에 경쟁적으로 경계선을 그었다. 자본도 동전의 양면과 같이 국가와 공모해서 경계를 구획하고 구분했다. 서구 자본주의는 해외 시장 개척을 추진하면서 비서구의 영토를 식민지화하였고, 이렇게 해서 서구 근대성과 식민주의는 한 몸에 여러 동물이 뭉쳐있는 그리스 신화의 키메라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키메라가 내뿜는 불처럼, 서구의 식민주의적 경계짓기는 전지구적인 지배 장치로서 공간의 자의적인 분할과 재조직을 힘으로 밀어붙여 세계사적인 파국을 몰고 왔다. 경계 짓기는 판도라의 상자였던 것이다.

이처럼 경계의 역사적 의미가 재인식되면서 실제적·상징적 차원에서 경계 연구(Border Studies)가 시작되었다. 경계는 중심과 중심 가운데에 있는 제3의 사이 공간(in-between space)으로, 특정 집단의 일방적인 정복과 팽창에 맞선 다중적 주체들과 가치가 경쟁하고 공명하는 접경 지대(메리 루이스 프랫)이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경계는 이질적인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때로는 불평등하게) 서로 얽혀 있는 ‘혼종의 공간’이자 ‘얽힌 역사(histoire croisée)’가 전개되는 곳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제 경계는 탈중심의 해방 공간으로서 새로운 의미 부여가 필요하다.

국경은 근대 국가가 만들어낸 횡단과 통제의 힘이 대립하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 투쟁의 장소로 이해되었다. 전통적인 국경 연구는 국경을 보호·단절·통제·차단 기능을 하는 배타적 선이자 주권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이해하면서, 반드시 수호해야 하는 신성한 경계선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국경의 배타적·공격적 기능만 강조한 나머지 이를 불통의 장벽으로 파악했던 고전적 국경 이론은 국경이 갖는 접촉과 협력 기능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드러낸다. 국경을 넘나드는 코로나19라는 초국가적 감염병은 자국의 이득만 고려한 정책이 더 큰 혼란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이웃 나라와 함께 대처하는 것이 확산을 예방하는 지름길임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국경을 군사적 요새나 정치적 ‘장벽’이 아니라 공생하는 ‘교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증가한다.

필자는 몇 해 전부터 국내외 학자들과 세계의 국경을 비교하는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연구팀과 독일 그라이프스발트 대학교의 발트해 연구소(IFZO)가 한국연구재단과 독일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프로젝트이다. 작년 10월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독일·일본·폴란드의 국경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경 비교 연구 워크숍’을 했다. 국경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일주일간 논의하는 과정에서 참석자들의 관심은 남한과 북한의 군사분계선인 비무장지대(DMZ)에 모아졌다. 이곳은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지역으로, 쉬이 넘나들 수 없는 살아 있는 경계선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한독 국경 비교 연구 포럼>은 올해 1월에 독일 그라이프스발트 대학에서 워크숍을 개최했고, 5월과 7월에는 폴란드 그단스크대에서 “이주 서사(Migration Narratives)”를 주제로 Border Seminar와 서머스쿨을 개최한다. 

 

중앙대 인문사회과학 융복합 연구팀이 독일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대학교 발트해 연구소(IFZO)와 공동으로 지난달 26일부터 29일까지 독일에서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과 유럽 국경 연구자들이 참석한 이번 국제 세미나를 통해 중앙대 전우형 교수는 ‘DMZ as Media: Resonance between Border-Scapes and Narratives’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다. 역사학과 박사과정 수료생인 고반석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도 패널로 토론에 참석했다. <br>
중앙대 인문사회과학 융복합 연구팀이 독일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대학교 발트해 연구소(IFZO)와 공동으로 1월 26일부터 29일까지 독일에서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과 유럽 국경 연구자들이 참석한 이번 국제 세미나를 통해 중앙대 전우형 교수는 ‘DMZ as Media: Resonance between Border-Scapes and Narratives’에 대한 주제 발표를 했다. 역사학과 박사과정 수료생인 고반석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도 패널로 토론에 참석했다. 

국경과 같은 경계는 사회적 생산물이자 가변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경계에 대한 대안적 상상을 현실화하는 새로운 재현 방식이 요구된다. 국경 화해와 협력은 군사적 갈등을 제어할 수 있다.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독일은 1990년 통일을 계기로 오데르·나이세강 국경 지대에 대한 기존의 역사 주권과 영토 주권을 모두 포기함으로써 ‘천년 전사(戰史)’를 간직한 독일·폴란드 국경 갈등을 봉합했다. 통일을 대비해 영토 분쟁의 불씨였던 국경 지역을 포기한 것이다.

남북은 이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이어 1991년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2000년 이후 모두 다섯 차례 이뤄진 정상회담으로 사실상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러나 잠정적 분단선인 38선이 만들어진 지 77년 세월이 흘렀건만 남북한 사이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불신과 적대 의식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남북 화해를 둘러싸고 보수와 진보 간 ‘남남갈등’도 지속되고 있다. 남북 정상 간의 냉전적 적대감을 뛰어넘는 악수 교환도 한반도에 화해를 가져오지 못한 셈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경계 지대의 사람들은 초경계적 연대를 구축하면서 지역 간 협력 공간을 확충했고, 혼종화된 지역 정체성을 발판으로 위기 상황에 원숙하게 대처했다. 경계는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낙후된 주변부가 아니라 새로운 중심이 되는 해방의 공간, 창조의 공간, 생명의 공간이었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한독 국경 비교연구 포럼>은 참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일본과 폴란드의 전문가들도 함께하는 글로벌 연구 공간으로 점차 확대되었다. 독일과 폴란드, 한국과 일본은 서로 국경을 맞대고 오랫동안 다툼을 벌인 앙숙지간이었다. 포럼은 가해와 피해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서로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불신을 극복하고 연대와 상호 신뢰 극복을 위해 노력 중이다. 포럼 참여자들은 국경을 넘나들던 초경계적 상호 교섭과 연대의 역사적 경험은 ‘함께 살아감’의 가능성을 보여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글로벌 국경 연구(Global Border Studies) 클러스터 구축을 추진 중이다.


차용구 중앙대·역사학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중앙대·한국외대 HK+ <접경인문학> 연구단장 역임. 현재 한국서양중세사학회 회장. 저서에 『가해와 피해의 구분을 넘어-독일·폴란드 역사 화해의 길』(공저, 동북아역사재단, 2008), The Borderlands of China and Korea: Historical Changes in the Contact Zones of East Asia (‎편저, Lexington Books, 2020), 『국경의 역사: 국경 경관론적 접근』 (소명출판, 2022), 『중세 접경을 걷다: 경계를 넘나든 중세 사람들 이야기』 (산처럼, 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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